“활기찬 직장분위기를 조성해 원주시 공무원들이 본연의 맡은바 임무에 더욱 충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권승복 씨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지난 2000년 11월 29일 동료 공무원들에게 한 취임사였다. 이 때 그는 원주시 자치행정과 체육진흥계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날 치악예술관에서 원주시공무원직장협의회 창립총회가 열렸고, 권 씨는 초대 회장에 선출됐다. 당시 정부는 공무원들의 노조활동을 인정하지 않아 직장협의회를 설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권 씨는 그때만 해도 원주시공무원직장협의회를 친목단체로 여겼다. 취임사도 당연히 활기찬 직장분위기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초대 회장 취임은 권 씨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다.

그는 1956년 원주에서 태어나 명륜초교(14회), 원주중(21회), 원주고(19회), 상지대를 졸업한 토박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76년 스무 살의 나이로 원주시청 9급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그로부터 24년간 상명하복에 익숙한 공직에 물들며 앞만 보고 달렸다. 친화적인 성격에 인맥이 탄탄했고, 능력도 인정받았다. 주위에서도 사무관 승진이 멀지 않았다고 격려했다. 당시 원주시 체육진흥계에는 권 씨까지 모두 4명이 근무했는데, 온갖 체육업무를 맡다보니 휴일 없이 근무했다. 국민체육센터·농민문화체육센터 등 체육시설 건립, 실업팀 관리, 학교체육시설 신설, 국제걷기대회 등 체육행사, 체육단체 지원 등을 모두 체육진흥계에서 담당했다. 주변에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술자리도 매일 이어졌다. 그럼에도 한창 나이인지라 지칠 줄 모르고 질주했다.

그런데 원주시공무원직장협의회장을 맡고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우선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문제였다. 공무원도 직업인데, 왜 공무원은 제 목소리를 떳떳하게 내지 못하고 경직된 조직문화에 순응해야 하는지 답답했다. 부조리에 익숙한 공직풍토도 눈에 들어왔다. 사회를 보는 눈 역시 달라졌다. 사회적 약자는 시간이 한없이 흘러도 여전히 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주변에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조직력 강화에 치중하는 한편 강원도내 시·군을 순회하며 직장협의회 설립을 독려했다. 이를 토대로 강원도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이 출범했다.

이를 발판으로 2002년에는 제1기 전국공무원노조(이하 전공노) 부위원장에 선출됐으나 공무원 연가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40일간 옥고를 치렀다. 구치소에 있을 당시 200명 넘는 면회객이 다녀갔고, 그를 위한 동료 공무원들의 모금액이 1천만 원이 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공노 부정부패추방운동 본부장을 맡았던 2004년에도 전국 공무원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원주교도소와 춘천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또한 공무원 신분이 파면됐고, 공무원 연금도 반 토막 났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은 권 씨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2006년에는 전공노 위원장에 선출되며 활동무대를 전국구로 넓혔다.

노동운동에 투신하지 않고 평범한 공무원으로 살았다면 작년 6월 정년퇴임해 매월 연금을 받으며 평온한 생활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후회는 전혀 없다고 말한다. 공무원은 물론 우리시대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나은 삶을 기약하는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요즘 주력하는 건 몸펴기 생활운동 보급이다. 공무원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단신투쟁을 할 때 익혔다. 단식투쟁을 마친 뒤 몸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했다가 사범 자격증을 취득했고, 원주에 널리 전파해 현재 회원이 1천명에 육박했다. 몸펴기 생활운동을 전개하는 목적이 소시민들이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한다는 점에서 권 씨 만의 사회운동인 셈이다. 매일같이 마시던 술을 2년 전 끊은 이유도 동료 활동가를 위해서였다. 동료 활동가 A 씨가 입원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보니 과로에 과음이 겹쳤기 때문이란 얘기를 듣곤 함께 금주하기로 약속한 뒤 지금껏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권 씨는 “공무원노조가 진작 활성화 됐다면 최순실 국정농단 같은 일은 벌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며 “후배 공무원들을 위해 공직풍토가 바로서는 일에 항상 앞장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