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영천사 탑 사진. 1912년 조사과정에서 촬영된 것으로 왼 쪽 두 기는 '원주 영전사 보제존자사리탑'으로, 오른쪽 한 기는 '천수사 삼층석탑'이란 이름으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석물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고적도보 기록 '영전사'(令傳寺)는 '영천사'(靈泉寺) 오기

국립중앙박물관 석물공원 한 켠에는 각각 3.92m와 4.12m 높이의 석탑 두 개가 있다. 보물 제358호로 지정된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普濟尊者塔)'이다. 고려후기 승려 보제존자(1320-1376)의 사리탑으로 1915년 일본인들에 의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세워졌다. 

보제존자는 나옹화상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고려 말 보우(普愚)와 함께 조선시대 불교의 초석을 세운 고승(高僧)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양주 회암사와 여주 신륵사에 그의 사리탑이 있으나 제자들에 의해 원주에도 따로 사리탑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탑의 명칭을 두고 그동안 다양한 주장이 제기돼 왔다.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이란 이름은 조선총독부가 1914년 발행한 '조선고적조사약보고'에 기술된 명칭이지만 '영전사(令傳寺)'라는 사찰 이름은 '조선고적조사약보고'와 1920년 역시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고적도보' 외에 현재 전해지는 어느 문헌이나 기록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영전사가 아니라 태장동에 위치한 영천사(靈泉寺)가 원래 석탑이 있던 곳이며 원주 영천사 보제존자탑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 왔다. 
지난 15일 원주역사박물관 대강당에서는 이와 관련, 의미 있는 조사결과가 제시됐다. 원주시와 대한불교 조계종 영천사(주지: 선광스님)가 주최하고 우리문화부설연구소가 주관한 '원주 영천사 석조문화재 조사 보고' 자리에서다.

우리문화부설연구소 최종미 소장은 주제 발표를 통해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고적조사약보고와 조선고적도보에 기록된 영전사는 태장동 영천사의 오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고서자료를 찾아봐도 영전사라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이희의 '송와잡설(松窩雜說)'과 운곡 원천석 선생의 '운곡시사(耘谷詩史)' 등에 영천사가 수차례 등장한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또한 "지금의 태장1동에 위치한 가마지(加馬只: 가매기)라는 명칭이 1918년과 그 이후 지도 및 지적도에 적시되어 있고 일제가 석탑을 조사하면서 1912년 촬영한 사진에 보이는 능선이 현재 영천사 주변 지형과 일치한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 한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또 1996년 영천사 대웅전 중건당시 대웅전과 관음전 사이 화단에서 출토된 두 개의 광배(光背: 불상의 머리나 몸체 뒤쪽에 있는 원형 또는 배 모양의 장식물)와 배례석도 이를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주장했다.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영천사에서 반출된 두 개의 불상 중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이 소장 중인 석조 비로자나불상이 조형적으로 그동안 원주에서 출토된 석조 좌상들과 유사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최 소장은 전했다.

최 소장은 "석탑이 반출될 당시에는 영천사가 폐사된 상태여서 유물 반출이 손쉬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각종 자료와 인터넷 등에 유물의 출토지 등 잘못 표기된 부분을 바로잡는 한편, 영전사를 영천사로 바로잡는 원주시와 사찰, 시민들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천수사 삼층석탑, 영천사 삼층석탑일 가능성 높아

최 소장에 이어 '영천사 석탑'을 주제로 발표한 홍대영 숙명여대 건축·환경디자인연구센터 연구위원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천수사 삼층석탑 역시 영천사가 본래 자리였을 가능성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1912년 일제가 조사당시 촬영한 사진 속에는 보제존자탑 두 기 옆에 또 하나의 석탑이 존재한다"고 전제한 홍 연구위원은 "2층 기단에 3층 탑신을 올린 것이나 탑신을 받치기 위해 또 다른 별석을 사용한 양식으로 볼 때 천수사 삼층석탑과 같은 탑으로 추정된다"면서 "사진 속 석탑이 자연스럽게 기울어진 모양새 등을 볼 때 다른 지역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기에 어렵고, 이 역시 영천사에서 반출하는 과정에서 오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종수 원주시 문화재담당은 "정확한 석탑 위치 및 석재와 산지 등을 파악하기 위한 정밀 조사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반출된 두 개의 불상 중 현재 소재가 불분명한 또 하나의 불상을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