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철학도서관에서 격주로 진행되는 주역 강의를 듣던 12월 어느 날 주역 교수님께서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주역으로 본다면 '감괘'에 해당한다"고 서두를 열며 강좌를 진행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유교경전이며 난해한 글로 일컬어지는 '주역'에는 64괘가 나온다. 그 중 29번째 괘인 감괘는 물을 상징하는 감괘가 두 개 겹쳐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감괘의 형상은 물을 상징하며 동시에 어려움을 상징하는데 이것이 두 개나 겹쳐져 있으니 커다란 위태로움에 빠져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촛불시위→대통령 탄핵가결→대통령 직무정지, 올 가을부터 100여일 기막힌 국정농단을 바라보며 온 국민들이 힘겹게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 상황은 끝이 안 보이는 답답함으로 올해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또한 대외 상황도 만만치가 않다. 중국은 한국 사드배치 결정에 노골적인 한류 제재와 통상보복을 공언하고 있으며, 트럼프노믹스, 브렉시티 등 자국 보호주의 강화는 해외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경제적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거기에다 예측할 수 없는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있다. 물구덩이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있는 감괘의 형상이 딱 맞아 떨어지는 형국이다.
 

 그러나 감괘의 의미는 비관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역이 심오한 철학이자 매력적인 요인은 바로 이러한 반전에 있다. 감괘를 풀어 놓은 괘사를 보면 "오직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행한다면 형통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30년 전 군사독재정권을 막기 위해 1986년 3월 고려대학교 교수 직선제 개헌 시국선언→개헌논의를 중단시키는 4.13호헌조치→6월 항쟁→6.29 선언→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쟁취했었다. 그리고 1988년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라는 올림픽 주제가를 부르며 온 국민은 단결했고 세계인을 놀라게 했으며 그 결과 우리나라는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30년 전의 상황을 비추어 보아도 국민이 진실한 마음을 갖고 국가를 위해서 지역을 위해서 행동할 때 감괘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작금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원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권위주의, 정경유착, 패권주의 등이 지적되고 있으며 정치 개혁의 필요성이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통령, 전경련, 국회 등 권력기관만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을 수 있다. 정치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얼마 전 참석한 '인문도시원주'가 이러한 문제점이 해결된 좋은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개한다.
'인문도시원주'는 2015년 9월에 시작하여 2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고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가 운영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의 보편적 운영방식은 연간 1억5천만원 지원 예산으로 인문학 사업(강좌, 공연, 탐방 등)을 주관하는 대학이 단독 혹은 공동기관과 진행하는데 '인문도시원주'는 원주에 있는 다양한 인문학 단체를 모아 만든 운영위원회에서 추진한다. 연세대학교는 인문학 사업 취합, 행정처리, 예산 등 지원만을 총괄하고 사업 기획과 추진은 오로지 개별단체가 진행한다.
 

 필자는 처음 참여할 때 너무 많은 다양한 단체가 과연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사업이 진행되면 될수록 더 많은 단체들이 참여하였고, 현재 총 36개 단체 53명 운영위원들의 노력으로 원주는 다양한 인문학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인문도시원주' 운영 방식은 협력, 소통, 참여로 이루어졌고 올해를 마무리 하는 6차 운영위원회에서는 공유, 감사, 덕담 그리고 아름다운 시낭송으로 회의를 마쳤다.
 

 소규모 운영위원회 방식의 사례를 국가나 사회에 대응시킨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병든 국가, 사회에 인문학이 왜 필요한 가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시켜 준 자리였다. 30년 전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국민화합과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역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해에는 희망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흔들림 없이 진실한 마음을 모으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