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지3리 1반 공재은 반장

지난 2004년 개봉한 한국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 주인공 홍두식의 공식 직업은 마을 반장이었다. 하지만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편의점 알바가 되기도 하고, 중국집 배달부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부동산 중개업자로 변신하기도 했다. 마을 대청소날에는 제일 먼저 나와 주민들을 독려하며 마을 단합을 이끌었다. 

흥업면 매지3리 1반에도 홍반장 같은 존재가 있다. 바로 '공 반장'이다. 공재은(46) 씨는 매지3리 1반장을 12년째 맡고 있다. 지난 6일 매지3리 경로당 준공식 있던 전날 공 반장은 경로당에서 망치질로 바빴다. 경로당 구석구석 위험한 곳은 없는지, 설치가 미진한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며 경로당 단장에 바빴던 것. 매지3리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공 반장이 늘 현장에 나타난다.  

매지3리 주민들이 공 반장에게 의지하는 바는 적지 않다. 매지3리에는 36가구가 사는데 대부분 노인이어서 기력이 떨어질 때가 많다. 보일러가 고장나거나 수도가 터지면 자식들을 부르기가 민망해 참고지내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게 공 반장이다. 

군 제대 후 공장에서 수년간 기계를 다룬 경험이 있고, 목수 일에도 소질이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문제가 생기면 그를 찾는다. 공 반장은 "전기 모터가 고장나거나 집에 불이 안들어오면 제가 찾아가 고치는 경우가 많다"며 "마을에 젊은이가 귀하고, 아들같이 여겨주셔서 편하게 찾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공 반장은 매지3리에서 터줏대감 같은 존재이다. 연세대학교에서 몇 년 전 매지3리 1반을 대상으로 집성촌 연구를 진행했는데 공 씨를 비롯한 3개 성씨가 500년 이상 터를 잡고 살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공 반장이 알고 있는 직계 조상도 5대나 된다. 

공 반장 가족이 최소 150년 이상 매지리에서 살다보니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부터 개인 대소사를 훤히 꿰뚫고 있다. 게다가 공 반장의 할아버지가 매지농악전수관 앞 공터를 마을에 희사해 주민들에게 공 씨 집안은 매우 친근한 존재이다. 

공 반장도 마을을 애틋하게 생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군 제대 후 15년간 전국을 떠돌며 일을 했는데 매지리에 있는 부모님과 주위 어르신들이 걱정돼 매지리에 안착했다. 그는 "밖에서 살다가 중간중간 집에 오면 집기가 망가지거나 큰 힘을 요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직장 일을 그만두려 할 때쯤 부모님과 마을이 걱정돼 정착하게 됐다"고 했다. 

마을 정착 후에는 마을을 꼼꼼히 챙기고  마을 발전에 정성을 쏟았다. 15년 전 고향에 정착할 때 트랙터 하나 없어 소로 밭을 일구는 동네였던 매지리. 공 반장이 트랙터를 사고 밭이란 밭은 다 기계로 손을 봐주었다. 게다가 마을 주민들이 한 해 지은 농사를 별 소득도 못보고 접는 경우를 많이 봐, 공 반장을 비롯한 청장년회가 김치, 옥수수축제를 열어 주민 소득창출에도 힘썼다. 

공 반장은 "처음에는 시간이 없고 힘들어 반장 직을 고사하려 했다"며 "하지만 주민들이 제가 하는 일에 호응해주시고, 신뢰를 보내 반장을 지금도 못내려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정자연환경이 뛰어난 매지3리의 관광자원을 활용해 주민들에게 더 큰 소득을 안기고 싶어한다. 또한 매지3리가 전국에서 손꼽히는 사계절 관광지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여러 가지 일을 계획하고 있는데 주민들 협조로 잘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