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원주중앙시장.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 여느 시장과 다를 바가 없었던 곳이지만 최근에는 전국이 주목하는 말 그대로 '핫 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다. 4~5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특히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중앙시장 2층은 존재여부를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을 만큼 철저하게 외면 받아온 공간이다. 오래된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낡을 대로 낡은 2층은 20년 전 발생한 화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음습한 기운마저 감돌았었다.

그런데 이 곳에 조금씩 흥미로운 공간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이 만들어 놓은 변화다. 그 중심에는 원주중앙시장 문화관광형육성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윤보현(48) 한지로 그리는 세상 대표가 있다.

윤 대표가 중앙시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3년이다. 윤 대표가 중심이 된 '한지로 만드는 세상'은 강원문화재단 레지던시 사업과 원주문화재단의 각종 문화예술지원사업을 통해 지난 4년간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청소부터 시작한 예술가들은 시장 벽면에 다양한 벽화를 그려나갔고, 전시, 공연, 체험행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낡은 화장실 개선을 위한 '백원만 콘서트' 등 기발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기획이 더해진 다양한 프로그램은 전통시장으로 들어간 예술이 시장 상인들과 교류를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도출해내고 다시 문화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중앙시장 2층이 시민들에게 새로운 대안예술공간으로 인식되면서 2014년 12월 진행한 미로시장 플리마켓에는 5천명이 다녀가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해 여름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청년창업자들은 또 다른 우군이 됐다. 기존에도 전주 남부시장이나 광주 대인시장 같이 청년존과 문화예술시장은 있었지만 정책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전통시장에서 청년창업존을 형성한 것은 중앙시장이 유일하다. 

그 결과 지난해 중소기업청 '전통시장 청년상인 창업 지원사업'과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에 연이어 선정된 데 이어 올해는 중소기업청 전통시장 특성화 사업 중 청년몰 조성사업에 선정됐다. 자발적으로 모인 청년상인들을 포함해 중소기업청 청년몰 조성사업과 청년창업 지원사업으로 중앙시장 2층엔 70개의 청년점포가 생겼다. 기존 상인까지 더하면 90여개 점포에 이른다. 전통시장에 입점한 청년점포 규모로는 전국 최대규모이다.

이런 성과로 지난 10월 전국우수시장박람회에서 우수시장으로 선정돼 국무총리상을 수상했으며, 한국관광공사가 선정·발표하는 '11월 가볼 만한 곳'에 중앙시장 미로예술시장이 선정되기도 했다.

윤 대표는 중앙시장이 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과거의 흔적들을 현재와 연결고리를 만들어 공존하는 개념에서의 접근법과 단순한 성과위주의 단기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시장 상인들과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찾는다.

윤 대표는 중앙시장에서 레지던시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작업실부터 옮겼다. 아무리 좋은 기획도 이 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시장 상인들의 호응과 동의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상인들과 자연스럽게 언니, 동생이 되고 곽태길 회장을 비롯한 시장번영회는 그녀의 든든한 키다리아저씨가 됐다.

"프로젝트를 통해 펼치는 모든 프로그램의 중심은 소통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고 밝힌 윤 대표는 "공간의 주인인 시장 상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해 기획 단계부터 주민들과 협력하는 등 이 공간만의 독특한 시장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관광형 육성사업도 내년이면 어느새 3년차에 접어든다. 평범한 한지공예가에서 기획자로 변신해 자신의 첫 프로젝트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그녀는 지금부터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로시장이나 청년몰의 인기에 편승해 임대료가 올라가거나 대기업 자본이 들어와 기존 예술가들이나 가난한 청년 창업자들이 그 지역을 떠나야 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경계하는 것이다.

"중앙시장도 서울의 홍대나 서촌, 삼청동 문래동 예술거리처럼 비슷한 상황에 놓이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우려를 표시한 윤 대표는 "자본 이동이 활발한 상업지역인 중앙시장은 이러한 현상이 더 빨리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윤 대표는 "다행히 번영회를 비롯한 중앙시장 상인들이 시장발전과 청년창업자 보호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면서 "원도심 변화의 핵심이자 희망인 중앙시장 청년창업자들이 단단하게 뿌리 내릴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