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장2동에서 따뜻한 소식을 전하고 있는 흥양천 공동체라디오.

'지구 반대편 소식은 알아도 우리 동네 소식은 모른다'라는 말을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기기 어려운 것은 소통과 화합이 부제한 씁쓸한 현대인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각박한 현실을 핑계 삼아 이웃과의 단절이 자연스러워진 요즘, 올드미디어로 치부됐던 라디오가 지역주민 간의 연결고리가 되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텅 비었던 전통시장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산책로를 따라 앞만 보고 걸어가던 사람들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남들이 들으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연들이 내 동네 이야기라서 공감하고 관심 갖게 되는 일들. 공동체라디오로 이뤄진 변화다. 

공동체라디오의 등장 

공동체라디오란 지역주민들이 주인이 되어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주제로 낼 수 있는 시민들의 매체이다. 

1940년대 볼리비아 광산지역에서 광부들에 의해 처음 등장한 공동체라디오는 당시 노동자와 가족 및 지인들이 함께 소식을 주고받으며 운영해온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매체로 자리잡았다. 

공동체라디오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 무렵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미디어는 국가와 매체 시장이 주도하던 구조였지만, 공동체라디오의 등장으로 일반 시민들이 직접 방송국을 소유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되었으며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방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방송매체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지역민들은 그동안 주요 미디어들이 외면해왔던 지역의 현안을 다루기 시작했다. 현안 사항을 언급함으로서 지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대해 사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되면서 지역발전에도 큰 힘을 실어줬다. 

또한, 지역주민들과 함께 '우리'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사라져가던 공동체문화 확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개인주의 팽배로 인한 사회문제가 끊이지 않으면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공동체문화를 자연스럽게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원주는 라디오 시대 

원주에서는 2012년 6월 시민문화센터에서 미디어수업에 참여했던 수강생들이 자발적으로 '원더풀라디오(회장: 이동규)'를 설립하면서 공동체라디오가 시작됐다. 시민들은 직접 방송에 나서 일상적인 수다와 소소한 동네이야기들로 지역민들을 하나로 엮어나갔다. 

이후 2013년 12월 태장2동 주민들을 중심으로 '흥양천공동체라디오(국장: 김정희)'가 개국한다. 흥양천을 따라 산책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시작했으나 처음에는 주변 아파트 주민들과 소음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을 멈추면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지난 3년간 주민들의 소식통 역할을 해왔으며, 문화적으로 소외된 태장2동의 낙후된 이미지를 개선하는데도 기여했다. 

최근에는 시장과 상권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공동체라디오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과 올해 4월 각각 미로예술 중앙시장과 중앙로 문화의거리 2곳에서 라디오방송이 시작됐다.

침체된 중앙시장을 되살리기 위한 새로운 시도로 시작한 미로시장의 보이는라디오는 시장 상인들이 직접 DJ로 함께 참여한다. 초창기에는 소음문제로 인해 상인들 간의 의견이 엇갈렸지만 공동체라디오 운영을 통해 소비자와의 소통은 물론, 상인들과의 소통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중앙로 문화의거리 보이는 라디오도 원도심 현상으로 인한 상권 침체를 벗어나고자 시작했다. 사연신청으로 상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으며 문화의 거리에서 울려퍼지는 라디오방송은 시민들의 발길을 불러모으고 있다. 

시민과의 소통창구 

공동체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들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따뜻한 공감을 가지고 있다. 육아나 살림에 대한 생활정보나 지역 문화계소식, 간단한 영어회화,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을 초청한 인터뷰가 진행된다.

때론 DJ의 동창생과 어머니까지도 마이크 앞으로 소환해 동네 이야기를 나눈다. 소식을 전하는 DJ들 역시 김밥집 아줌마, 노래방 사장님, 다문화가정 이주여성, 여중생들, 노인정 회장님 등 옆집 이웃이다. 

방송 중간마다 전해지는 우리동네 소식이야말로 알찬 정보다. 마을 대청소 일정을 공지하고 명절 노래자랑 참여를 독려하며, 동네식당 개업소식 홍보도 모두 공동체라디오에서 전하는 소식들이다. 

흥양천라디오에서 베트남 출신 레디엠 푹이 전하는 한국정착기는 다문화가정 이주여성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된다. 지난 3년간 김정희 국장과 호흡을 맞춰온 그녀는 대본 없이도 술술 방송을 이어간다.

원더풀라디오 이동규 회장이 게스트로 초청했던 동창생은 방송을 통해 시낭송을 선보여 청취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어릴 적 꿈이던 시인에 등단했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공동체라디오를 운영하기까지는 시민들간의 소통 매개체가 되어준 DJ들의 역할이 컸다. 무보수는 물론 본인의 시간을 투자하면서 매주 방송을 준비하는 DJ들의 열정은 공동체라디오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매주 청취자와 함께할 컨텐츠를 고민하고 방송에 게스트를 초청할 때면 사비를 털어 식사를 대접해야할 때도 있지만 이들이 계속해서 방송을 이어가는 건 시민들과 함께하는 소통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흥양천라디오 김이섭 씨는 "서툴고 부족한 방송이지만 라디오를 통해 지역민들이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방송을 진행하고 싶다"고 전했다. 

다양한 목소리 전달 과제

지역의 소통 활성화를 기대하며 전국적으로 많은 공동체라디오가 생겨나고 있지만 그만큼 많은 곳들이 문을 닫고 사라진다. 저예산으로 운영되는 만큼 공동체라디오를 꾸준히 이끌어가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공동체라디오가 늘어나는 추세에 따라 각 방송들은 프로그램을 차별화를 둘 필요가 있다. 1인 시스템으로 비슷하게 운영되는 공동체라디오는 자칫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체라디오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매체로서 서로 단절된 채 경쟁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예산부족으로 실시할 수 없었던 DJ 심화교육 등을 각 단체들이 모여 함께 진행하면서 질 높은 교육을 실시하는 등 더불어 방송하는 상생의 문화가 필요하다. 

또한, 시민들과 소통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지속해야한다. 시민들의 관심사와 필요한 정보들에 귀기울여 지역에 필요한 이야기를 논의해야 한다. 각 방송에서 매년 1~2회씩 실시하는 공개방송도 시민들과의 소통을 위한 행사이다. 라디오라는 매체 특성 상 청취자와 목소리로만 소통해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문화의거리 보이는라디오의 서명택 국장은 "다양한 집단에서 다양한 방송을 만들어 여러 목소리가 조화롭게 나오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원주 공동체라디오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전했다. 

지역 현안 공론화 고민 

공동체라디오는 지역민들이 다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공론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원주 내 공동체라디오는 아직까지 주민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지역행사를 안내하는 역할에만 그친다는 아쉬운 목소리도 있다. 이동규 회장은 "공동체라디오를 통한 정책비판의 목소리도 필요하지만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비판하는 것은 자칫 방송으로서 공정성을 잃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화합을 우선 시 하는 공동체라디오가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회장은 "각계각층의 시민단체를 게스트로 초청해 그들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볼 것"을 추천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이로 인해 시민들이 현 사안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공동체라디오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 문화의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보이는 라디오.

  

공동체라디오 방송 정보

원더풀라디오

원주에서 가장 먼저 공동체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시민문화센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30여명의 DJ들이 19개 프로그램을 맡아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방송시간: 평일 오후7시~9시(수요일은 오후6시부터) ▷청취방법: 세이캐스트 '원더풀라디오' 

흥양천공동체라디오 

태장2동 주민들을 중심으로 흥양천 산책로에서 실시간으로 방송된다. 횡성에서 이를 벤치마킹해 섬강라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태장2동 주민센터에 방송국이 있으며, 15명의 CJ(Cyber Jockey)들이 19개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방송시간: 평일 오전10시~오후9시(시간대별 방송) ▷청취방법: 세이캐스트 '태장2동흥양천공동체라디오'

미로시장 보이는라디오 

중앙시장 활성화를 위해 상인들이 직접 방송 DJ로 참여하고 있다. 미로예술시장 2층 중앙광장에서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하고 있으며, 시장에 설치된 TV를 통해 방송실황을 볼 수 있다. 매주 6명의 DJ들이 6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방송시간: 월~토 오전11시~오후12시. ▷청취방법: 세이캐스트 '중앙시장미로방송'. 
  
중앙로 문화의거리 보이는라디오 

문화의 거리 침체에 따라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퀴즈나 사연추첨을 통한 다양한 경품을 제공하며, 실시간 영상으로도 방송 시청이 가능하다. 20여명의 DJ가 20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방송시간: 월~일 오후2시부터 4시, 오후7시~8시. ▷청취방법: 'VLC PLAY' 설치 후 rtmp://wjmunhwa.live.cdn.cloudn.co.kr/wjmunhwa/_definst_/live.stream 로 연결 

어르신들의 이야기, BS청춘라디오 

지난 6월 밥상공동체종합사회복지관(관장: 허기복)에서 BS청춘라디오가 개국했다. 복지시설에서 운영하는 관내방송이지만 지역 내 노인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아나운서 모집 시 절반 이상이 어르신으로 선발될 정도로 참여율이 뜨거웠으며 방송아이템 선정부터, 선곡 결정, 대본 작성까지 직접하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방송을 통해 건전한 여가생활은 물론,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년부터 함께하게 될 2기 아나운서는 다양한 연령대로 선발해 원주의 따뜻한 소식을 전할 계획이다. BS청춘라디오는 평일 오전10시부터 11시40분까지 세이캐스트 'BS청춘라디오'를 통해 청취할 수 있다. 

박수희 기자  nmpry@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