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연말 원주시립교향악단이 상임지휘자로 김광현(35) 당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를 선택했을 때 지역사회의 반응은 냉담했다.

서울교향악축제에 10년 연속 초청될 만큼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교향악단 중 하나로 인정받는 원주시향이 2대 상임지휘자로 선택한 인물이 당시 34세의 젊은 지휘자였기 때문이다. 

임헌정(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초대 명예 음악감독을 시작으로 정치용(현 인천시향 음악감독) 2대 명예 음악감독, 박영민(부천필하모닉 음악감독) 초대 상임지휘자까지 그동안 원주시향을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 볼 때 김 지휘자는 나이도, 경력도 너무나 일천했다. 일각에서는 '원주시가 원주시향을 해체하기 위한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었다. 

하지만 2015년 1월 그가 취임기념음악회로 처음 지휘봉을 잡은 제97회 정기연주회가 끝나자 이 같은 논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주회를 보고 온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원주시향이 달라졌다'부터 '연주회 보러가길 잘했다' '소름이 돋았다' 등 찬사 일색이었다. 

그로부터 2년. 젊은 지휘자의 행보는 파격적이면서 신선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청중에게 미리 사연과 애청곡을 신청 받아 들려 준 '신청곡 콘서트'부터 신인 음악가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전설의 음악가를 한 무대에 세운 '처음, 그리고 전설', 프로포즈 이벤트로 감동을 선사한 '로멘틱 콘서트' 등이 이어졌다.

수업이 진행 중인 대학 강의실을 찾아가 게릴라 콘서트를 열고 시립합창단과 함께 시외버스터미널 로비에서 플래시몹 형태의 송년 이벤트도 펼쳤다.

특히 한 사람의 연주로 시작해 각 파트별 단원들이 합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송년 이벤트는 클래식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면서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서기 위한 시립예술단의 노력이 엿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주시민에게 사랑받고 원주시의 자랑이 되는 원주시향'이라는 그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도 화제가 됐다. 김 지휘자는 "원주시향이 존재하는 목적은 원주시민의 삶과 정신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시민들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 지휘자 취임 후 찾아가는 연주회를 두 배로 늘렸고 금관 5중주나 현악 5중주 일색이던 편제도 다양해졌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지휘자가 직접 참여하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젊은 지휘자의 파격적인 행보를 두고 '원주시향이 너무 가벼워졌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맞추면서 가벼운 연주회도 최선의 노력으로 최고의 연주를 선사하겠다"는 그의 진심은 시민들에게 충분히 전달되고 있는 것 같다. 객석 점유율이 두 배로 증가하고, 정기회원 수도 열 배 이상 늘어나는 등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충분히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지휘자는 "원주시향은 음악을 통해 시민들의 마음과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어 드린다는 점에서 건강도시 원주와 가장 부합된다"면서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자랑이 되는 원주시향, 세계에 원주를 알리는 원주시향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광현 지휘자는? 예원학교 피아노과와 서울예고 작곡과를 거쳐 서울대 음악대학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서울대 재학 중 세계적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지휘자로 발탁돼 '제9회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하고, 서울대 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재학생 최초로 지휘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밖에도 독일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니, 로이틀링겐 필하모니, 루마니아 크라이오바 심포니, 경기필, 부천시향, 과천시향, 프라임필 등을 지휘했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를 역임했으며, 2015년부터 원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국공립 합창지휘자 중 최고령인 김명엽(73) 서울시합창단 상임지휘자와 성악을 전공한 김명호(59) 씨의 2남 중 장남으로 동생 지현(34) 씨 역시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테너로 활동 중인 음악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