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64, 우산동) 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에서 열린 제6회 아차산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판소리부문 신인부 대상을 차지하며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이 그를 주목했던 이유는 판소리꾼 가운데 휠체어 장애인은 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허 씨는 지체장애 1급 장애를 갖고 있다. 지난 2006년 12월 15일 일을 하던 도중 자재가 허리로 떨어지는 사고로 흉추 10번이 완전 손상됐다. 수술을 받은 후 전국에 좋다는 재활병원을 찾아다니며 재활 치료를 받았지만 하반신 마비를 회복할 순 없었다. 

그로부터 3년 후 허 씨는 지인이 "민요나 배우러 가자"는 말에 횡성문화 판소리반에 찾아가면서 처음 '우리 소리'를 접하게 됐다. 허 씨는 "판소리에 대해서는 지식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도 재활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어 정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하며 따라갔다"고 판소리와 인연을 맺은 계기를 설명했다. 그런데 허 씨는 판소리를 배우면서 자신의 적성과 맞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점차 흥미와 재능을 발견했다. 그 후 판소리에 심취해 배움과 연습을 이어갔고, 더 이상 판소리는 그에게 취미나 재활이 아닌 삶 자체가 되었다. 

현재 허 씨는 국악인 박양순 한국판소리보존회 강원도지부장으로부터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김유정 창작 판소리 등 지도를 받고 있으며, 횡성·춘천·홍천문화원을 매주 오가며 연습하고 있다. 허 씨는 2014년에도 진도 전국 국악경창대회에서 신인부 장려상을 수상했을 만큼 판소리 실력 또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평생 판소리를 해온 사람들에게 비하면 허 씨의 실력은 아직 초보수준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판소리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혹독한 연습을 하고 있는지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배꼽 아래로는 신경이 살아있지 않기 때문에 단전호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는 것도 제약이 있지만 그는 오직 배 힘만으로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허 씨는 일반인보다 더욱 피나는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허 씨의 인생에 예고 없이 닥친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사명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판소리를 만난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허 씨는 "내가 장애를 입지 않았다면 판소리를 평생 접할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그래서 남보다 힘든 조건이지만 의지와 열정을 갖고 연습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원주에 판소리를 가르치는 강좌가 없고, 허 씨가 마음 편히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원주가 아닌 타 지역으로 다니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있으며, 산으로 들로 연습을 하러 찾아다니는 고충을 겪고 있다.

산 중턱까지 차를 끌로 올라가 차 옆에서 연습을 하다 굴러 119에 두 번이나 신고를 했고, 비어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부탁을 하거나 몰래 연습을 하다 쫓겨나 상처를 받은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허 씨는 "판소리가 원주에 활성화 되지 못한 점도 아쉽지만 만약 내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지금 만큼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며 "판소리 외에도 예술을 하고 싶은 장애인이 많을텐데 이 사회가 장애인이라는 편견 없이 그저 예술을 하고자하는 한 사람으로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허 씨는 2시간 가량 되는 '흥보가' 완창을 목표로 연습에 매진하고 있으며, 다가오는 2018년 평창동계페럴림픽 때 세계인 앞에서 판소리 공연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허 씨는 "장애를 딛고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세계인에게 우리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며 "앞으로도 판소리 실력을 꾸준히 쌓아 우리나라와 우리소리를 알리는 일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