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극(72·일산동) 씨는 늦깎이 시인이다. 그는 최근 제8회 강원문학 신인상 시조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체신부 공무원 출신으로 99년 양구전화국 국장으로 퇴임한 뒤 원주교육문화관 문예창작반에 입학, 17년 만에 이룬 영예다. 

그런데 그가 시를 쓰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의 이웃 대부분은 그를 그저 폐지를 줍는 노인쯤으로 알고 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노년에 고생한다"며 수군거리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노 씨는 올해까지 17년 째 매일 폐지를 줍고 있다. 휴일은 물론 추석과 설날에도 거르지 않고 폐지를 줍는 그의 모습은 이제 일산동 인근에서 흔한 풍경이다.

심지어 자녀의 결혼식 날에도 새벽에 폐지를 줍고 식장으로 향했을 정도니 아내 최영자(67) 씨의 말처럼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법하다. 

노 씨가 폐지를 줍기 시작한 것은 17년 전 퇴근길에 만난 길거리 좌판 할머니들의 모습을 본 뒤부터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몇 천원을 손에 쥐고 거리를 지키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푸성귀 한 줌을 팔기 위해 끼니도 거르면서 수십리가 넘는 장터를 오가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후로 할머니들을 뵐 때마다 요구르트와 빵 몇 개를 사 나눠 드렸지만 마음의 무거움은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다. 

명예퇴직 후 찾아 온 우울증은 그런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만들었다. 평생 쉼 없이 분주하게 달려 온 그였지만 막상 할 일이 없어지자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하며 자책하는 날이 늘어갔다.

비가 내린 어느 날 밤 쓰레기를 버리러 집 밖을 나섰는데 눈 앞에 보이는 참나무를 보고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집으로 다시 들어가 끈을 들고 나와 나무를 오르다가 비에 젖은 나무에 미끄러지기를 수 차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고민 끝에 그해 여름부터 길가에 버려진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1시간 정도 시심을 가다듬고 새벽 4시부터는 폐지를 찾아 손수레나 오토바이를 끌고 거리로 나선다.

친목회에 나가서도 빈 병은 반드시 챙겨 돌아올 만큼 사소한 것 하나도 그냥 흘려보내는 일이 없다. 99년 8월 2일 시작한 뒤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17년째 거른 일이 없는 그의 일과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 돈은 매년 설과 추석 때마다 교도소 수형자와 복지시설 입소자 등 2천여명을 위한 떡 값으로 지출된다. 떡보다 약과가 먹고 싶다는 수형자들의 요청에 따라 모자라는 예산을 보충하기 위해 두 달간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아는 목사님을 통해 소액이지만 필리핀 빈곤층을 위해 기부도 하고 지금은 그만뒀지만 원주교도소 인성교육 강사로 수형자들의 교화에도 앞장섰다. 노 씨는 자신의 선행에 대해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퇴직을 하고 난 뒤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게 느껴졌다"는 그는 "모두가 귀찮아하는 일이지만 내게도 일거리가 있고 내가 아직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면 즐겁다"고 말했다. 

감동을 받은 일도 여러 번이다. 몇 해 전에는 단계동에서 폐지를 줍고 있는 데 신사복 차림의 남성이 다가 와 넙죽 인사부터 하더란다. '원주교도소 수감당시 노 씨의 강의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은 뒤 지금은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그의 모습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7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쳐 반신불수의 위기에 놓였었지만 지금처럼 건강하게 몸을 추스릴 수 있었던 것이나 시분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무사히 심장수술을 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된 것 역시 주위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고 있는 그다. 

앞으로도 자기 계발에 힘 쓰면서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할 생각이라고 밝힌 노 씨는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 역시 행복"이라며 "내가 느끼는 행복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