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찜기에서 얌전하게 쪄진 훈제오리수육이 촉촉하다. 뜨거운 수증기가 충분히 살 속을 파고들면 오리고기는 수줍은 홍조가 짙어진다. 그 위에 푸른 부추와 하얀 팽이버섯이 신선하다. 찜기 뚜껑을 여는 순간 눈이 먼저 맛있다. 

정리정돈이 잘 된 깔끔한 가정집에서 정성껏 손님을 대접하는 듯한 이곳은 도심 속 쉼터와 같은 '정원이 있는 집(대표: 김은희)'이다. 작년에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지금의 빌딩이 올라가기 전 바로 이 자리에서 너른 정원이 있는 식당을 20년 동안 운영했었다. 그때가 그리워 2층에 작은 정원을 다시 만들었다.

흙을 밟을 수는 없지만 크고 작은 화분으로 느낌을 살렸다. 듬성듬성 테이블을 널찍하게 배치해 공간이 여유롭다. 시원하게 밖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으면 마음까지 여유로워진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에너지가 방전돼가는 느낌이 들 때 몸에 좋은 음식을 찾을 수밖에 없다. '오리고기는 훔쳐서라도 먹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몸에 좋은 음식인데 수육으로 먹을 수 있어 시간에 쫓기는 점심시간에도 마음 편하다.

살점은 촉촉하고 껍질은 쫄깃한 훈제오리수육에 맛깔스럽게 무친 양파부추 무침을 올렸다. 아삭한 양파에서 나오는 알싸한 달콤함과 부추 특유의 푸른 향이 느끼함을 잡아준다. 그래서 먹고 또 먹어도 계속 젓가락이 간다. 

찜기 바닥이 보일 때가 되면 구수한 된장찌개가 돌판 전골에 바글바글 끓으며 나온다. 소고기나 해물을 넣고 감칠맛 나게 끓이는 된장찌개.

이것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 비울 수 있어 된장찌개 때문에 자주 온다는 손님이 많다. 돌판 전골에 끓이다보니 끓을 때까진 시간이 좀 걸리지만 끓기 시작하면서 진한 국물 맛이 우러나온다.

신선한 부추를 끓는 된장찌개에 살짝 적셔서 밥과 함께 비벼먹으면 별미인 부추된장찌개나 게와 미더덕, 낙지 등 해물로 끓인 해물된장찌개 등 둘 다 그만의 맛이 있다. 달짝지근한 배추를 얹고 자글자글 끓이면서 먹는 돌판 불고기는 어린아이나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부드러운 불고기는 소스에 찍어 먹고, 짭조름하게 우러난 국물을 밥에 얹으면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금방 버무려 양념 맛이 살아있는 겉절이 김치와 겉은 쫄깃하고 속은 부드러운 코다리 조림, 새콤달콤한 야채샐러드, 애호박볶음, 오이지, 멸치고추볶음, 마늘쫑 무침 등 반찬 하나하나 정성이 가득하다. 

입맛 돋우는 반찬과 정갈한 상차림, 금방 지은 돌솥밥, 단순하지만 우리 입맛에 잘 맞는 메뉴 구성, 그리고 청결하고 쾌적한 분위기가 이집의 매력이다. 거기다가 욕심은 버리고 인심은 가득한 김 대표의 넉넉한 표정이 나무그늘 아래 의자처럼 편안하다. 그럴듯한 한정식집은 아니지만 친근감 있는 한식이라서 매일 먹어도 부담이 없다. 

위치는 세브란스기독병원 건너편 구 보호관찰소 자리이며 오전10시부터 오후9시까지 문을 연다. 둘째 넷째 일요일은 휴무. 

▷메뉴: 돌솥 정원된장(8천원), 돌솥 부추된장·돌솥 해물된장(9천원), 돌판 불고기(1만3천원), 훈제오리수육(소 4만원·대 5만5천원), 철판구이(소 3만원·대 5만원)

▷문의: 743-4117 
 

임춘희 기자  hee@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