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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참전용사 정천환(97) 씨

"전우들 아직도 생생" 박동식 기자l승인201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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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이 땅의 청년들이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전장에 뛰어들었다. 이 전쟁으로 한국군과 유엔군 17만8천5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쟁 미망인 30만명, 고아 10만명이 발생했다. 전쟁은 온 나라를 황폐화시키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현재 원주에 살고 있는 6.25전쟁 참전용사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 중 한사람인 정천환(97·명륜2동) 씨도 전쟁터 한 가운데서 생과 사를 오갔다. 정 씨는 지난 1950년부터 동해 묵호에 위치한 해군사령부에서 보일러기술자로 복무했다.

전쟁이 한창이었지만 해군 보일러실에서 일하던 그가 전투를 경험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난 1952년 돌연 전쟁터로 나가게 됐다. 당시 강원도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육군3군단에 전력 수급이 필요했고, 육·해·공군을 가리지 않고 전투에 참여할 사람을 차출했다고 한다.

정 씨도 이 과정에서 전장에 나가게 됐으며, 3군단 휘하 기갑부대 3대대장의 호위병으로 낙점됐다. 정 씨는 "보일러를 정비하던 나에게 전투에 참여하라고 해서 뜻밖이었지만 이 또한 내 운명이었던 만큼 사명감을 안고 전쟁에 뛰어들었다"고 전했다. 

정 씨는 인제, 속초, 양양, 평창에 이르기까지 강원도 곳곳에서 전투를 치렀다. 그가 속한 3군단은 인민군에 포위되거나 쫒기기를 거듭하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정 씨는 아군 병력의 10배, 20배가 넘는 북한군에 포위돼 세 차례 장기고립됐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포탄이 쏟아지고 화염이 끊이지 않았던 전장에서 긴장의 끊을 놓을 수 없었고 철모에 밥을 지어 근근이 주린 배를 채웠다.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보급품은 북한군에 의해 차단되기 일쑤였다. 이 과정에서 정 씨가 호위하던 대대장이 평창 일대에서 후퇴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전사하기도 했다. 

정 씨는 "60년이 흘렀지만 내 곁에서 쓰러져간 전우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참전용사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씨는 평창군 진부면 출신이며, 6.25전쟁이 시작된 1950년부터 전쟁이 끝난 1953년까지 4년간 군에 몸담았다. 원주에 정착해 정미소를 운영했고 법무사 사무실 사무원으로도 일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전쟁 통에 정 씨 없이 당시 7살이던 아들과 힘겨운 삶을 살았던 부인은 지난해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5남매를 두었다. 
 


박동식 기자  dspark@wonju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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