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 호스를 꽂고 말씀도 못하는 분이 내내 눈물 흘리면서 고마움 표현… 이런 분들 위해 내 재능이 쓰일 수 있어 감사하죠"

한올한올 머리카락을 넘기며 가위질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따스함이 가득했다. 지난 달 개운동 경로잔치에서 만난 그녀는 어르신 한분 한분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자르고 있었다.

미용실을 그만둔 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안정옥(60) 씨 손에 들려있는 가위는 소외된 이웃들의 머리카락을 예쁘게 다듬어 주고 있다.

개운동 23개 통 중 안 씨가 통장을 맡고 있는 18통은 휴먼시아 1단지로 492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동소식을 전하는데 힘쓰면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통장으로 손꼽히는 안 씨는 특히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각별히 신경쓴다.

안 통장은 "휴먼시아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아파트라 부녀회가 없어서 통·반장이 모여 '사랑의 봉사단'을 만들어 단지 일을 챙기고 있다"고 전했다. 어르신들은 경로당을 찾아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그들에게 늘 고마워 하지만, 특히 안 통장이 미용봉사를 하는 날이면 더욱 반긴다.

각자 어른들의 취향에 맞게 머리를 다듬는 그녀의 솜씨는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결혼 전 미용사자격증을 취득했던 그녀는 1987년 군인인 남편을 따라 원주로 이사온 후 통일아파트 근처에 미용실을 열었다. 15년간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종종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이나 군인들을 무료로 이발해주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미용실 옆 목욕탕에서 목욕봉사를 위해 방문한 어르신들에게 이발을 해드리면서 처음으로 미용봉사를 하게 됐다. 안 통장은 "몸이 불편하시거나, 이발비가 없어서 머리가 방치된 채 어깨까지 길게 기르신 어르신들을 보면서 이들을 위한 봉사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미용실을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복지관을 찾아가 미용봉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지난 10년간 원주종합복지관에서 매주 수요일 미용봉사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어르신들은 물론, 장애인센터 내 젊은 친구들도 그녀의 가위에 머리를 맡긴다.

요즘은 손자 육아 때문에 전처럼 꾸준히 활동하진 못하지만 시간나는 대로 틈틈이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달 열린 개운동 경로잔치에서 미용봉사를 해달라는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흔쾌히 달려와 빠른 손놀림으로 두시간 동안 13명의 어르신들 미용을 책임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으로 양로원에 누워서 미용을 받던 어르신을 떠올렸다. 안 통장은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셔서 양쪽으로 요양사들이 붙잡고 침대에 누워계신 상태로 미용을 했어요. 코에 호스를 꽂고 말씀도 못하시는 분이 미용하는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움을 표현하시더라고요. 이런 분들을 위해 내 재능이 쓰일 수 있는 것에 감사함과 보람을 느꼈죠" 라고 말했다. 

그녀가 이렇게 소외된 이웃에 더욱 관심을 쏟는 건 그들과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39살이 된 그녀의 둘째 딸은 어릴 적 연탄가스를 마신 후유증으로 지적 장애를 갖게 됐다.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그녀는 봉사를 통해 딸과 같이 장애와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었다. 안 통장은 봉사를 하면서 딸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안 통장은 요즘 미용봉사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녀는 "우리 젊었을 적에는 미용사자격증을 딴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주변사람들에게 같이 미용봉사를 하자고 하면 꺼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아직까지 많은 곳에서 미용을 필요로 하는데 일손이 부족한 것이 안타깝죠"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그녀의 가위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겠다는 그녀의 재능기부는 끝이 없을 것 같다.

박수희 기자  nmpry@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