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로시티 대흥면의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농사일을 하고 있는 모습.

농촌은 해를 거듭할수록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도시는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발전하고 있으나 농촌의 경우 고령화, 일손부족, 인구 감소 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경쟁력을 잃어가는 농촌을 회생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그 답은 '사람' 그리고 '자립'이라고 생각한다. 농민들이 상실감에 빠져있기 보다는 마을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뜻을 모으고 마을공동체 사업을 발굴·추진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것도 문제다. 마을의 자립 의지를 꺾는 결과도 초래할 수 있기에 주민들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지는 자립 의지가 돋보이는 선진지역에서 접한 사례를 소개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대전지사는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잘 사는 마을 만들기 전략'을 주제로 충청남도 예산군, 아산시, 홍성군에서 현장연수를 실시했다. 원주 농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 지역의 마을들이 잘 사는 마을로 거듭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예산군 느린손협동조합
충남 예산군 대흥면은 지난 2009년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국제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지역이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출범한 슬로시티운동은 '느리게 살기'와 '슬로푸드 먹기'로부터 시작됐다. 속도가 중시되는 이 시대를 역행하는 운동일수도 있지만 느림의 미학을 통해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풍요로움을 찾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운동이며, 우리나라에는 10개 지역이 가입돼 있다.

인구가 2천100명 밖에 안되는 대흥면은 둘레 40㎞, 길이 8㎞에 달하는 예당저수지를 끼고 마을들이 형성돼 있다. 그리고 이 마을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 '느린손협동조합'이다. 슬로시티 대흥면과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가진 느린손협동조합은 지난 2013년 설립됐으며, 같은 해 마을기업으로도 선정됐다. 이곳을 중심으로 자체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다양한 마을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 느린손협동조합의 짚풀공예품.

느린손협동조합은 우리나라 짚풀공예의 메카로 통한다. 느린손협동조합이 설립되기 이전이었던 2010년부터 역사가 시작됐다. 슬로시티의 필수요소 중 하나가 전통공예였는데 지역을 대표할 공예가 마땅치 않아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답은 마을 어르신에게 있었다. 당시 대흥면 이장, 부녀회, 단체장 등으로 구성된 슬로시티주민협의체는 평범한 80대 동네주민이었던 김영제(현재 86세) 옹이 짚풀공예에 소질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중심으로 공예활동을 구상했다. 김 옹에게 매주 한 번씩만 마을주민이나 외지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짚풀공예교육을 해달라고 권유했던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에 김 옹은 초창기에 "이것이 무슨 재주야. 돈이 되지 않는 걸 누가 하겠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김 옹의 문하생들은 그의 지도 아래 시간을 거듭할수록 실력이 향상됐고 다양한 공예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2011년 마을 주민들이 만든 짚풀공예품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눈에 띄면서 예상치 못한 반응을 얻게 됐다. 그들은 대흥면 주민들이 만든 짚풀공예품의 참신함과 작품성에 매료돼 그해 개최한 국제공예브랜드페어에 대흥면 주민들을 초청한 것이다. 서울의 대형 행사장에 우연히 진열된 짚풀공예품은 기대 이상의 관심을 이끌었다. 주민들은 "과연 이것이 팔리겠어?"라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행사기간 동안 7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현장에서 공예품을 구매한 사람들로부터 주문도 들어왔다. 이후 대흥면 주민들은 2013년까지 3년 연속으로 국제공예브랜드페어에 참가하면서 꾸준한 관심을 얻었다.

짚풀공예의 가치를 알게 된 주민들은 적극적인 수익사업을 펼쳤으며, 매출이 꾸준히 신장했다. 이를 기반으로 2013년에 느린손협동조합을 설립했으며, 그해 9월에 공방을 열게 됐는데 연말까지 석 달 조금 넘게 벌어들인 수익이 1천500만원에 이르렀다.

현재 느린손협동조합은 18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13명이 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생산자 조합원 13명 중 50대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주민들은 모두 60대 이상 고령자다. 조합 측은 생산자 조합원이 만든 공예품을 대신 판매하고 있으며, 수수료 15%를 뗀 나머지 수익을 생산자에게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느린손협동조합은 짚풀공예사업에 그치지 않고 다각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을 폐가를 월 20만원에 임대해 자연밥상체험, 흙 물감 만들기 및 그리기, 천연염색, 손바느질, 숲체험 및 자연미술 등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달팽이 자연학교를 만들었다. 느린손협동조합의 도전은 이에 그지치 않고 또다른 협동조합도 구상 중이다. 박효신 느린손협동조합 사무국장은 "현재 조경사업과 웰빙음식·자연밥상을 주제로 한 협동조합을 검토 중이며, 올해 안에 설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 아산시 공세리에 위치한 꿈꾸는 팽나무 도서관

아산시 공세리마을협동조합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는 120년 역사를 가진 공세리 성지성당이 위치한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공세리 성지성당은 영화와 드라마 70여편을 찍은 장소일 정도로 '영화인들이 뽑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도 유명하며, 350년 이상 보호수가 3그루나 있고 이에 못지않은 수많은 나무들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어 성당에만 연간 10만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다.

이처럼 내로라할 명소가 위치한 공세리는 분명 성당으로 인한 수혜를 볼 수 있는 마을로 생각된다. 그러나 방문객들이 마을과 연결되지 않은데다 열악한 교육·문화환경, 고령화에 따른 노인복지 수요 증가, 외지인 투기 및 난개발 등 고민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선 마을주민들의 의지가 모아져야 했다. 이에 인주학부모회, 공세리 주민 등 '마을 만들기' 사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참여해 마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화두는 주민복지 증진이었다.

주민들은 지난 2011년 제한적인 교육·문화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아산시 도서관 공모사업에 도전해 '꿈꾸는 팽나무 도서관'을 마을 내에 유치했다. 공세리 성당과 신협에서 토지를 무상 대여해줬으며, 학부모들이 자원봉사로 도서관을 운영해왔다. 이곳에선 원어민 영어수업, 수학교실, 글쓰기 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뤄졌다.
농촌 주민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평생학습프로그램도 추진했다.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아산시 공모로 추진한 평생학습마을을 통해 노인문해교실, 스포츠댄스, 풍물교실, 마을리더 양성특강, 클레이 아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와 같이 주민들의 마을발전을 위한 사업을 펼쳐온 가운데 지난 2012년 조합원 28명이 참여해 창립한 공세리마을협동조합은 마을사업을 모두 아우르는 주체로 거듭났다. 공세리마을협동조합은 창립과 함께 '공세리 이야기'라는 북카페를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마을사업에 재투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공세리 이야기는 원래 다방으로 운영되던 것을 리모델링한 것이어서 마을경관을 제고하면서 소통공간으로 거듭나게 돼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공세리협동조합은 이후 공세리 이야기를 중심으로 2013년에 마을기업에 선정됐으며, 2014년에는 충남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공세리 이야기에서 판매하는 팥빙수는 어느덧 이 지역의 대표 먹거리로 거듭났다. 마을 주민들이 생산한 팥을 사용하며, 팥빙수에 들어가는 인절미는 마을 방앗간에서 만든다. 또한 친환경 하우스에서 토마토를 재배해 팥빙수에 넣거나 카페 내에서 판매하고 있다. 조합 측에서 정성을 담아 팥빙수를 만든다는 소문이 자자해 일부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지난해의 경우 팥빙수 2천그릇을 팔았다. 팥빙수가 조합 운영 경비에 큰 보탬이 되는 만큼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공세리마을협동조합은 또 북카페 개설에 그치지 않고 마을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지난 2014년에는 충청남도 공모사업으로 공세리 공감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 마을 내 상가 간판 및 이정표를 정비하고 노후된 담장 등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마을 아이들에게 질 좋은 방과후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도출돼 지역아동센터를 유치하기도 했다.

김미화 공세리마을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우리 마을 사업은 단순한 수익사업이 아니라 주민들의 요구조건을 충족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며 "여러 이웃과 힘을 합쳐 모두가 행복한 마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마을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 홍성군 봉암참새방앗간 부녀회원들이 두부 만들기 체험이 끝난 후 시식용 두부를 준비하는 모습.

홍성군 봉암참새방앗간
50여가구에 불과한 작은 농촌마을인 홍성군 금마면 봉암마을에는 상징적인 방앗간이 있다. 마을 부녀자 9명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봉암참새방앗간이다.

지난 2005년 마을 부녀회원 12명이 모여 방앗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고춧가루나 쌀가루를 빻아주고 떡을 만드는 평범한 방앗간이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고령자 위주의 마을에 생기를 돌게 하고 노인 일자리 창출과 마을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보물과도 같은 곳이다. 10년간 문 닫지 않고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단골을 확보해왔으며, 주력상품인 쑥개떡은 꾸준한 매출을 올리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홍성군 내 관공서나 기업체에도 꾸준히 납품하고 있다.

봉암참새방앗간은 지난 2014년 마을기업으로 전환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마을기업을 설립하면서 체험장을 만들어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쑥개떡 만들기, 두부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부녀회원들이 반죽을 제공하면 체험객은 원하는 모양의 쑥개떡을 만들어 직접 맛볼 수 있다. 두부 만들기의 경우 콩을 갈아내는 것부터 간수를 부어 틀에 넣어 굳히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봉암참새방앗간의 매출은 연간 1억원 내외로 부녀회원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9천800만원을 벌어들였다. 또한 두부 만들기 체험과 떡에 쓰일 콩고물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콩은 마을주민들에게 직접 수매해 방앗간에서 일하는 회원들 이외에도 다른 마을주민들도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주진자 봉암참새방앗간 대표는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주민과 함께 오랫동안 일을 해왔다는 것에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며 "나아가 이 방앗간이 우리 마을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동식 기자  dspark@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