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는 도시와 농촌이 조화를 이루는 도농 복합도시이다. 그러나 개발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농촌이 빠른 속도로 도시화 되고 있다. 대표적 예가 혁신도시와 기업도시이다.

남원주역 역세권 개발사업과 부론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등도 도시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또한 경기도 광주∼원주 고속도로가 오는 11월 개통 예정인 데다 여주∼원주 전철사업이 확정되면서 교통망 개선으로 인구 유입이 활발하다. 

개발사업 및 외지인구 유입은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외지인 유입 및 도시화로 인한 지역공동체 문화의 실종이다. 지역공동체 문화는 지역의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원주를 지탱하는 큰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원주에는 지역공동체 문화의 유지 및 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이 많이 있다. 

단구동 한일아파트 청·장년회(회장: 안상기)는 지난 1997년 결성됐다. 7개동 540세대 규모의 이 아파트는 전 세대가 79.34㎡로 동일하게 구성돼 있다.

게다가 청·장년회가 구성될 당시만 하더라도 아파트 가격이 지금처럼 높지않아 젊은 세대가 주로 거주했다. 젊은 사람들로 아파트 단지가 북적이다보니 소통이 원활했다. 비슷한 또래들끼리 어울리다보니 만남의 횟수가 잦아졌고, 급기야 청·장년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아파트 부녀회는 흔하지만 아파트 청·장년회는 당시에도 매우 드문 사례였다. 농촌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보기 때문에 청·장년회를 수월하게 만들 수 있지만 아파트는 사정이 다르다.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함께 이용하는 같은 동 입주민이 아니고서는 남남이다. 그래서 한일아파트 청·장년회는 결성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다. 

체계화된 운영방침도 남달랐다. 이들은 1998년 작성한 회칙에서 "회원 상호간 친목을 도모하고 우리의 지역과 우리의 주거가 더욱 살기좋은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구성 목적을 명시했다. 또한 회원 자격 및 권리, 임원 선출과 임기, 임원의 임무 등을 회칙에 세세하게 나열할 정도로 조직화 했다. 

 

▲ 101동 앞 주차장에서 열린 입주민 단합대회에서 훌라후프 오래돌리기 경기를 하고 있다.

2000년부터 입주민 단합대회 

체계화된 조직력으로 만든 첫 작품이 지난 2000년 열린 제1회 한일아파트 주민 단합대회였다. 한지붕 아래 사는 입주민들이 얼굴은 트고 지내자는 취지였다. 입주민들이 얼굴을 알고 지내면 주차 시비, 층간소음 문제 등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갈등은 손쉽게 해소할 수 있지 않겠냐는 데서 출발했다. 

단합대회를 연다는 소식에 아파트 부녀회에서는 폐품 등을 판매하며 살뜰히 모은 회비를 제공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주변 상가들에서도 협찬품을 내놓는 등 십시일반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이러한 도움에 청·장년회 회원들의 노력이 더해져 제1회 주민 단합대회는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매년 이어졌다. 족구, 배구, 탁구, 피구 및 어르신들을 위한 윷놀이, 아이들을 위한 박 터트리기와 훌라후프 돌리기, 청소년들을 위한 농구대회 등 다양한 경기가 펼쳐졌다.

노래자랑의 경우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흥에 겨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대형불판에 굽는 삼겹살 냄새도 입주민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제1회 주민 단합대회를 계기로 청·장년회원 수는 70명 가까이 늘어났다. 단합대회에 참가했다가 분위기와 취지에 반해 청·장년회에 가입한 입주민이 많았던 것이다. 

 

▲ 팔씨름대회는 단합대회의 여러 경기 중 인기를 끈 종목이다.

어린이날 행사·윷놀이대회 개최 

주민 단합대회의 성공 개최로 자신감이 붙은 청·장년회는 어린이날 행사를 추진했다. 주민 단합대회 때 텅 빈 주차장을 마음껏 뛰놀던 아이들에게 5월 5일 어린이날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이었다.

어린이날에 앞서 안내방송을 통해 101동 앞 주차장에서 차량을 모두 뺀 뒤 이동식 어린이 놀이터를 설치했다. 또한 이날 만큼은 아이스크림과 솜사탕을 무제한 제공해 아이들의 천국으로 만들었다.  

정월대보름을 즈음해서는 입주자대표회의와 함께 한일아파트 윷놀이 대회를 개최했다. 아파트 내 농구장에 행사장을 꾸미고 가족단위로 신청을 받아 윷놀이 대회를 개최한 결과 주민 단합대회 못지않은 성원이 이어졌다.

겨울방학 때 실시하는 현장체험학습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초등학생들을 모집해 쓰레기 매립장, 하수종말처리장 등 환경시설은 물론 시립박물관, 교통방송국 등을 견학하며 환경의 중요성과 지역의 주요 시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진정한 주민자치 실현 

청·장년회는 입주민 화합은 물론 환경개선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놀이터에 울타리를 만들고, 아파트 미관개선을 위해 화단을 만들었다.

또한 바로 옆에 있는 대림아파트에서 지하수를 끌어와 야외 음수대 및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다. 자전거 거치대와 정문 앞 비가림시설도 청·장년회 작품이다. 입주민들 스스로 살기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주민자치를 실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장년회 회장을 역임한 김효중 원주시의회 홍보담당은 "인근 아파트들이 한일아파트 행사를 보고 윷놀이 등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면서 "입주민들의 단합이 살기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청·장년회에서 활동하다 다른 곳으로 이사간 '전 입주민'들은 둥지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끈끈한 결속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둥지회 회원인 전민구 대성고 교사는 "몸은 한일아파트를 떠났지만 마음은 아직 남아있다"면서 "지금도 한일아파트에서 행사가 열린다고 하면 한달음에 달려간다"고 말했다.

한일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인 류인출 시의원은 "지난 1997년 아파트 입주가 시작돼 올해로 입주 20년째를 맞는 만큼 올해는 예년보다 풍성한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이상용 기자  sylee@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