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전국에 8천920여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됐습니다. 강원도에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426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됐습니다. 이중에는 그 설립 목적에 맞게 잘 운영되는 곳도 있는 반면, 이에 못지않게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거나 아예 문을 닫은 협동조합도 많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사업 활성화'가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는 협동조합을 '휴면 협동조합'이라고 규정하고, 이 휴면 협동조합의 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판로개척 등을 지원하는 활동을 올해 중점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활동하지 못하거나 문을 닫은 원인을 '사업의 부진'에서 보는 것입니다. 물론 마땅한 진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활동을 못하거나 문을 닫은 원인을 '사업의 부진'에서만 찾는다면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올바른 치유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협동조합의 사업은 조합원의 필요와 염원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수단이 잘 작동되기 위해서는 이 수단을 통해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결의와 움직임이 선행돼야 합니다. '결의(結義)는 협동조합의 생명선'이라는 것도 이를 강조한 말입니다. 상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호응을 많이 얻고 적게 얻고 하는 것과는 범주가 다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협동조합의 사업은 시장에서의 가능성이 선택의 유일 기준이 아니라, 조합원의 필요와 염원, 또 이를 해결하고자하는 사람들의 결사(結社)를 바탕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협동조합 운동을 통해 인간적인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말씀은 이런 차원에서 현재 우리가 꾸려가야 할 협동조합의 방향을 정확히 짚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께서는 협동운동의 계승발전을 위해 첫 번째 조건으로 "꼭 필요한 사람을 찾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필요와 염원,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사업을 통해 스스로 해결해 보고자 하는 사람. 협동조합 방식의 삶이 꼭 필요한 사람. 이러한 사람을 찾아 함께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기계적으로 사람을 결합시켜 법인을 만드는 현상이 비일비재 한 상황에서 무위당의 말씀은 우리가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이밖에도 선생께서는 ▷교육을 부단히, 지속성 있게 추진해야 하는 것 ▷시대에 맞는 협동문화를 개발해야 하는 것 ▷돈은 수단이지 사람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협동운동을 북녘 주민들에게도 심어주면서 자본주의 모순과 사회주의 모순에서 주민에게 살 길을 찾아주는 것 등을 강조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협동조합이 유지·발전되려면 ▷목적이 뚜렷해야 하며 그 목적은 인간화 운동이어야 한다는 점과 ▷돈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을 위한 조합원·임직원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 ▷임원은 사회를 밝게 하려는 철학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지도자는 편견이 없이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협동조합 운동가는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한 강한 의지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꼭 필요한 용도에 감사히 쓰이는 돈이어야 회수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강조하셨습니다. 

현재 협동조합 운동의 잘못된 흐름들에 비춰보면 어느 것 하나 적당히 살피고 넘어갈 문구가 없습니다. 깊은 반성 속에 말씀 하나하나의 의미를 깊이 새겨봅니다. 
권력 추구적인, 배타적 경쟁원리를 넘어 자율적이며 협동적인 공생의 질서를 만드는 진정한 협동조합 운동을 위해, 말씀 그 자체가 말 그대로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합니다. 

원주에는 지난해 말 기준 협동조합기본법에 근거한 협동조합이 68개 설립됐습니다. 무엇보다도 원주는 신협과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등 선배 협동조합이 지역에서 협동조합 운동을 이끌어 왔고 이제 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들이 결사라는 바탕 위에 협동조합 사업을 일구고, 이러한 움직임이 거미줄처럼 이어지고, '사업'에 경도되는 게 아니라 꼿꼿한 원칙아래 다른 범주로서, 지역공동체를 함께 일궈가려는 노력이 들불처럼 이어지길 희망합니다.

김선기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사업지원국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