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소비자단체에서는 수능이 끝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소비자교육을 나간다. 교육을 신청한 학교로 강원도청 경제정책과에서 소비자단체에 강사 요청을 하며 권역별로 담당하여 강의를 나가고 있다. 

강의를 나가본 경험에 의하면 수능을 끝내고 몸도 마음도 방전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웬만한 교육이란 교육은 다 받아본 학생들 입장에서도 뭔가 또 다른 이름의 교육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도 강원도청의 요청으로 철원, 홍천에 강의를 다녀오면서 청소년 소비자교육의 필요성을 해가 갈수록 더욱 절실히 느낀다.

처음 교육을 나갔을 때부터 올해 홍천고등학교에서 마지막 교육을 할 때까지도 늘 빼먹지 않고 하는 개인적인 피해사례가 있다. 88꿈나무로 불리던 88년도 신입생 시절, 그러나 입학도 하기 전 오리엔테이션을 하러 학교에 갔을 때 일이다.

달랑 신관과 본관밖에 없었던 그 시절 혼자서 오리엔테이션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건물은 신관이었고 내가 가야 할 건물은 본관이었다. 누가 봐도 신입생이 분명한 나를 어떤 아주머니가 부르셨다. 손에는 다이어리를 들고 계셨고 이름부터 물으셨다.

이 아주머니가 왜 그러지? 학교 관계자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또다시 "무슨 과?" 하셨다. 오리엔테이션과 관련된 분이구나 막연히 생각하고는 알려달라는 정보를 모두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 아주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뭔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처음 대학이라는 곳을 와서 얼떨떨한 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입학을 하고 어느 날 집으로 뉴스위크라는 영어잡지가 지로용지와 함께 배달되었다.

한글이라고는 한 글자도 없는 그 영어잡지를 일년인지 이년동안 받아보게 되었다. 나의 이 사례에서 가장 큰 피해는 불신감이었다. 부모님에게 짐을 지워드린 죄스러움과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자책감, 새로운 출발에 찬물을 끼얹는 어른들에 대한 배신감 등이 섞여 오랫동안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원주소비자시민모임의 대표직을 맡으면서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라는 소비자단체가 83년도에 창립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만일 그 당시에 이런 단체가 있다는 것과 소비자로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와 피해를 입었을 때 보상을 받을 권리, 선택할 권리 등이 있으며 무엇보다 부모님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거래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이 지났어도 청약  철회할 수 있는 미성년자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속수무책으로 그 긴 기간을 수준에 맞지도 않는 영어잡지를 받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그 아주머니와 같은 분들이 더욱 진화한 방식으로 심지어 강의실 안으로 들어와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7월 1일부터 성년의 기준이 만 20세에서 만 19살로 바뀌었다. 한국소비자원의 발표에 의하면 청소년 소비자피해의 40% 이상이 2월과 4월 사이 신학기에 발생한다고 한다.

미성년자의 기준이 한 살 줄어들면서 피해에서 구제받을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단축되었다. 대학에 입학과 동시에 성년이 되는 신입생들이 많아지면서 미성년자로서의 보호를 받을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다. 소비자단체가 하는 일 중에 소비자교육은 소비자로서 경제활동의 주체가 되도록 만드는 핵심적인 일이다.

그중에서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소비자교육은 초년생들에게 밑거름을 마련해주는 평생교육의 일환이다. 한 세대 전에 나에게 일어났던 피해사례가 더욱 진화하여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피해 입은 것을 본인의 탓으로 돌리거나 부끄럽게 생각하여 알리지 않고 올바른 대처 방법을 몰랐거니와 아무런 정보 없이 해마다 새로운 신입생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소비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인지시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게 만들고 현명한 소비활동을 통해 건강한 사회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본 원리이다.

주변에 성년을 앞둔 청소년이 있다면 청소년 소비자로서 알아야 할 기본사항들을 인지시켜주고 피해를 입었을 때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자. 이것도 저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망설임 없이 소비자문제 전문기관을 찾을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이다.

송미선 전 원주소비자시민모임 대표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