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영화 '암살'은 올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영화 중 하나이며 여성이 주인공인 거의 유일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화장기 없는 전지현의 자체발광 미모에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이경영의 연기력까지 더해졌으니 흥행은 보증수표나 다름없었을까? 그런데 사실 충무로에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그것이 무엇이든 흥행에 실패한다는 속설이 있어서 감독들이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데 주저한다고 한다. 최동훈 감독 역시 이 시나리오를 구상한 후 영화로 만들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다고 한다. 

그의 용기 덕분에 우리는 우리 역사에서 거의 존재조차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항일독립유격대원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며 그 시대에도 여성들은 다양한 위치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했음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최동훈 감독은 단지 영화 한편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현재로 불러낸 셈이다. 

요즘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한 논란으로 전국이 시끄럽다. 그러면서 갑자기 호명되어 나온 인물이 유관순이다. 역사교과서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성독립운동가가 유관순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관순은 '열사'가 아닌 '누나'로 우리에게 존재한다. 

그렇게 중요한 유관순 누나가 역사책에서 사라졌다고 교육부는 호들갑을 떨며 홍보영상까지 만들어 우리 역사교과서의 비정상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고자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살짝 의심이 든다. 국민의 많은 수가, 더구나 그 교과서로 가르치고 배워야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반대하는, 정작 국정화교과서를 집필하겠다는 학자도 없는 역사책을 왜 만들겠다는 건지? 국민이 분열하고, 여야가 대립하고, 대통령이 피의 여왕으로 조롱받는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교과서를 만들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말하고 보여주고 싶은 역사는 무엇일까? 국민들에게 강제로 주입하고 싶은 역사는 과연 사실을 담을 수는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런 국가에서 국민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세계사 속의 한 부분인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보며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갑자기 암흑의 군부독재 시절이 생각나는 것은 나의 과민함일까?

역사는 어차피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되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사라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무릎쓰고 저항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다. 그래서 우리는 히틀러의 만행도, 일제강점기 군위안부의 피해도, 미국의 흑인노예들의 삶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영화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관객들은 전지현의 실제인물이 누구인지를 찾느라 기록도 거의 없는 여성항일운동사 자료를 찾고 포스팅하며 남자현 지사가 맞니 아니니 설왕설래 했다. 그러나 난 항일전사 안윤옥은 한 사람이 아니고 그 시기 독립운동을 했던 모든 여성운동가들의 재현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록되지 않고 그래서 존재조차 부정당한 여성들의 역사, 난 그녀들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그렇게 다양한 시선과 관점으로 역사를 재조명하고 스스로 자료를 찾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주머니를 주입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채우기를 바란다.

수능이 코앞이다. 한국사 시험을 보지 않는 마지막 수능이다. 학생들이 시험 때문이라도 우리역사를 공부하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 아이들이 배우게 될 역사의 관점과 내용이 심히 걱정된다. 민주주의는 결코 강제와 획일화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아버지 시대의 교훈을 그녀가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정유선 강원여성연대 공동대표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