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위치는 문학과 책에 기반한 독서 문화가 시민들의 삶 속에 뿌리내려있는 곳이다. 사진은 평일 오후 노포크 & 노르위치 밀레니엄 도서관을 찾아 독서를 즐기는 시민들. 이 도서관은 7년 연속 영국에서 이용자가 가장 많은 공립 도서관으로 기록됐다.

기획취재 '문학으로 꿈꾸는 창의도시 원주'를 6회에 걸쳐 연속 게재합니다. 원주투데이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자문을 얻어 공예와 음식으로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된 전주시와 이천시 등 국내 사례를 취재했습니다.

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와 영국의 노르위치, 아일랜드 더블린 등 대표적인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에서 그들이 지역의 문화자산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고, 성과와 비전은 무엇인지 취재했습니다.

원주시가 2019년을 목표로 문학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을 추진중인 가운데 창의도시로 가기 위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지, 또 지속가능한 원주의 미래는 어쩐 모습이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 싣는 순서

1. 창의도시로 가는 길
2. 공예 창의도시 이천
3. 음식 창의도시 전주
4. 문호들의 고향 더블린
5. 출판산업의 중심 노르위치
6. 문학이 숨 쉬는 땅 에든버러

▲ 노르위치는 51억원을 투입, 박물관으로 사용한 '드래곤 홀'을 리모델링해 2017년 개관을 목표로 국제 글쓰기 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노르위치는 영국의 동부, 멀리 프랑스의 노르망디를 바라보는 항구도시다. 항구를 통한 교역이 활발하면서 11세기에는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였고 18세기 후반까지 영국 지방도시 중 가장 번성한 곳 중 하나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30여개의 교회는 당시의 번영을 말해준다.

영국 내에서도 문학 활동의 중심지로 평가받는다. 특히 역사적 문화적 전통이 뛰어나며 집필 공동체가 번창한 지역이다. 의회민주주의 공표, 혁명의 발발, 노예제 폐지를 위한 투쟁이 이뤄졌으며, 영국 독립출판사의 5%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도 수많은 시인, 소설가, 극작가, 번역가, 문학 비평가 등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최초'라는 수식어도 많다. 1395년 줄리안(Julian)이라는 여성이 여성 작가로는 최초로 영어로 책을 저술해 발간한 곳이다. 또한 1850년부터 공립 도서관 법률을 영국 최초로 제정해 시행해왔다.

영국 최초의 지역 도서관과 지역신문이 생겼으며, 영국 최초의 문예창작 석사과정이 1970년 노르위치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 개설됐다. 그만큼 문학과 책에 기반한 독서 문화가 시민들의 삶 속에 뿌리내려있는 곳이다.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문학이 발전한 결과, 뛰어난 출판 역사와 다양한 현대 출판산업은 노르위치 창조경제의 중심을 이룬다. 오늘날 노르위치의 출판산업은 지역의 중심 산업으로 성장해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노르위치의 독립 출판사들은 영국 전체의 5%를 차지하는 등 지역의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는데 공헌하고 있다.

니키 (NIkki rotsos) 노르위치시 문화예술과장은 "문학적 도시라는 시민들의 공통된 인식이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자 추동력"이라며 "거주 지역에 따라 높은 문맹률을 개선하고, 노르위치시를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도 그 배경"이라고 밝혔다.

영국 최초 문학창작 석사과정 개설

▲ 영국 여성 작가 최초로 영어로 책을 저술한 줄리안

노르위치는 작가 양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UAE: University of East Anglia)는 1970년 영국 최초로 문학창작 석사 과정을 개설했으며,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 이언 매큐언(Ian McEwan), 앤 엔라이트(Anne Enright) 등 세 명의 부커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부커상은 영연방 내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문학상으로 매년 영어로 쓰여진 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해 시상한다.

UAE가 문예창작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번역이다. 대학 내에 위치한 '영국문학변역센터(BCLT)'는 대학 내 문예창작학부 소속이면서 동시에 영국예술위원회의 '국립 포트폴리오 기구(National Portfolio Organisation)' 중 하나다.

유럽뿐 아니라 남미, 아시아권과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자신들의 작품을 다양한 언어로, 또 세계 각국의 문학작품을 자국어로 번역해 보급한다.

최근에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한국어 번역에 6명이 참여했으며, 영·미권에서 인기가 높은 소설가 한강 씨와 배수아 씨도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연계, 노르위치에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UAE 문학부 필립 교수는 "문학에는 창작뿐 아니라 연구나 비평이 함께있어야 하고, 번역은 또 다른 창작이라 생각한다"며 "인구 13만명의 중소도시 노르위치가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로 지정될 수 있었던 이유도 창작 못지않게 번역작업과 비평을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에서 이용자 가장 많은 공공도서관

▲ 개방형 구조로 설계된 노포크 & 노르위치 밀레니엄 도서관.

노르위치는 영국에서도 가장 빼어난 중세건물과 가장 현대적인 건물이 공존하는 도시다. 특히 노르위치 중심부에 위치한 '더 포럼(The Forum)'은 노르위치를 대표하는 가장 현대적인 건물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어 새로 지어진 건축물로 학습과 예술, 정보센터 등 종합적인 공공기능을 수행한다.

중앙도서관인 '노포크 & 노르위치 밀레니엄 도서관(The Norfolk and Norwich Millennium Library)'을 비롯해 관광안내소, BBC 지역방송국, 오리진스(Origins) 라디오 방송국 등이 들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2001년에 개관한 '노포크 & 노르위치 밀레니엄 도서관'은 유네스코 창의도시 노르위치의 자랑이다. 새 천년을 상징하는 신축 건물에 2001년 당시 92대의 PC를 갖추고 신문과 잡지 등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지역 주민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원하는 지식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RFID시스템(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Device, 전자식별태그)을 도입, 책 분류부터 대여, 정리까지 모든 도서관리를 자동화시켰다. RFID시스템 도입은 도서관의 미래를 제시한 곳으로 주목받는 미국 시애틀 공공도서관보다 앞선 것으로 노르위치 시민들의 자긍심이 대단하다.

영국문학번역센터 국제 프로그램 디렉터 케이트(Kate Griffin)는 "'노포크 & 노르위치 밀레니엄 도서관'은 2013년 기준으로 7년 연속 영국에서 이용자가 가장 많은 공립 도서관으로 기록되기도 했다"면서 "노르위치 주민들의 독서 문화를 피부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라고 말했다.    

노르위치 창조도시의 핵심 글쓰기 센터

2003년에 세워진 노르위치 글쓰기 센터(Writers' Centre norwich)는 창의도시 노르위치의 핵심이다. 유네스코 창의도시 노르위치의 사무국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워크샵과 강의, 각종 대회 등을 통해 전문적인 작가를 양성하는 동시에, 시민들의 글쓰기를 장려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럽권 작가를 대상으로 신구 작가의 멘토링 프로젝트와 출판 지원도 이뤄진다.

올해 11회째를 맞은 '세계문학페스티벌' 등을 통해 매년 전세계 작가를 초청해 컨퍼런스를 진행하고 글쓰기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교환한다. 학교 내 프로그램과 여름학기 독서 캠페인도 글쓰기 센터의 주요 사업이다. 참가한 수천 명의 어린이들에게 독창적인 사고와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과정을 제공한다.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전세계 문인들과 교류하며 국제 협력과 파트너십에서도 비중있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노르위치 글쓰기 센터 프로그램 디렉터 조나단 몰리는 "노르위치는 국제 피난처 도시 네트워크(ICORN: International Cities of Refuge Network)의 창립 멤버로 '피난의 도시(City of refuge)'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는 망명 작가들이 터전을 삼은 작가 보호의 도시"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노르위치 작가센터는 활발한 활동에 힘입어 300만 파운드(한화 51억원)의 지원금으로 2012년부터 국제 글쓰기 센터(ICW: International Centre for Writing)를 건립중이다. '드래곤홀'이란 불리는 과거 박물관을 리모델링 하는 작업이다.

이미 올해 초 노르위치 글쓰기 센터가 이주해 활동중이며, 창작실과 작가 거주공간, 강의실 등을 추가로 확장하고 있다. 2017년 국제 글쓰기 센터가 개관하면 센터 인근 도로는 노르위치가 배출한 작가들의 이름으로 명명할 예정이다.

프로그램 디렉터 조난단 몰리는 "오늘날 노르위치는 시인, 소설가, 전기작가, 극작가, 번역가, 문학 비평가, 사학자, 환경 운동가, 철학자들이 모이는 영문학의 종착점으로, 작가들도 이 곳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면서 "국제 글쓰기 센터가 완공돼 본격적으로 운영되면 노르위치가 창의적 글쓰기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