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마포구립성미어린이집 아이들은' 들살이'를 나가 텃밭에서 기른 감자를 수확했다.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보육환경은 사실상 위기에 놓여있다. 많은 가정이 맞벌이를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자녀를 낳자마자 '보낼 곳'을 찾아야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결국 부모는 보육시설에 크게 의존하지만 보육교사의 근무조건은 너무 열악하다.

부모는 어느새 '보육 소비자'가 되어 보다 나은 보육의 책임을 남에게 옮겨놓은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할 때다. 또한 이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되찾아야 한다. 

부모와 교사, 보육시설, 넓게는 마을이 함께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자'는 목표로 보육에 참여하고 있는 공동육아 현장을 만나보기로 했다. 공동육아를 통해 다시금 보육의 참 뜻을 새겨볼 수 있으며, 그것은 어쩌면 지역사회 보육환경을 바꿔나가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싣는 순서
1. 공동육아의 역사, 원주 소꿉마당
2. 어린이집을 넘어 마을 공동체로
3. 공동육아 어린이집 탐방
4. 국공립어린이집, 직장보육시설 위탁사례
5. 지역 보육환경 개선을 위한 과제

공동육아의 문턱을 낮추다

공동육아를 통해 아이에게 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보육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지만 부모들이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부모 참여가 많다는 것도 바쁜 부모들에게는 걱정이 앞서는 부분이지만 그보다 더 부담이 되는 것은 바로 '출자금'이란 목돈이 든다는 점이다.

현재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회원기관을 비롯해 국내 대다수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어린이집이 위치한 지역과 터전 소유 여부에 따라 그 차이가 좀 큰 편인데 입학 시 약 300~800만원 사이의 출자금을 내고, 졸업할 때 100~200만원 가량을 기부하고 되찾아간다. 기부하는 금액이 일부라고해도 일반 어린이집을 보낼 때 초기비용과는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부담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출자금과 조합원 활동 등 협동조합이라는 형태가 망설여져 공동육아를 결정하지 못한 사례가 늘자 '위탁운영'이란 제도가 대안으로 모색됐다. 현재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이 위탁을 맡아 운영 중인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직장어린이집 1곳과 국공립어린이집 3곳.

운영 구조에 있어서는 협동조합형과 다르지만 아이들의 자율성이 존중되는 생활과 부모 참여 등은 공동육아 현장과 동일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마포구립성미어린이집

'조합형'이 아니어도 가능할까?

▲ 성미어린이집 아이들이 손바닥 도장과 그림으로 나들이 손가방을 직접 꾸몄다.

마포구 성산동 주택가 언덕에 위치한 마포구립성미어린이집은 20년 전 일반국공립어린이집으로 문을 열었지만 마포구청이 2009년부터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에 위탁을 맡겼다.

부모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경험하면서 과연 '부모참여'라는 것이 '조합형'에서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어왔으며, 새로운 형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 환경을 모색한 것이다.

마포구청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국공립어린이집에 공동육아를 접목하는 첫 사례를 만들었다. 현재 47명 아이들이 다니고 있으며, 원장과 보조교사 등 9명의 교사가 보육을 맡고 있다.

부모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달리 이곳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은 '공동육아'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때문에 처음에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추구하는 가치와 교육철학, 운영방침 등을 부모들에게 설명하고 공감을 얻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진선경 원장은 "교육 욕구로 인해 어떤 교육들을 진행해 달라고 요구하는 부모들도 있었다"면서 "아이들의 연령에 주입식 교육이 맞지 않는다는 것과 '집단'에서 감당할 수 있는 부분, '개인'이 맡아야 하는 부분을 구분해 주기를 설명하며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운영 환경을 좋아했다. 아이들이 숲으로 나가 뛰어놀고, 친환경 급식을 하고, 부모가 원할 때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여건은 곳 아이가 즐겁고 부모가 마음 놓이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할 수 록 '공동육아를 하는 국공립어린이집'이라는 게 지역에 서서히 알려졌고, 기존의 부모들이 부모회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혹 모르고 오는 부모들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가게 됐다.

공동체성을 만들고 마을을 바꿔간다 

'협동조합'에 관심이 없던 부모들도 어린이집에서 보육에 참여하다보면 공동체성을 갖게 된다. 부모회를 통해 크고 작은 부모 모임을 진행하고, 아이들의 보육을 함께 고민하다보면 '이웃'이 되는 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립어린이집이라는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들이 이미 가까운 주변마을에 살고 있다.

집이 가까워서 아이를 보낸 어린이집 덕분에 그동안 가까이 살지만 모르고 지낸 사람들이 이웃이 됐고, 그렇다 보니 아이들과 부모들이 서로 집에 놀러가는 일도 많아져 생활을 공유하게 됐다. 진 원장은 "처음에는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모여 아주 가까워지는 것을 보게된다"고 말했다.

마을의 분위기도 덩달아 바뀌어 갔다. 어린이집이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보니 매일같이 나와서 뛰고 소리치는 아이들이 인근 주민들에게 '소음'으로 여겨져 민원이 많았다.

처음에는 어린이집이 이해를 바란다고 사과했지만 이제는 태도를 좀 바꿨다. 아이들이 낮에도 뛰어다니고 소리치지 못한다면 언제 자유롭게 놀 수 있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주민들은 이웃에도 성미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서서히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부모참여는 조합형과 비교해 재정에 참여하지 않고, 시설관리에 대한 책임이 덜하다는 것 외에는 거의 동일하다. 모든 부모가 부모회에 가입하며 각 소위위원회 활동에 참여한다.

운영위원회 역시 부모회 중심으로 돌아가 운영 계획을 수립하는 것부터 모든 어린이집 생활에 부모가 의견을 개진하고 조율해 결의한다. 매월 교사와 함께 방모임을 진행하고,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인 소모임을 갖으며 보육에 참여하고 있다.

책읽기 모임에서는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 이후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7세반 아이들이 졸업 전 3개월 '낮잠끊기' 훈련을 하는 기간에는 기존 낮잠 시간에 재능을 가진 부모들이 참여해 미술활동을 진행하고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뿌리와새싹커뮤니티센터

기업의 사회적기여가 만든 지역커뮤니티센터

▲ 지난 6월 뿌리와새싹 아이들과 노인들이 함께 기른 밀을 수확해 센터 앞에서 굽고 있다.

뿌리와새싹커뮤니티센터는 직장보육시설의 공동육아 위탁운영 사례인 동시에 '노인과 아이'가 함께하는 세대 공감 터전이다. '뿌리문화원'에 해당하는 노인문화시설과 '새싹어린이집'으로 불리는 뿌리와새싹어린이집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이 공간은 한화그룹의 자회사인 (주)대덕테크노밸리가 대덕테크노밸리 신도시를 계획 할 때부터 설계됐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 하다.

(주)대덕테크노밸리는 지난 2008년 택지를 분양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기여 차원에서 건강한 지역문화 공간을 만든다는 취지로 노인과 아이가 함께 생활하는 커뮤니티센터를 설립했다. 20억원을 투자해 약 660㎡ 대지에 2층 규모로 두 건물을 이어 짓고, 넓은 공터를 확보해 나무를 줄지어 심었으며 앞으로는 공원과 놀이터가 이어지도록 했다.

이 지역에 입주하는 주민과 입주 사업체 근로자의 자녀를 위해 공동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도록 했으며, 지역 노인들이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경로당을 포함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이렇게 계획한 두 공간을 함께 운영할 곳을 찾은 끝에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에 위탁운영을 맡기면서 시설을 무상으로 제공했고, 이후 지자체로 기부해 현재는 대전광역시 소유가 됐다.

권영학 뿌리와새싹커뮤니티센터 사무국장은 "보통의 기업이 택지에 입주하는 주민의 생활 여건은 생각하지 않은 채 건물만 빼곡히 짓고 어떻게든 이익을 남겨 떠나는 게 대부분"이라며 "대덕테크노밸리는 기업의 사회적 기여가 지역의 따뜻한 문화를 만들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사례"라고 말했다.

주택단지 역시 이면도로의 폭을 충분히 확보했으며, 건물과 건물 사이의 거리도 여유 있게 설계 한 것을 유관으로도 확인 할 수 있었다. 기존에 있던 자연습지도 그대로 살려 공원을 조성했다.

이와 같이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고려한 택지 조성은 기업이 실천한 진정한 사회적 기여의 한 사례로 꼽혔다.

▲ 뿌리와새싹커뮤니티센터 앞 광장에 아이들과 노인들이 함께 기르는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노인들…'뿌리'라는 자긍심 고취
아이들…"할머니,할아버지 있어 좋아요"

뿌리와새싹어린이집에는 대덕테크노밸리와 대덕연구단지 등 60여 곳 사업장이 참여한 직장보육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91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교사는 보조교사를 포함해 18명이 근무한다.

이곳 아이들의 생활이 차별화 된 점은 다름 아닌 뿌리문화원 노인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이다.

박현숙 원장은 "어린이집에서 음식 만들기를 하면 어르신들에게 가장 먼저 가져다 드리고, 어르신들은 지끈 공예로 공예품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해 주신다"면서 "여기계신 어르신들이 과거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그 노하우로 아이들 텃밭 가꾸기에도 많은 도움을 주신다"고 설명했다. 세시풍속 등 놀이와 어린이집 행사에도 함께 참여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언제든지 오며가며 마주치며 생활한다.

졸업부모들 교육협동조합 창립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인근으로 모여든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마을공동체를 형성해갔다.

졸업한 부모들은 교육협동조합을 만들어 현재 학년별 방과후로 계수나무, 은하수, 함지박 교육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협동조합은 뿌리와새싹커뮤니티센터와 연대해 지역 축제나 행사를 함께 하기도 한다. 마을카페도 만들었으며, 독서, 기타, 기체조 등 다양한 주민 소모임을 꾸려가고 있다.

한편, 뿌리와새싹커뮤니티센터는 현재 어린이집과 뿌리문화원을 운영하면서 지역주민대상사업, 청소년 사업 등을 함께 전개하고 있다. 현재 부모회와 졸업부모, 지역 주민 등 100여명이 모여 센터를 단체화하기 위해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한미희 기자  mhhan@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