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열린 제14회 성미산마을축제에서 아이와 부모들이 함께 축제를 즐기고 있다.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보육환경은 사실상 위기에 놓여있다. 많은 가정이 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자녀를 낳자마자 '보낼 곳'을 찾아야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결국 부모는 보육시설에 크게 의존하지만 안타깝게도 보육교사의 근무조건은 너무 열악하다.

부모는 어느새 '보육 소비자'가 되어 보다 나은 보육의 책임을 남에게 옮겨놓은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할 때다. 또한 이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되찾아야 한다. 

부모와 교사, 보육시설, 넓게는 마을이 함께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자'는 목표로 보육에 참여하고 있는 공동육아 현장을 만나보기로 했다. 공동육아를 통해 다시금 보육의 참 뜻을 새겨볼 수 있으며, 그것은 어쩌면 지역사회 보육환경을 바꿔나가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싣는 순서
1. 공동육아의 역사, 원주 소꿉마당
2. 어린이집을 넘어 마을 공동체로
3. 공동육아 어린이집 탐방
4. 국공립어린이집, 직장보육시설 위탁사례
5. 지역 보육환경 개선을 위한 과제

②어린이집을 넘어 마을공동체로

아이들은 '마을'에서 자라난다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이 말하는 공동육아는 단순히 부모와 교사가 함께 참여해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동육아의 배움터는 '자연'과 '마을'이 되며, 주민들과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것은 우리나라에 공동육아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그러했으며, 과거 우리 사회의 자연스러운 생활 모습이었다. 그래서 공동육아 협동조합이 어린이집 터를 고를 때는 첫째로 '흙마당이 넓은 주택'을 조건으로 해왔다.

물론 도심지역에서는 그런 장소를 찾기 어렵지만 최소한 작게라도 마당을 끼고 있으며 주변에 나들이 나갈 곳이 있는 환경을 고른다.

언제든 아이들은 마당에 나와 놀 수 있고, 또 마당을 넘어 동네를 누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마을 골목길, 들과 산에서 들리고 주민들과 매일같이 마주치고 친숙해진다.

그러한 생활은 주민들로 하여금 어린이집을 '우리 마을 어린이집'으로 여기게 하며, 아이들과 교사에게는 동네 전체가 생활터전으로 느껴지게 했다. 보육에 함께 참여하며 자주보고 가까워진 부모들도 자연스럽게 '이웃'이 되어간다.

동네에 살지 않던 아이들과 교사들이 어린이집 인근으로 이사를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어린이집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활동과 시간을 만들어 가면서 '공동체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 시작해 이제는 '마을 공동체'를 이룬 마을, 그곳에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교육과 상부상조하는 주민들의 생활문화터전을 위해 고민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지역 마을공동체 '서곡마을'

▲ 박영옥 자연누리숲학교 협동조합 이사장.

원주최초 공동육아협동조합 '소꿉마당'이 지난 2006년 흥업면에서 판부면 서곡리로 이사를 올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조합원 19가정 중 교사조합원을 포함해 7가정이 뜻을 모아 1천 500평 과수원 땅을 공동 구매했고, 거기에 어린이집과 조합원들의 집을 지어 '소꿉마을'을 일궜다.

그러자 차량 운행을 하지 않아 매일 아이들을 태워 서곡리 마을까지 등·하원 시켜주던 부모들이 하나, 둘 인근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됐고, 그렇게 마을에 소꿉마당 조합원들이 늘어갔다.

아이들이 대부분 2~3년 안에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가까이에 있는 서곡초등학교로 입학하게 되자 졸업 조합원들은 그 이후의 교육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 고민의 첫 번째로 초등방과후인 참꽃어린이학교를 만들었고, 이어 여행을 통해 배우는 중등대안학교 길터여행협동조합, 자연누리숲학교협동조합 등이 졸업 조합원들에 의해 생겨났다.

또한 서곡초 학부모로 참여하면서 교육적 가치에 대해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으며, 학교가 '행복 플러스 학교'로 선정 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서곡리에 위치한 소꿉마당어린이집, 서곡초교, 참꽃어린이학교, 길터여행협동조합, 자연누리숲학교협동조합, 굿네이버스강원아동복지센터, (사)서곡생태마을 7개 기관·단체가 참여해 지난해 '서곡교육네트워크(이하 서곡넷)'를 정식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서곡넷은 서곡지역의 교육, 복지, 주민생활 등에 보다 지속적이고 책임 있는 활동을 하고자 출발했으며, 현재 아동·청소년과 부모 및 교사 대상 프로그램, 가족체험학교 등 주민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기업 (사)서곡생태마을 역시 소꿉마당 어린이집 졸업 조합원이 중심이 되어 주민 모임을 구성하고, 마을기업을 만들면서 꾸려졌다.

▲ 지난해 10월 개최 된 제6회 용수골 작은음악회에서 주민들이 체험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생활문화공동체사업으로 목공, 풍물, 해금 등 10여개 동아리와 마을대학이 있으며, 녹색사업단 및 도자기 사업단, 농업유통사업단, 마을카페 사업단 등 마을기업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매년 개최하는 '용수골작은음악회'는 이제 서곡리를 넘어 원주지역에도 소문난 마을 축제가 됐다.

소꿉마당 초기 조합원이자 초대 원장을 지낸 박영옥 자연누리숲학교협동조합 이사장은 "과거 여성의 사회진출이 시작될 무렵 아이를 맡길 곳이 필요했고, 아이들을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기르고 싶어한 부모들이 모였던 것이 시작이다"라며 "그 부모들이 하나 둘 모여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더 넓은 의미의 교육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미산 마을

▲ 정영화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 대표.

언뜻 보면 서울 지역의 조용한 주택가 풍경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성미산 자락 비탈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마을 분위기가 어딘가 편안하다. 골목에 아이들이 무리지어 소리치며 뛰어노는 모습이 언제 낯선 풍경이 됐는지 모를 만큼 새삼스럽다.

'소행주'라고 쓰인 건물마다 주민들과 아이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나 책방 주변에서 아무데나 눌러앉아 흙 놀이를 하거나 나뭇가지를 갖고 한참을 만지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유분방해 보인다.

가방을 두 개, 세 개씩 들고 바쁜 학업 스케쥴을 소화하거나 핸드폰에 빠져있는 아이들은 볼 수 없었다.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학생을 실어 나르는 학원차량도 마을을 취재하는 동안 마주치지 못했다.

'성미산 마을'은 서울 마포구 성미산 일대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마을공동체를 일컫는 말이다. 성미산 인근 성산동, 서교동, 망원동 지역 1천여가구가 모여 살고 있으며, 이 마을 공동체의 역사는 지난 1994년 연남동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 '우리어린이집'에서 시작된다.

우리어린이집이 3년 뒤인 1997년 성미산 마을로 이사를 왔고, 어린이집 아이들은 매일 동네와 성미산을 누비며 놀았다. 매주 금요일 동네 아이들에게 어린이집 마당을 개방했고, 마을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과 놀이축제를 만들어갔다.

마을과 주민들이 아이들을 매개로 가까워 졌고, 그렇게 된 데에는 최초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우리어린이집의 초기 조합원이었던 부모들과 교사들의 역할이 컸다.

당시 교사로 일했고 현재는 마을에서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 놀이터를 운영하는 정영화 대표는 "욕구가 늘어나고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어린이집과 방과후교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2000년에는 4개 교육시설 부모협동조합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마포두레생협'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개별 어린이집을 넘어 주민들이 함께 구성한 첫 조직이었다.

성미산 지켜낸 주민들,공동체 활성화

이듬해 서울시가 성미산 개발 계획을 발표했고, 환경파괴를 우려한 주민들은 '마포두레생협'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성미산 개발 반대 활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활동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성미산을 지키는 사람들이라 하여 '성미산 지킴이', 그들이 사는 '성미산 마을'로 불리게 됐고, 그 무렵 주민들은 공동체성과 자의식을 갖게 됐다.

주민들의 끈질긴 반대 운동으로 결국 2년 뒤인 2003년 성미산 개발 사업이 중단 됐고, 주민들은 협심해서 마을을 지켜낸 동력으로 다양한 주민 커뮤니티 활동을 넓혀 나가게 된다. 최초의 마을기업이라 불리는 유기농 반차가게 '동네부엌'을 시작으로 카센터인 '차병원협동조합' 등 마을 기업이 생겨났고, 어린이집 이후 과정인 12년제 비인가 대안학교 '성미산학교'도 만들어졌다.

이후 20년 가까이 흘러오며 다양한 주민 모임과 단체, 협동조합 형태의 마을기업이 많이 늘어났다. 자연과 건강을 생각하는 '비누두레', 유기농 식당과 술집 '성미산 밥상', 장애가 있는 청년의 마을살이를 위해 마련 된 '성미산 공방', '되살림 가게' 등 주민의 생활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마을 기업이 공동체를 확장 시켰다.

또한 2010년부터 공동주택의 개념으로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을 건립하기 시작해 현재 소행주 5호가 오는 10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입주자 모집부터 시작해 토지계약, 설계·시공, 입주 후 관리 및 지원까지 소행주 주민이 공동으로 참여 한다. 개별의 집 외에 옥상정원, 복도마루, 공용물품보관소, 커뮤니티공간 등 공용공간을 활용하는 주택이다.

현재 성미산마을에는 4개의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과 1개의 공동육아 위탁 구립어린이집, 2개의 방과후교실, 그리고 생태주의 철학을 가르치는 대안학교 성미산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마을기업은 20여곳, 복지단체 1곳, 1개의 마을 라디오, 문화예술 및 스포츠 단체 5곳 등이 있으며, 10여개 마을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다. 또한 지신밟기, 나무심기, 성인식, 운동회 등 거의 매월 크고 작은 마을 축제가 열린다.

작은나무카페를 지켜주세요

한편, 1994년 아이들의 아토피를 걱정한 주민들이 모여 만든 유기농아이스크림 가게를 2008년 지금의 모습으로 꾸민 마을의 사랑방 '작은나무카페'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주민들이 또 한 번 힘을 모으고 있다.

이달까지 계약이 만료되자 새 건물주가 임대료 인상도 요구하지 않은 채 가게를 비워달라고 한 것이다. 이전 건물주에게는 매입도 거절당했었다. 마을 골목 초입에 위치해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편하게 이용하는 동네카페였다.

사실 매출은 현상유지 수준이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어 주변 상권도 임대료가 올랐다. 그러나 결국 인근 상가에 사람들을 모이게 한 작은나무카페가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지난달 25일 '마을공동체의 성장판을 닫는 젠트리피케이션, 정책적 대안은 있는가?'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으며, 지난 9일에도 작은나무카페를 지키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에 마을 만들기사업 이면에 높아진 임대료로 고통 받는 마을 기업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한미희 기자  mhhan@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