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기증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달 12일 원주역사박물관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이형만 선생의 작품을 무상 기증한 정연철(52, 반곡아이파크 입주자대표회장) 씨는 주위 소장자들이나 업자들의 요구를 뿌리치고, 기증을 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 씨가 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작품은 모두 9점이다. 12자 농을 비롯해 애기장과 문갑 각 한 쌍, 화장대와 교자상 각 1점, 그리고 부친의 명패 2점이 포함됐다.

부친 정도현(2011년 작고) 전 (주)강산체인 대표와 모친 최화실(2014년 작고) 여사가 35년 전 이형만 선생에게 주문 제작한 것으로 두 부부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30여년간 사용하면서 애지중지 아낀 유품이다.

당시 2천500만원을 들여 제작했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시세로 치면 물경 1억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정 씨의 부친 고 정도현 전 (주)강산체인 대표는 유통 근대화 바람이 불던 1970년대 도내 최초의 슈퍼마켓인 원주슈퍼마켓을 창업하고, (주)강산체인을 운영하면서 강원도와 충북, 경기도 일원에 체인점만 100여곳을 거느린 유능한 경영인이었다.

전국슈퍼체인협회장과 전국소매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중앙에서도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았다.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도 했지만 수천만원대의 작품을 주문 제작하기까지는 모친 고 최화실 여사의 전통 공예품 사랑이 컸다, 전경련 모임 등을 통해 다도와 전통공예에 관심을 키운 어머니가 틈 날 때마다 쓸고 닦으면서 애지중지 했다는 게 아들 정 씨의 설명이다.

작품을 만든 이형만 선생도 "도중에 보수를 하기 위해 잠시 맡은 적이 있는데, 수십년 사용하면서도 크게 손 볼 곳이 없을 정도로 세심하게 관리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한다.

정 씨가 기증한 유품은 이 것이 전부는 아니다. 부모님의 의복과 가방, 신발 중 쓸만한 것들은 모두 아름다운가게에 무상 기증했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족은 물론, 형제들도 정 씨의 결심을 응원해 줬다. 정 씨는 "선산 옆에 공간을 마련해 관리할 생각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것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감상하는 것을 부모님도 바라실 것이고 우리 가족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되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