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꿉마당 어린이집 원생들은 매일 오전과 오후에 어린이집 인근 산과 들로 나들이를 간다.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보육환경은 사실상 위기에 놓여있다.

많은 가정이 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 자녀를 낳자마자 '보낼 곳'을 찾아야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결국 어린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을 찾아 의존하지만 안타깝게도 보육교사의 근무조건은 너무나 열악하다.

부모는 어느새 '보육 소비자'가 되어 보다 나은 보육의 책임을 남에게 옮겨놓은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할 때다. 또한 이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되찾아야 한다. 

부모와 교사, 보육시설, 그리고 넓게는 마을이 함께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자'는 목표로 보육에 참여하고 있는 공동육아 현장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것만이 대안책은 아니겠으나 공동육아를 통해 다시금 보육의 참 뜻을 새겨볼 수 있으며, 그것은 어쩌면 지역사회 보육환경을 바꿔나가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싣는 순서
1. 공동육아의 역사, 원주 소꿉마당
2. 어린이집을 넘어 마을 공동체로
3. 공동육아 어린이집 탐방
4. 국공립어린이집, 직장보육시설 위탁사례
5. 지역 보육환경 개선을 위한 과제

 

▲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 소꿉마당 전경.

① 공동육아의 역사, 원주 소꿉마당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35년을 걸어온 공동육아 운동
사단법인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이사장: 박혜란)의 역사는 지난 1970년대 말 도시 빈민지역 아이들을 대상으로 탁아 운동을 전개한 '어린이 걱정 모임'에서 출발했다.

당시 군부 독재에 저항해 민주화 투쟁을 벌이던 대학생들은 노동현장,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 변두리로 형성된 빈민 지역에 관심을 가졌다. 서울 구로구 난곡동 천막촌에는 기존의 농촌 공동체를 잃고 쫓기듯 모여들어 밤낮없이 일하기 시작한 어른들로부터 방치된 아이들이 있었다. 

정병호(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공동대표,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기범(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상임이사,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을 비롯한 대학생들은 1978년 방정환 정신이 뿌리가 되는 '어린이 걱정 모임'을 결성했고, 같은 해 1920년대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 운동을 했던 마해송을 기억하며 '해송보육학교'를 만들었다.

야학을 졸업한 노동자들 가운데 선발을 통해 빈민가에 방치된 미취학 어린이들과 함께할 활동가(교사)를 양성했다. 정부의 탄압이 있기까지 4년간 40여명의 대학생이 가르쳤고 2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200명이 후원했다.

당시 해송보육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운 사람들이 기금을 모아 1980년 난곡동 달동네 꼭대기에 빈민 지역 최초의 유아원 '해송유아원'을 설립했다. 해송보육학교 출신 교사 8명이 오전과 오후로 나눠 유아 160명을 돌보고 교육했다.

이후 해송유아원이 새마을유아원으로 편입된 후 어린이걱정모임 활동을 재개해 무허가 주택 밀집지역인 서울 창신동에 '해송아기둥지'를 만들게 된다.

하루 종일 일터에 나가있는 주민들을 실제적으로 돕기 위해 종일반을 운영했고, 교사와 아이들은 바깥나들이를 자주 하며 지역 주민들과 어우러졌다.

교사들은 척박하기만한 주변 환경이 아이들에게 '자연'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흙과 물에서 놀고, 놀이재료를 만들고 낮잠을 잤다. 교사는 권위주의를 내세우지 않았고 '이모'나 '삼촌'으로 불리며 아이들에게 친근한 '어른'이 되어주었다.

이후 '영유아보육법' 재정에 대한 논의가 있을 무렵인 1990년 '또하나의문화' 모임과 만나 '탁아제도와 미래의 어린이 양육을 걱정하는 모임'이라는 단체를 결성, 2년 뒤 '공동육아 연구회'로 이름을 바꿨다.

윤우경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사무국장은 "1990년 마포구 망원동 연립주택에서 맞벌이 부부가 어린 아이들을 걱정해 밖에서 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아이들이 방화로 숨진 권혜영, 권용철 남매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면서 "집에서 방치되는 아이들의 문제와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이 필요하다는 욕구가 본격적으로 일어났던 시기에 단체 역시 새로운 보육환경을 모색했다"고 설명했다.

사건은 이듬해 영유아보육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됐으며, 공동육아연구회는 공동육아 형태의 새로운 보육방식을 연구한 끝에 공동육아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한다.

1994년 그렇게 모인 첫 번째 공동육아 협동조합은 신촌 연남동에 최초의 협동조합 어린이집 '우리어린이집'을 탄생시켰다. 이후 공동육아연구원으로, 2001년 사단법인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으로 조직을 개편해오면서 공동육아 정착과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2005년에는 영유아보육법상 보육시설 분류에 '부모협동보육시설'을 추가시키는데 공헌했으며, 공동육아협동조합 설립에 관련한 지원 사업을 비롯해 교육사업, 저소득사업, 모델개발사업, 대외연대 협력사업 및 연구 출판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인권과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을 사명으로 삼으며, 현재는 공동육아가 우리 사회에 보다 넓게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현재 회원기관은 전국에 공동육아 어린이집 69곳, 공동육아 방과후 17곳, 초등대안학교 1곳, 지역아동센터 6곳, 기관회원 3곳이 있으며, 국공립 어린이집 3곳과 직장보육시설 1곳을 위탁운영하고 있다.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 소꿉마당

판부면 서곡리에 위치한 원주공동육아협동조합어린이집 소꿉마당(이사장: 김태형, 원장: 홍사라) 주변은 옹기종기 모인 집 몇 채를 제외하고 온통 산과 밭이다. 어린이집 차량은 운행을 하지 않아 아침저녁으로 부모들이 아이들의 등·하원을 동행한다.

그 시간이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라고 여기는 교육철학 때문이다. 아이들은 원장을 포함한 교사들을 'ㅇㅇ반선생님' 이라는 호칭 대신 '달꽃','당근' 등 별칭으로 부른다. 존칭을 사용하는 것은 자유지만 강요하지 않고, 그래서 대부분 존칭을 쓰지 않는다.

소꿉마당의 일과는 오전 나들이로 시작된다. 산으로 들로 나가 나무와 풀, 꽃과 함께 어울려 놀고, 여름에는 오디나 산딸기를 따먹기도 한다. 비나 눈이 와도 날씨가 아주 험하지 않는 이상 나들이는 꼭 나간다.

그래서인지 현관에는 장화가 줄을 서있고 우비도 줄지어 걸려있다. 오전 나들이 후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나면 오후에는 전래놀이, 노래배우기, 풍물놀이 등 반 별로 놀이 활동을 진행하고, 그 후에는 또 밖으로 나가 텃밭 가꾸기, 줄넘기 등 야외 활동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비교적 단순한 일과지만 그 안에 나들이와 신체활동이 주를 이루고, 교사와 아이들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글이나 숫자를 가르치는 등의 학습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매일 숲에서 놀며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뛰어놀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또한 소꿉마당은 바른 먹거리를 지향해 먹거리는 두레생협과 원주한살림생협에서 공급받는다.

▲ 홍사라 소꿉마당 원장.

부모·교사·아이들이 함께 참여해 운영

소꿉마당은 원주에는 유일한 공동육아 협동조합이자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의 회원단체다. 1999년 5월 부모, 교사 등 9명 조합원으로 시작해 흥업면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 몇 차례 어린이집 자리를 옮기다가 지난 2006년 일곱 가정이 지금 소꿉마당이 위치한 땅을 공동으로 구입해 이사를 왔고, 주변에는 조합원들이 집을 지어 '소꿉마을'을 만들었다.

현재 소꿉마당 어린이집에는 4살에서 7살 연령의 아이들 26명이 다니고 있으며, 교사는 원장과 누리과정 보조교사를 포함해 6명이다.

교사 한 사람이 담당하고 있는 아동 수는 정부 기준보다 40~50%가량 낮은 편이라 부담이 적고, 대신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원장직은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맡고 있어 동등한 교사의 입장에서 역할이 주어질 뿐 권한을 갖거나 상하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소꿉마당 아이들의 부모인 조합원은 현재 20여 가정으로 모든 가족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출자금과 조합비 등 운영자금을 함께 모으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어린이집 운영을 함께 감당한다.

돌아가며 청소를 하고, 시설, 홍보, 회계, 교육 등 5개 분과에 모든 조합원이 의무적으로 속해있어 분과별로 필요한 활동을 맡는다. 전체회의와 아빠모임 및 엄마모임은 매월 1회 진행하고, 그밖에도 운영위원회, 반 별 회의, 이사진 회의, 정기총회 등 많은 시간을 부모와 교사들이 모여 밤늦도록 의견을 나눈다.

홍사라 소꿉마당 원장은 "공동육아 협동조합 어린이집은 부모와 교사, 아이들이 함께 교육환경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데 가장 큰 장점이 있다"면서 "아이들이 행복한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고 부모와 교사들도 서로 충분히 의견을 나눠 운영을 조율하면서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부모 참여가 많지만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부분은 30대로 대다수가 맞벌이를 하고 있다. 바쁜 일상이지만 가치의 중심을 옮겨 아이들의 보육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공동육아를 결정하기 어려운 부모가 많다는 게 안타까운 점이다.

김태형 소꿉마당 이사장은 "부모 중 한 사람이 육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참 안타까운 일이고 결국 사회 구조의 문제"라면서 "그렇지만 한 가정이 하기 어려운 일에 다른 부모들과 마을 주민들이 동참해 공동육아를 만들어 간다면 가능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모도 불안하고 교사들도 힘든 지금의 보육현장을 바꿔나가기 위해 지역에 공동육아에 대한 시도와 노력이 생겨나 좋은 보육환경이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미희 기자  mhhan@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