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복서 이은숙(원주여고1)이 주목받고 있다. 복싱같은 격투종목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소녀는 지난 2월 서울 중구 구민회관에서 열린 '제25회 KBL 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 65㎏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복싱에 입문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이룩한 성과다.

상지여중에 재학중이던 지난해 봄 다이어트나 하자며 친구를 따라 무작정 체육관을 찾은 것이 복싱과의 인연이 됐다. 그렇게 시작한 복싱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육상선수로 활약한 은숙이에게도 만만한 운동이 아니었다. "쉽게 생각했는데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할 수 있겠더라구요. 힘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죠."

가족의 반대도 심했다. 학원에 간다고 집에서 나와 체육관을 드나들었다. 엄마가 걱정하면서 만류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녀는 "처음에는 여학생이 무슨 복싱이냐며 반대하던 엄마가 대회에서 우승한 뒤에는 주위에 자랑하기 바쁘고 지금은 가장 응원해주는 팬이 됐다"고 했다.

복싱을 시작한 뒤 가장 기분좋은 변화는 엄마와 이야기가 통하는 것. 사실 은숙이 엄마 히노치카꼬(53) 씨는 일본인이다. 엄마가 일본에서 일을 하는 바람에 은숙이는 어릴적 할머니 손에서 컸다.

함께 살게 된 뒤에도 모녀는 대화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엄마가 한국말에 서툴기도 했지만, 관점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은숙이는 "이젠 엄마와 이야기도 통하고 당당히 인정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면서 "엄마가 한국말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라고 전했다. 은숙이를 보고 최근에는 한 살 터울의 오빠도 복싱을 시작했다.

운동뿐 아니라 인생상담까지 멘토가 되어준 치악복싱체육관 박열 코치를 가장 존경하며 아마츄어 복싱선수로 활약중인 배우 이시영이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밝힌 은숙이는 "이왕 시작한 복싱인 만큼 프로무대에도 진출하고 싶다"고 했다. 꿈 많은 17세 소녀의 복싱입문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