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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됐던 장례식장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변신

문화예술, 새로운 패러다임 공유경제 ⑤프랑스의 도시재생 '프리쉬' 김민호 기자l승인201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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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하지 말고 공유하자.' 함께 쓰는 새로운 소비, '공유경제(sharing ecomony)'가 주목받고 있다. 물건이나 공간, 서비스를 빌리고 나눠쓰는 개념으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일찍부터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 지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나 집, 물건과 같은 유형자산 뿐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지식 등 무형자산을 나누는 범위까지 확장되고 있다.

무엇보다 활용도가 낮은 물건이나 빈방, 자동차, 사무실, 지식과 재능, 경험과 취미를 공유하고 나눌수록 사회적·경제적 가치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무엇을 소비하는냐'에서 '어떻게 소비하느냐'로 무게중심이 변화하고 있는 것도 공동체를 기반으로 '소유'가 아닌 '활용'의 새로운 소비문화의 확산을 기대하게 한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공유경제에 접근하는 시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지역공동체복원에 기여하는 문화예술 교육형 사회적경제조직을 구성해 운영하거나 방치된 공간을 재생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시도도 활발하다.

원주투데이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한 '공동기획취재-공유경제,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바라보다'를 통해 공유경제에 기인해 변화를 시도하는 국내 문화예술 현장과 우리보다 앞서 공유경제 모델을 만들고, 기존 문화재생공간을 일상생활공간으로 확대하고 있는 유럽의 사례들을 찾아봤다. 유형의 자산을 넘어 무형의 자산까지 공유의 범위를 확장해 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 '상카트르 104' 중앙광장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청소년들(왼쪽). 이 지역 주민들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지 않더라도 항상 개방된 중앙 통로를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하고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창출한다(오른쪽). 어린이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해 자녀를 동반한 가족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아래).

유럽은 버려진 공간을 재단장해 아뜰리에나 전시, 공연장 등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활용한 사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공간을 '황무지'라는 의미의 '프리쉬(Friche)'로 통칭하고 정책적으로 프리쉬 사업을 활성화시켜 왔다. 정부 주도 문화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거대 프로젝트는 '도시재생과 사회 통합, 일반인에게는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 확대'라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확산됐다.

파리 북쪽, 19구 생 마르탱 운하 인근에 위치한 '상카트르 104(Le Centquatre)'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꼽히는 곳이다. 3만6천800㎡에 달하는 면적으로 1873년부터 1997년까지는 매년 2만7천대의 영구차가 거쳐갔던 장례식장이었다. 1997년 장례식장이 폐쇄된 이후 방치됐다.

파리 19구는 주민의 60%가 정부로부터 주택보조를 받는 파리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지역 주민 중 1/3이 실업자이고, 청소년 보호시설이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지금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하기 까지는 파리시의 의지와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파리시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 리노베이션 과정을 거쳐 2008년 복합문화공간 '상카트르 104'를 개관했다.

지역주민들과 밀착된 복합문화공간이 낙후된 도심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술적인 부문에만 치중하는 여타 박물관이나 미술관과는 달리 지역민과 함께하는 '사회적 관계'에 주목하면서 공간을 구성한 것도 같은 이유다. 폐쇄됐던 낡은 건물이 이제는 과거 역사에 대한 흔적을 보존하면서 창작과 생산,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영역의 예술공간으로 조성된 것이다.

2008년 개관 당시만 해도 상카트르는 예술의 확산보다는 작품 생산과 공연 등을 위한 창작 공간이 되는 것을 표방했다. 2년 가량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2010년에 조세 마뉴엘 곤살베스(Jose-Manuel Goncalves)로 디렉터가 교체되면서 새로운 운영 방식을 모색했다.

파리 디즈니랜드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고 수명을 다한 초콜릿 제조 공장을 문화센터로 만든 '페름므 뒤 뷔숑(La Ferme du busson)'의 전 책임자이기도 한 그는 부임하면서 '모든 공간을 쉼없이 활용하라'는 모토를 내걸고 상카트르를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변모 시켰다.

창구나 입구를 가로막는 것을 모두 없애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하도록 재정비했다. 주목할 것은 창작의 주체를 대중으로 돌렸다는 점이다. 엘리트 예술인들의 전유물로 자칫 폐쇄적인 창작공간이 될 수 있었던 공간을 시민이 직접 주체가 되는 공간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주민과 예술가가 공간 공유

지역 밀착형 복합 문화시설인 '상카트르 104'는 지역민과 예술가들이 공간을 함께 공유한다. 정문과 후문을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한 중앙 광장은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7시까지 주민들과 학생, 힙합 댄서, 배우, 아티스트들의 연습 공간으로 개방되고 있다.

개관 초기 정원으로 조성했던 곳이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누구나 와서 춤을 추고, 노래하고 다양한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열린 무대로 만들었다. 주민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이 공간을 이용한다. 작품을 훼손하거나 타인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주민들의 자발적 활동에 제한이 없다.

지난 8월 이 곳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도 넓은 광장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청소년들과 광장 이곳 저곳에 놓인 벤치에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주민들의 모습이었다.

과거 마굿간이었던 반지하 공간은 전시실로 변신해 '상카트르 104'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상설전이 열리고 있다. 1층에 위치한 '어린이들의 집(La Maison des petits)' 역시 지역민과 함께하는 곳이다.

2명의 심리학자와 1명의 아티스트가 상주하며 아이들의 예술활동을 돕는다. 예약만 하면 지역주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6세부터 14세까지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아뜰리에 작가와 함께하는 예술교육도 이루어진다.

이 곳 주민들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지 않더라도 항상 개방된 중앙 통로를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하고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창출한다. 예술센터가 전시장이나 공연장, 창작 공간 같은 단순한 기능의 문화시설에 그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

상카트르가 자랑하는 공간 중 하나가 세계 곳곳에서 온 아티스트들이 거주하는 아뜰리에다. 2층에 자리한 19개의 아뜰리에에는 지난해에만 248명의 아티스트가 머물렀다. 디렉터가 선정하는 입주작가는 3개월에서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장·단기 프로젝트 작업과 발표회를 진행한다.

아뜰리에는 2주에 한번씩 시민에게 개방되는데, 작업실 탐방과 설명회는 물론 워크숍, 컨퍼런스, 영화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가와 대중이 만날 기회를 갖는다. 또한 외국작가를 포섭하고 3개월씩 해외 작가들과 작업실을 교환해 사용하는 등 국제 교류 역할도 하고 있다. 한국인 입주작가 권하윤(31) 씨는 "미술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활동하는 곳이라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문화행사는 다양하다. 연극, 춤, 음악, 전시, 마술, 서커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지난해 이 곳에서 열린 행사는 9개 대형 전시회를 비롯해 12회의 대규모 축제, 620회의 무대 공연 등 모두 640여회에 달한다. 최근 3년간 이곳을 다녀간 사람도 150만명에 이른다는 게 이 곳 관계자의 설명이다.

홍보담당 마리 시빌라 리니(Marie Sybille Laine) 씨는 "상카트르는 지역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예술가와 예술가, 예술가와 대중과의 교류가 이 공간에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완벽한 개방이야 말로 상카트르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환영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대중과 소통 자극"
한국인 입주작가 권하윤 씨

19개 아뜰리에를 보유한 '상카트르 104'는 전세계 작가들이 한 번쯤 머물며 작업하기를 희망하는 곳이다. 디렉터가 직접 입주작가를 선정하는데 지난해에만 세계 각국에서 240여명의 작가들이 이 곳에 머물며 다양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그중에는 한국 작가도 있다. 현재 상카트르 104에서 북한을 주제로 관련 창작작업을 하고있는 권하윤(31) 씨도 그중 한 명이다.

1년 6개월째 이 공간에서 작업중이라는 권 씨는 "미술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활동하는 곳이라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문화 취약지구인 19구가 상카트르 덕분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고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소개한 그녀는 "일반 갤러리는 특정인들만 오는 데 이곳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과 교류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이 곳 레지던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주민들에게 작업실을 개방해야 하는 오픈 스튜디오의 의무가 주어진다. 권 씨도 현재 자신의 작업 외에 한 달에 한 번씩은 자신이 직접 구상한 프로그램으로 대중들과 만나고, 인근 학교에서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문화적 취약지역이기에 주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돕는데 주력한다. 자연스럽게 관심있는 활동을 찾아 먼저 연락해오는 학생들도 생겼다.

권 씨는 "오픈 아뜰리에를 통해 일반 시민들은 작가들의 일상생활 공간인 아뜰리에를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고 음악, 춤, 공연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활동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며 "작가 입장에서도 대중과의 소통이 스스로의 작업에 큰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개방하며 가치 키워"
홍보담당 마리 시빌라 리니 씨

"상카트르104'는 지역민과 함께하는 공간입니다. 문화예술공간을 지역민들에게 이렇게 완벽하게 개방하는 경우가 드물어 시민들의 반응이 높아요." '상카트르104' 홍보담당 마리 시빌라 리니(Marie Sybille Laine) 씨는 예술가와 주민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이 지니는 가치를 강조했다.

상카트르 104를 찾는 작가와 일반인들은 수시로 펼쳐지는 다양한 문화적 체험에 노출되면서 새로운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프로나 아마추어 누구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면서 사람이 북적이다보니 복합문화예술공간의 가치가 더욱 커진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마리 씨는 "이곳을 생동감 있고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서커스, 마술, 연극 등을 도입해 모든 공감을 쉼 없이 활용하게 됐다"면서 "다른 미술관과 박물관, 극장에서 열린 공연을 유치해 저렴한 가격으로 지역주민들에게 보여주면서 큰 호응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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