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유투브 인스타그램

"작업과정 공개…자유와 관용·소통의 시발점"

문화예술, 새로운 패러다임 공유경제 ④유쾌한 도발 '점거 아뜰리에' 김민호 기자l승인2013.09.30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소유하지 말고 공유하자.' 함께 쓰는 새로운 소비, '공유경제(sharing ecomony)'가 주목받고 있다. 물건이나 공간, 서비스를 빌리고 나눠쓰는 개념으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일찍부터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 지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나 집, 물건과 같은 유형자산 뿐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지식 등 무형자산을 나누는 범위까지 확장되고 있다.

무엇보다 활용도가 낮은 물건이나 빈방, 자동차, 사무실, 지식과 재능, 경험과 취미를 공유하고 나눌수록 사회적·경제적 가치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무엇을 소비하는냐'에서 '어떻게 소비하느냐'로 무게중심이 변화하고 있는 것도 공동체를 기반으로 '소유'가 아닌 '활용'의 새로운 소비문화의 확산을 기대하게 한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공유경제에 접근하는 시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지역공동체복원에 기여하는 문화예술 교육형 사회적경제조직을 구성해 운영하거나 방치된 공간을 재생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시도도 활발하다.

원주투데이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한 '공동기획취재-공유경제,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바라보다'를 통해 공유경제에 기인해 변화를 시도하는 국내 문화예술 현장과 우리보다 앞서 공유경제 모델을 만들고, 기존 문화재생공간을 일상생활공간으로 확대하고 있는 유럽의 사례들을 찾아봤다.

유형의 자산을 넘어 무형의 자산까지 공유의 범위를 확장해 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 작업실을 개방하고 있는 '로베르네 집(Chez Robert)'은 늘 관람객들로 북적인다(왼쪽). 입주작가들은 돌아가며 매주 1회씩 1층 데스크에서 방문객을 안내한다(오른쪽).

오랜동안 방치된 공간을 점거해 예술가의 작업공간으로 만드는 '스쾃(Squat)'이 유럽에서는 하나의 대안공간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19세기 초 오스트리아 목동들이 자신의 초지가 아닌 곳에 양을 데려가 먹이던 행위에서 유래된 스쾃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공간의 지나친 사유화와 불평등 구조로 촉발된 공간 점거 운동, 빈집 점거 운동 등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사유지나 공유지를 무단 점거하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그러나 프랑스 특유의 똘레랑스는 예술가들의 스쾃을 유쾌한 도발로 간주하며 이미 하나의 장르개념으로 인식되곤 한다. 서로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이면서 독특한 문화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만 20여개의 점거 아뜰리에가 있는 것은 물론, 독일에도 '타셰레스(Tacheles)'라는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공간을 점거한 예술인들이 공간의 소유권을 주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동료 예술가들은 물론, 시민들에게 개방하면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도 무상으로 얻은 것이니 함께 공유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예술가 특유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고집하면서도 소통과 교류엔 마음을 여는 이들의 모습은 예술이 어떻게 현실참여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파리 중심을 점거한 'KGB'

프랑스 파리의 중심 리볼리(Rivoli)가에 위치한 '로베르네 집(Chez Robert)'은 프랑스 '점거아틀리에 운동'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백화점과 쇼핑몰 등 주변에 즐비한 고급스런 건물 이미지와 동떨어진 이곳은 아무도 쓰지 않는 공간을 예술가들이 점거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점거한 공간이라는 상징성보다 개방과 공유, 소통이라는 운영철학이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는 이유가 되고 있다.

로베르네 집의 탄생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에 가깝다. 1999년 11월 1일 밤 3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파리의 중심 리볼리가에 비어있는 건물을 점거하면서 시작된다. 젊은 예술가들의 이름은 칼렉스(Kalex), 가스파르(Gaspard), 브뤼노(Bruno). 이들의 뜻에 동조한 또 다른 예술가들이 그 이튿날부터 발 빠르게 합류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10여명의 예술가들이 모였다. 세상 사람들은 처음 공간을 점거한 세 예술가의 이니셜을 따 이들을 속칭 'KGB'라 불렀다.

당시 이들이 점거한 건물은 프랑스 정부와 모 금융회사의 공동 소유였다가 은행이 파산하면서 정부기관인 부동산회사 CDR로 소유권이 이전된 상태였다. 파리 시내에는 이곳 말고도 방치된 건물이 많았고, 특히 CDR이 관리하는 40여 채 건물 대부분이 십수년째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로베르네 집 역시 14년째 방치된 건물 중 하나였다.

점거당시 이 곳은 말 그대로 폐허나 다름 없었다. 건물 외벽 유리창 대부분은 깨져 있고, 가장 위층에는 비둘기 사체가 널려 있었다고 한다. 예술가들은 쌓여있는 쓰레기를 걷어내고 정리한 뒤 점거 4일째부터 시민들에게 이 공간을 개방했다. 당시 그들이 제시한 점거목적은 '퇴락하는 장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는다', '예술가들이 창조하고, 거주하며 전시할 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정부도 즉각 대처에 나섰다. 퇴거를 요청하는 한편, 고발과 소송을 제기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방치된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하더라도 겨울에는 쫓아낼 수 없다는 프랑스 법 조항이 이들에게 시간을 벌어줬고 여기에 정치인, 언론인, 법률가 등 지지모임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당시 프랑스 언론은 이들의 활동을 '점거(Squat)'와 '예술(Art)'을 합성한 '점거예술(Squart)'이라 규정하고 지지했다. 이 같은 우호적인 보도는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과 정부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됐다. 지루한 법정투쟁 끝에 이들은 6개월의 한시적인 소유권을 인정받게 되고, 이를 발판삼아 창작과 전시, 퍼포먼스 등에 더욱 열을 올렸다.

2002년 프랑스 문화부 조사결과는 로베르네 집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연간 4만명이 이 곳을 방문하는 것으로 조사되면서 퐁피두센터와 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가장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는 대표적인 명소로 확인된 것. 그 해 로베르네 집은 파리시의 동의하에 법인으로 등록됐으며 2007년 정부의 지원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2009년 합법적인 입주 근거가 마련돼 3년 주기로 파리시와 입주기간을 갱신하고 있다.
 
개방과 공유, 그리고 소통

로베르네 집은 현재 나이와 성별은 물론이고 국적도 다양한 30여 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입주작가 중 20명은 고정 멤버이고, 10명은 6개월 단위로 교체되는 초청작가다. 공간이 협소해 평면작업이 주를 이루지만 사진과 조각, 설치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입주해 있다.

7층 건물 내에는 32개의 작업실과 2개의 공동 전시실, 숙소 등이 있다. 면적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각 층마다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7명의 작가들이 공동으로 사용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작업실마다 문이나 칸막이 조차 없다는 점. 예술가와 시민, 관광객 누구나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이들만의 규칙이다.

파리시의 지원을 받아 건물은 무상으로 임대해 사용하지만, 운영비는 자체조달한다. 한해 운영비는 약 6만 유로 정도가 소요되는데, 입주작가들이 매달 130유로를 걷어 5만유로 정도를 모으고 나머지는 여름 한 달간 공간을 임대해 충당한다.

입주 작가들은 매년 여름 독일 쾰른과 스위스 제네바 지역의 갤러리와 연계해 '점거 아틀리에 순회전'을 개최한다. 휴가철인 8월을 제외한 매 주말에는 시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음악콘서트를 연다. 또 1년에 1~2회의 단체전과 개인전 일정을 소화하며, 3~4개월에 한 번씩 건물 전면의 디자인을 변경한다.

새로운 디자인을 공개하는 날은 퍼포먼스도 여는데, 지난 5월에는 건물 각 유리창마다 오케스트라 단원을 배치하고 연주를 선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로베르네 집'의 가장 중요한 운영 원칙은 공간의 개방과 공유다. 끊임없는 창작과 만남, 소통을 통한 과정의 하나로, 소통을 두려워하는 작가라면 이곳에 머무를 자격이 없다는 게 구성원들의 설명이다.

회계담당 파스칼 포카르(Pascal Foucart·52) 씨는 "로베르네 집은 아틀리에가 필요한 작가들이 버려진 공간을 점거한 것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저항이란 단어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며 "또 공간과 작업과정 공개를 통해 작가와 작가, 작가와 대중이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자유와 관용 소통의 시발점이라는 상징성도 있다"고 말했다. 

   
 
"관람객과 소통 가장 큰 매력"
입주작가 세바스티안 로카

로베르네 집에 5년째 상주하고 있는 세바스티안 로카(41·Sebastien Lecca) 씨는 페루에서 출생해 프랑스에서 자란 미술가다. 지난 2009년부터 로베르네 집에서 회화, 설치,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하고 있다. 성(性)과 사랑을 주요 작품 소재로 삼고 있는 그는 최근 에펠탑을 둥근 원형 기둥으로 상징화한 작업을 진행중이다.

처음에는 친구들의 초청으로 한시적으로 머물 계획이었지만 로베르네 집에 매료돼 5년째 거주하고 있는 그는 파리 중심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로베르네 집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이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동료 작가들과 교류와 협업이 이루어지고 무엇보다 늘 지역주민과 소통할 수 있다"고 밝힌 로카 씨는 "매일 작업현장에서 시민들과 만나기 때문에 관람객과의 소통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로베르네 집 입주조건은?

자신의 작업실을 시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방문객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단체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한 달에 130유로를 내고 있지만 각 작가들이 돌아가며 1주일에 1회는 1층 안내데스크에서 방문객을 안내한다.

매일 작업현장에서 시민들과 만나기 때문에 관람객과의 소통이 자연스럽다(일상이다). 관람객들은 작가의 작업(과정)을 잘 모르지만, 작가들도 관람객이 내 작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이 곳에서의 소통은 소중하다. 소통을 통해 시민들과의 만남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로베르네 집의 장소 철학이다.
 
작업 중 시민들이 찾아오면 집중에 어려움은 없나?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사람들이 늘 지나다녀 이제는 익숙하다. 지금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얼마든지 작업이 가능하다.
 
작품판매도 이뤄지나?

물론이다. 작가와 관람객의 소통에 달려있다. 관람객들의 질문 중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작품 가격이다. 관람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 작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민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강원도 원주시 서원대로 158 5층(단계동)  |   등록연월일 : 2012년 04월 09일  |  등록번호: 강원 아 00125  |  사업자등록번호: 224-81-11892
발행인 : 심형규  |  편집인 : 오원집  |  대표전화 : 033)744-7114  |  팩스 : 033)747-99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원민
Copyright © 2020 원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