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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은 맥주공장 '문화양조장'으로… 화려한 부활

문화예술, 새로운 패러다임 공유경제-③지역에 활력 불어넣는 재생 공간 김민호 기자l승인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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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최대 맥주회사 슐트하이스(Schultheiss)가 양조장으로 사용한 쿨투어 브라우어라이의 옛 모습(왼쪽). 연간 2천여회의 문화행사가 열리는 현재 전경.

'소유하지 말고 공유하자.' 함께 쓰는 새로운 소비, '공유경제(sharing ecomony)'가 주목받고 있다. 물건이나 공간, 서비스를 빌리고 나눠쓰는 개념으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일찍부터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 지고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나 집, 물건과 같은 유형자산 뿐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지식 등 무형자산을 나누는 범위까지 확장되고 있다.

무엇보다 활용도가 낮은 물건이나 빈방, 자동차, 사무실, 지식과 재능, 경험과 취미를 공유하고 나눌수록 사회적·경제적 가치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무엇을 소비하는냐'에서 '어떻게 소비하느냐'로 무게중심이 변화하고 있는 것도 공동체를 기반으로 '소유'가 아닌 '활용'의 새로운 소비문화의 확산을 기대하게 한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공유경제에 접근하는 시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지역공동체복원에 기여하는 문화예술 교육형 사회적경제조직을 구성해 운영하거나 방치된 공간을 재생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시도도 활발하다.

원주투데이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한 '공동기획취재-공유경제,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바라보다'를 통해 공유경제에 기인해 변화를 시도하는 국내 문화예술 현장과 우리보다 앞서 공유경제 모델을 만들고, 기존 문화재생공간을 일상생활공간으로 확대하고 있는 유럽의 사례들을 찾아봤다.

유형의 자산을 넘어 무형의 자산까지 공유의 범위를 확장해 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 쿨투어 브라우어라이 광장 중앙에 설치된 '사랑(LIEBE)' 조형물. 사랑이 그렇듯, 문화도 이들의 일상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옛 건물을 철거하고 그 위에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 옛 건물이 지니고 있는 역사성과 문화까지 한꺼번에 날아가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시대에 맡게 재해석하면 새로 짓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는 건물로 재탄생할 수 있다."

프랑스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파리 오르세미술관, 연간 400만명이 찾는다는 영국 템즈 강변의 테이트모던미술관, 24시간 운영되는 일본 가나자와의 시민예술촌 등은 방치된 기차역과 화력발전소, 방직공장 등 폐허가 된 옛 건물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생동감이 넘치는 지역으로 변모시킨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베를린에는 이 처럼 낡은 건물에 새옷을 입힌 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방치된 맥주공장을 생활문화시설로 탈바꿈해 생동감이 넘치는 지역으로 변모시킨 쿨투어 브라우어라이와 페퍼베르크 등이 그 것이다. 20년간 '문화양조장'으로서 자리매김해 오면서 문화공간이 지역을 재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문화와 일상이 공존 쿨투어 브라우어라이

베를린 도심 프렌츠라우어베르크(PrenzlauerBerg)에 위치한 '쿨투어 브라우어라이(KulturBrauerei)'는 꿈을 만들어내는 '도시 속의 도시' 같은 복합문화공간이다. 현재 이곳은 문화시설과 상업시설이 공존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단체들이 입주해 있고, 공연장, 갤러리, 영화관, 대형 슈퍼마켓, 여행사, 레스토랑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영화, 연극, 전시 같은 문화행사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뿐 아니라 식료품이나 악기를 사기 위해, 또 여행사를 찾아서 오는 사람들도 많다. 문화 시설만 덩그러니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라 문화 향유와 일상 생활이 어우러진 공간인 셈이다.

'쿨투어 브라우어라이'를 직역하면 '문화양조장'이다. 이 곳은 과거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제조사 슐트하이스(Schultheiss)의 양조장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소련군정이 소유권을 압수했고, 1967년 공장은 완전히 문을 닫았다.

베를린 정부에서는 황폐하게 방치된 이 곳을 헐어버리고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젊은 예술가 집단들이 철거 소식을 듣고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젊은 예술가들은 건물을 점거하고, 다양한 예술활동을 펼쳤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뒤 20년 넘게 방치됐던 건물은 1998년 리모델링과 함께 2001년 초 문화양조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맥주를 생산하던 양조장이 예술이 빚어지고 꿈이 발효되는 문화양조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맥주에서 예술로 생산 품목은 바뀌었지만, 쿨투어 브라우어라이는 과거를 잊지 않았다. 적벽돌과 황벽돌로 외벽을 쌓아올린 20여 동의 건물은 맥주양조장 시절의 외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극장 이름은 보일러실이란 의미의 '케셀하우스(Kesselhaus)'이다.

케셀하우스 내부 벽면은 시커멓게 타거나 검은 얼룩이 그대로 남아 있다. 케셀하우스 외에도 각 건물 정면 지붕 밑에는 맥주양조장 당시의 이름이 그대로 붙어 있다. 연극 공연 등을 진행하는 200명 규모의 소극장은 기계실(MaschineHaus), 악기판매점은 마굿간(Futterboden)이란 이름을 달고 있다.

8개의 스크린이 있는 극장과 음악 연극 퍼포먼스가 열리는 다목적 공연장, 천장 높이만 6m로 공간적 제약없이 전시가 가능한 갤러리 키노, 장애인 전용극장 람바 잠바 등이 대표적인 문화공간들이다. 매년 이곳에서 열리는 문화 행사는 2천여건에 달한다. 대부분 자체 기획 보다는 외부 단체에 대여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새해와 부활절 등 1년에 3차례는 입주업체 전체가 참여하는 대규모 축제를 기획한다.

쿨투어 브라우어라이의 존재는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1980년대까지는 노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또 인근에 작은 공연장이 많이 생기면서 공연장과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문화 네트워크 역할도 하고 있다.

총괄 매니저 스테파니 그로나우(Stefanie Gronau) 씨는 "문화예술공간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1998년 리모델링 당시에는 총 면적 2만5천㎡ 중 1만9천㎡를 문화 관련 시설로 채워야한다는 규정을 세우고 문화예술 관련 단체에게는 ㎡당 3유로, 상업공간은 ㎡당 25유로의 차등되는 임대료를 받고 있지만 현실적인 재정난은 점차 상업적인 영역의 확대를 가져왔다.

스테파니 그로나우 총괄 매니저는 "지금까지는 문화 시설과 상업 시설 등이 잘 공존해왔고, 상업시설 들이 재정적으로 기여를 하고 관광객도 늘면서 시너지 효과도 있다"며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문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문화적 활동 역시 위축되는 게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지역사회 환원 '페퍼베르크'

쿨투어 브라우어라이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페퍼베르크(Pfeffeberg) 역시 맥주공장과 초콜릿 공장 등이 있던 곳이다. 1991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아뜰리에, 연극 공연장, 갤러리, 교육 공간, 유스호스텔, 레스토랑 등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예술가의 집'이라 불리는 공간은 화가들이 거주하며 작업하는 아뜰리에로 모두 14개가 갖춰져 있다. 또 건축 전문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으며 사설 갤러리 마인 블라우 갤러리는 1년에 10∼15차례 저렴한 대관료(1주일에 350유로)로 전시회를 개최한다. 입구에는 250석 규모의 실내 공연장과 150석 규모의 야외 공연장도 갖추고 있다.

1만3천여㎡ 달하는 공간의 운영 주체는 (재)페퍼베르크다. 2001년 베를린시가 소유한 공간을 위탁받은 재단은 2089년까지 100년간 운영권을 확보했다. (재)페퍼베르크가 재단을 포함, 문화행사 컨설턴트, 일자리 창출, 사회적 교육 관련 등 5개 단체(업체)와 함께 모든 사업을 고민하며 진행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100년간 공간에 대한 운영권을 받은 대신 지원금은 일체 받지 않는다. 임대료와 대관료, 기부금이 주수입원으로 흑자를 내고 있다. 타 지역의 재생공간들과 차별화 되는 지점이다.

페퍼베르크의 가장 큰 특징은 적극적인 지역사회 환원이다. 자연보호, 문화재, 문화 활동 지원, 노인·어린이 복지, 국민교육 등 6개 분야 교육프로그램으로 프로그램당 최대 6천유로까지 지원해주고 있다. 올해 지원액 규모는 19만유로에 달한다. 또 일선 학교와 연계해 현장에서 실습하고 체험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총괄 매니저 울리케 페이(Ulike Fey) 씨는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재정 확보를 위해 상업적인 공간으로도 임대해 주고 있다"고 밝히고 "문화, 언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사회에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람바 잠바' 총괄팀장 타티아나 티츠(오른쪽) 씨와 시설담당 토마스 브렘 씨.
"장애인은 치료대상 아닌 공동체 일원"
타티아나 티츠 총괄팀장

쿨투어 브라우어라이(KulturBrauerie)에는 현재 42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이 중 문화예술 관련단체는 12개. 그 중에서도 주목받는 예술단체인 람바잠바(Ramba Zamba)는 15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람바잠바는 연극극장을 운영하면서 지역주민과 지체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미술,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적기업이다.

1970년대 이후 장애인 예술활동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던 시점에서 때마침 연극과 공연기획을 맡은 담당자가 모두 장애아를 둔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극단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베를린 정부에서도 이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연간 예산의 70%를 지원한다. 나머지 30%는 각종 후원금이나 수익금으로 충당한다.

람바잠바 총괄팀장 타티아나 티츠(Tatiana Tietz) 씨는 "지체장애인은 치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같이 어울려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말한다. 장애인이지만 프로극단으로 유럽내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이 그룹은 고전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하지만 작품을 자체 제작하기도 한다.

타티아나 티츠 씨는 "말이 어눌해 대사대신 동작이 많다는 점이 다른 공연과 다를 뿐"이라며 "우리는 장애, 비장애 구분을 두지 않고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장애인들의 참여도가 높아지면서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연극과 각종 공연으로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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