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행과 관광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주5일제 근무와 학교 수업이 정착됨에 따라 가족중심, 체험중심으로 이동하면서 도시민의 농촌체험관광이 테마로 부상하고 있다.

농촌은 위기라고 하지만 어쩌면 또 새로운 기회의 땅일 것이다. 이에 국내에서는 농촌관광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개발하고 있는 농촌체험마을을 방문해 어떤 정책과 투자로 이끌어 가는지를 살펴보고, 국외에서는 농촌관광에 일찍 눈을 뜬 유럽을 방문해 도시와 농촌 간의 네트워크 구성과 도시민에 대한 농업교육, 도시민 관광객 유치를 위한 농촌관광개발 사례 등을 취재해 우리 지역 실정에 접목해 보도하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 전통문화·농촌체험으로 도시민 유치…부여 기와마을
2. 소셜커머스로 체험객 유치…논산 포전마을
3. 자연과 호흡하는 농장체험…독일 라우터바흐 마을
4. 독일 굿아흐, 농촌관광 전략 '츠바이퇼러란트'
5. 지속가능한 프로젝트… 벨기에 웨피옹 마을
6. 프랑스 '비앙브뉘 알라페름므' 협회 그린투어리즘
7. 에필로그… 도·농 교류, 새로운 농촌관광전략 절실

▲ 웨피옹 딸기의 현재와 과거를 들여다보고, 체험할 수 있는 딸기박물관.

인구 7천 농촌마을 벨기에 웨피옹… 고품질 딸기로 유럽 사로잡아

앞서 두 차례 소개한 독일 흑림지대(라우터바흐, 츠바이퇼러란트) 농·산촌이 빼어난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농촌체험과 휴양을 결합한 민박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면 딸기로 유명한 벨기에 웨피옹(Wepion) 마을은 1차 농산물과 2차 유통과 가공식품, 3차 교육문화서비스의 복합산업화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한 사례다.

웨피옹은 벨기에 남부 나무르(Namur)주의 25개 마을 가운데 하나로 인구 7천명의 작은 마을이다. 그런 가운데 웨피옹 딸기는 웨피옹 유럽 최고의 브랜드로 손꼽히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벨기에를 비롯해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에 까지 소문이 퍼져 고품질 브랜드로서 입지를 탄탄히 굳혔다.

딸기와 역사를 함께해온 웨피옹 마을

웨피옹 딸기는 130년 역사를 갖고 있다. 웨피옹의 역사를 한마디로 집약한다면 '딸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차 산업인 딸기생산, 2차 산업인 경매장을 통한 딸기의 유통, 3차 산업인 딸기박물관을 통한 교육·문화 서비스 삼박자를 갖추며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 딸기의 고장 웨피옹.

그러나 딸기 재배가 처음 시작된 곳은 웨피옹 마을이 아니었다. 벨기에 딸기는 독립국가 벨기에 탄생과 비슷한 1830년대 웨피옹 인근 북쪽지역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웨피옹에서 딸기가 본격적으로 재배된 것은 130년 전인 1880년대다.

딸기 재배 초기에는 개인 농가가 부수입 개념으로 재배했기 때문에 소규모 농지가 주를 이뤘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가족 단위 개별 농가가 담당했기 때문에 장이 설 때마다 먼 거리를 이동해 판매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간 유통을 담당하는 중간 상인이 생겨났고, 이들이 농가를 방문해 딸기를 사들여 되파는 과정을 통해 유통되기 시작했다. 중간상인의 출현으로 인한 마케팅의 변화는 최적의 토양과 지형, 일조량 등 최적의 재배환경을 지닌 웨피옹 딸기를 벨기에 최고의 딸기 브랜드로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헐값 매입 등 횡포로 농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 같은 횡포에 맞서 웨피옹의 딸기 농가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직접 유통하게 됐는데 중간상인들이 조합을 통해 딸기를 구매하게 되면서 판도가 많이 바뀌었다. 1930년대 500㏊에 달하던 벨기에 딸기 재배지 가운데 300㏊가 웨피옹 지역에 있었다. 당시 벨기에 전체 딸기 생산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 1950년대까지 웨피옹은 딸기로 황금기를 이뤘다.

▲ 웨피옹 마을을 끼고 흐르는 뫼즈 강. 수려한 경관을 갖춰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예상치 못했던 침체기

1960년대 이후 딸기 재배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연작으로 인한 지력 약화에 따른 병해충, 인건비 상승과 세금 부과, 부동산 가격의 폭등 때문이었다. 재배 면적당 세금 부과는 소규모 재배 농가들의 딸기 재배 포기와 모든 거래를 경매장을 통해 이뤄지게 한 경매시스템 도입의 계기가 됐다.

또 웨피옹의 뫼즈 강을 끼고 펼쳐진 빼어난 자연경관 때문에 전원주택 건축이 증가하며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는데 경작지에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딸기 재배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1970년대 말경 벨기에 전체 딸기 재배면적은 200㏊밖에 남지 않았는데 재배지에 주택이 들어서면서 당시 웨피옹은 이제 딸기 재배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어요. 소규모 농가가 경작을 포기하면서 숫자는 줄었지만 농가당 재배면적이 증가해 전업농가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됐지요.

기업형 농가가 생기면서 딸기 재배가 다시 활성화됐는데 딸기 재배기술의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됐어요." 딸기박물관 회계담당 가이 라쿠아 씨의 설명이다.

지금은 생산량이 과거보다 크게 줄어 웨피옹의 딸기 생산량은 벨기에 전체 생산량의 3% 수준인 1천~1천500톤 수준이다.

▲ 달콤한 맛이 일품인 딸기와인.

위기를 넘어 유럽 최고 브랜드로 가치 상승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웨피옹 딸기는 여전히 벨기에 최고의 딸기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다. 최적의 딸기 재배조건과 잘 관리된 품질, 경매장을 통한 유통시스템, 그리고 130년 최고급 딸기 생산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기업형 농가가 생기면서 생산부터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연구를 하는 전문가와 연계해 현대적 개념의 영업과 홍보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기업형 농가로 바뀌면서 경쟁력이 크게 상승됐다. 다른 지역 생산자들도 '웨피옹 딸기'라는 브랜드를 갖고 싶어 할 정도라고. 벨기에 내에서 웨피옹 포장재 및 상표를 교묘하게 모방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생산된 딸기는 '웨피옹 경매장(La Criee de Wepion)'을 통해 유통하는데 오로지 딸기만 취급한다. 이 경매장은 딸기 유통을 통해 지역 전체 딸기 생산자의 네트워크뿐 아니라 벨기에를 넘어 유럽 딸기 재배자들과 관계를 맺게 됐다.

제철 딸기는 딸기잼, 딸기주스, 딸기와인, 딸기시럽 등 가공으로 이어져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웨피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딸기박물관을 통한 교육·문화서비스라는 3차 관광산업으로 복합산업화로 발전시키며 마을의 발전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 다양한 딸기 가공식품.

웨피옹 마을의 '허브' 역할을 하는 딸기박물관

1970년 건립된 딸기박물관은 웨피옹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기억의 장소'이자, 현재 지역 주민들의 삶을 반영해주는 '삶의 장소(어메니티 공간)'이면서 마을의 작은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시각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규모지만 주민들로 이뤄진 자원봉사자들은 교육과 문화 프로그램을 도맡아 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웨피옹의 역사가 왜 '딸기'로 집약되는 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림, 만화,지도, 사진 등 여러 시대에 걸쳐 변모해온 웨피옹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옆에는 재배 과정, 필요한 기구는 무엇인지 등을 보여주는 코너가 있고, 딸기에 대한 관련 서적이 보관돼 있는 2층 도서관, 딸기 가공식품 및 기념품 등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전시실은 해마다 주제를 바꿔 특별전시를 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는데, 2010년에는 브뤼셀과 왈로니 지방의 관광진흥사무소가 조직한 '2010 왈로니 만화제' 차원에서 '만화와 우표속의 딸기와 여우'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 웨피옹 마을주민들은 태극기를 걸어 공동기획취재단을 반겨줬다.

자부심 가득한 딸기…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간다

박물관은 나무르시 소유이다. 하지만 유급직 직원 1명에 대한 인건비와 유지관리비는 1~3유로의 입장료와 박물관 내 딸기 가공식품 판매 등의 수입으로 마련하고 있을 정도로 웨피옹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관리·운영하고 있다.

웨피옹 마을의 작은 박물관은 관광산업화를 꾀한 130년 역사 웨피옹 딸기의 힘과 브랜드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딸기 박물관은 전시·판매뿐 아니라 어린이를 대상으로 교육(애니메이션)과 퍼즐 등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 딸기 재배과정을 보거나 직접 체험하고자 하는 가족이나 어린이 등을 위해 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 '쁘띠 프루트(작은 과일)' 정원과 연계한 투어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딸기정원 컨셉을 담당했던 마티 캐서린 부시장은 "학교나 단체 등 에서 꾸준히 문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연간 3천여명이 박물관을 방문해 관람하거나 정원과 연계한 체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동식 기자  dspark@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