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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작성된 원주 통계연보 발견

100년 전에도 복숭아·배 재배 이상용 기자l승인201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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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온난화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제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원주시가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중 1915년 작성된 원주 기후자료를 발견한 것. 원주 기후와 관련된 자료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원주시는 밝혔다.

1915년 1월부터 12월까지(11월 제외) 월별 최고·최저·평균 기온이 기록돼 있다. 95년 후인 2010년 월별 기온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기온이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5월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간 격차가 95년 후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나 온난화의 일반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 자료는 원주시가 최근 발간한 '원주사료총서 제9권 일제강점기 원주통계사료집(상)'에 실려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원주 통계자료를 주제별·연도별로 정리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효과적인 식민지 경영을 위해 식민지배지에 대한 조사를 필수사업으로 여겼고,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전개했다. 속국으로 삼기 위해서는 지배 대상의 역사뿐만 아니라 제반 사항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정세 파악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원주시는 일제강점기 작성된 통감부 통계연보,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서 원주와 관련된 사료만을 발굴했다. 원주시 김성찬 향토문화담당은 "지역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의미있는 작업이었다"며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서울통계자료집 외에 자치단체에서 일제강점기 통계자료를 책으로 정리한 곳은 원주시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1910년 원주 인구는 남자 2만4천여명, 여자 2만1천여명 등 4만5천600여명이었다. 세대는 9천900여호로, 세대별 평균 가구원은 4.6명이었다. 현재 세대별 가구원 수(2.4명)의 2배 수준이다. 1911년 출생자는 479명, 사망자는 722명이며 결혼 352쌍, 이혼 18쌍이었다. 직업은 농업 9천73명, 상업 541명, 양반 292명, 유생 219명, 공업 73명이었다.

과일나무 갯수는 밤나무가 1만1천500여본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배나무 3천600여본, 복숭아나무 3천400여본, 사과나무 2천100여본 순이었다. 원주에서 밤나무는 거의 사라졌지만 배와 복숭아는 당시에도 활발하게 생산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치악산배, 치악산복숭아 명성이 하루아침에 쌓인 것은 아닌 셈이다. 또한 당시 양잠 가구수는 1천300여호로, 당시 원주에서 양잠산업이 발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엮은 원주시 문화예술과 김주희 씨는 "전국적 규모이거나 수도, 거점도시가 아닌 경우 사료 역할을 할 수 있는 통계자료가 많지 않은데, 관 주도로 시행된 통계조사와 연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와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원주시는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1926년도부터 1942년도까지와 조선국세조사보고에 기록된 원주 관련 자료로 모아 '일제강점기 원주통계사료집(하)'편을 출간할 계획이다. 


이상용 기자  sylee@wonju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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