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 우희태 대성고 교사

1876년 개항은 조선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처음 보는 근대문물이 쏟아져 들어와 조선인들 깜짝 놀라게 하였다. 항구에서의 외국인 모습은 이젠 낯선 풍경이 아니었으며, 기차와 전차가 다니고, 길거리에는 양복을 빼입은 모던 보이들이 지나게 되었다.

경성에는 조선 총독부를 비롯하여 수많은 근대 건축물이 들어섰으며, 전국의 주요 도시에도 근대 건축물들이 하나 둘씩 세워졌다.

식민지의 착취구조 속에서 대부분의 조선인들에게 근대 문물은 오히려 그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분명 조선은 변하고 있었다.

'토지’속의 인물들을 통해 조선 사회의 근대 문물 수용과 이에 따른 변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서희와 평사리 사람들 간도로 떠나다. - 개항장 및 교통의 변화

떠나기로 작정한 상현은 길상과 상의하여 부산에 나가보기로 하였다. 간도까지 육로로 가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일단 부산까지 가서 선편을 알아보는 한편 일행의 인원이 적지않아서 두패, 혹은 세패로 나뉘어져 갈 경우 합류할 수 있는 장소나 객줏집을 물색도 해놔야겠기 때문이다. ......오월 십육일 일행은 하동을 떠나서 부산에 닿았다.

(토지 제1부 4권 제5편 18장 <고국산천을 버리는 사람들> 389쪽, 401쪽)

 그러니까 1908년 칠월 초순, 일행이 회령가도를 지나 용정촌에 도착했는데,.........용정촌은 간도에 있어서 회령을 경유한 청진무역의 중심지라 할 수 있고 회령가도를 통해 대부분 일본 조선과의 간도무역은 이루어지는데.....

(토지 제2부 1권 제1편 5장 <권세 뒤에 웅크린 고독>, 79~80쪽)

경상남도 하동 평사리의 서희는 조준구의 핍박을 피해 평사리 사람들과 간도로 떠난다. 하동에서 간도는 당시의 교통 상황으로 볼 때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소설 ‘토지’속의 내용으로 볼 때 서희 일행은 하동(일부는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동하여, 선박을 이용하여 청진으로 이동, 회령을 통해 간도 용정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추후 독립운동 자금을 운반하는 한복이의 경우도 위의 경로를 이용하였을 것이다. 서희 일행의 이동 경로를 추정하는 즐거운 역사적 상상을 통해 당시 변화된 사회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이사벨라의 비숍의 길을 따라.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 ~ 1904)은 영국의 여성 지리학자이다. 개항기 격동의 순간이었던 1894년부터 1897년까지 4차례에 걸쳐 한국을 답사하면서 한국 실정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유럽에 알렸다. 다소 서구적인 입장에서 서술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여행 과정의 내용을 세세하게 기록하여 당시의 시대상을 살펴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서희 일행이 간도로 떠나던 해가 1908년 이므로 이사벨라는 10년 정도 앞선 시기에 한국을 여행하였다. 다소의 시간차는 있지만 이사벨라의 여행기를 통해 서희 일행의 발자취를 엿 볼 수 있다.

* 1894년 이사벨라 비숍의 여행 기록

2월23일 부산에 도착 체류
2월27일 부산을 출발 3일 항해, 제물포 도착
3월 1일 서울 도착해 50일간 체류
4월14일 한강을 거슬러 나룻배 여행 시작
5월21일 나룻배에서 내려 육로로 금강산 향해 떠남
6월14일 금강산을 떠나 육로로 북상해 원산 도착
6월19일 원산을 떠나 증기선으로 부산 도착
6월21일 부산을 떠나 증기선으로 제물포 도착

당시의 기록을 보면 부산, 제물포(인천), 원산에 증기선이 운항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이후 부산, 인천, 원산 의 3개 항이 개항되었다. 이후 목포, 군산, 청진, 진남포, 신의주 , 마산, 용암포 등의 항구가 개항되었다. 이중 청진항은 1908년 1월 개항하였으므로 서희 일행이 이동한 5월에서 7월 경에는 역시 증기선이 운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희 일행은 청진항에서 내려 회령을 통해 용정으로 들어가는 길을 채택하였을 것이다.

2) 당시 개항한 항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876년 가장 먼저 개항한 부산은 현해탄(대한해협)을 두고 일본과 마주보는 항구로 당시 일본 세력 진출의 중요 통로였다. 불과 수천에 불과하였던 포구가 개항 이후 평양을 누르고 인구 30만(일본인 6만)의 제 2의 도시로 떠오른 것은 부산이 일본의 조선 진출의 교두보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는 관부연락선의 항구이며, 경부선의 종착역으로서의 부산의 위상은 일본의 진출 강도와 더불어 갈수록 높아졌다. 부산의 본래 중심지는 동래였으나 개항이후 몰려든 일본인들은 오늘날 부산의 중심지인 남포동, 광복동, 대포등 등을 일본식 시가지로 조성하였다.

1883년 개항한 인천은 제물포라는 작은 포구였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서울 진출의 교두보로만 쓰이던 인천은 이후 서울과 가깝다는 이점을 살려 수도권과 황해도의 곡물 유통통로, 대중국 무역의 거점으로 급속히 팽창하게 된다.

1906년 통감부에 의해 단행된 행정구역 개편의 결과 경기도내의 주요 도시인 개성, 수원, 강화 등이 군이나 면으로 격하(특히 개성은 면으로 격하되었다)되는 속에서 인천은 1910년 강제병합 당시 경기도 유일의 부(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일본은 민족 자본의 중심지였던 기존 도시들을 쇠퇴시키고 일본 상인 중심의 새로운 상권을 이루어내려 하였던 것이다.

원산은 산업자원ㆍ군사적 목적으로, 목포ㆍ군산 등은 호남지방의 미곡을 실어내기 위해 개항되고 확장되었다. 당시의 개항장들은 일본의 대륙정책 수행과 쌀과 자원의 반출을 위한 항만 건설 등 우리의 산업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이 입지가 결정되고 건설이 이루어졌다.비교적 한적하였던 항구들을 개항시킨 일본인들은 항구에서 가장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항구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영사관이 자리를 잡고 그 주위로 일본인 마을이 형성되었다.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거주하던 거류지 가로는 질서정연하게 조성되었고, 각종 위생시설이 갖추어 졌다. 개항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조성되자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다. 그러나 조선사람들이 거주할 만한 공간은 적었다. 어쩔 수없이 항구와 가까운 산 기슭이나 평지에 무질서하게 집을 세워 나갔다. 길은 미로였으며, 위생 상태는 불량이었다. 비가 오거나 조수 간만의 차가 크면 물에 잠기기 일쑤인 지역에 조선인들은 모여 살았다.

3) 서희 일행은 철도를 이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동에서 간도로 가는 또 하나의 방법은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1908년 당시에는 경인선(1899년), 경부선(1905년), 마산선(1905년), 경의선(1906년) 만이 개통되어 있었다. 만일 서희 일행이 철도를 이용하였다면 진주에서 마산으로 가 마산선, 경부선을 통해 서울에 도착하여 육로를 통해 원산, 청진을 거쳐 이동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닷길에 비해 위험도 많고 힘든 여정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서희 일행은 부산에서 증기선을 이용하여 간도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간도에서 돌아올 때는 육로를 이용해 올수도 있었다. 경원선이 1911년 개통되고 함경선이 1915년 개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 속의 한복이가 간도를 왕래 할 때에 여전히 부산을 통한 바닷길을 이용하고 있다. 아마도 갈아타는 번거로움 또는 오랜 여행 시간 등이 이유였을 것이다.

선로명	구간	개통일
경인선	인천 - 영등포	1899년 9월
경부선	서울 - 부산	1905년 1월
마산선	마산포 - 삼랑진	1905년 5월
경의선	용산 - 신의주	1906년 4월
평남선	평양 - 진남포	1910년 10월
호남선	대전 - 목포	1911년 7월
경원선	용산 - 원산	1911년 10월
군산선	이리 - 군산	1912년 3월
함경선	원산 - 회령	1915년 8월

철도는 근대화의 상징물이었다. 1899년 9월 인천 제물포와 서울 노량진 간 33km의 철도가 개통되었다. 당시 노량진과 인천, 그리고 철로변에는 ‘검은 쇠용이 긴 몸뚱이를 비틀어대며 연기를 뿜으면서 번개같이 달리는 기괴한 광경’을 보기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철도는 지역 간 교류를 발달시키고 물자 수송 및 정보 전달에 큰 역할을 하였다. 계몽기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철도를 예찬하는 글을 짓기도 하였다.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 소리에 / 남대문을 등지고 떠나 나가서
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 같으니 /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
늙은이와 젊은이 섞어 앉았고 / 우리네와 외국인 같이 탔으나
내외 친소 다같이 익히 지내니 / 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뤘네

<경부철도가 -최남선>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 중 철도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인도이다. 거대한 인도를 지배하기 위해 영국이 인도 곳곳에 철도망을 그물처럼 엮어 놓았기 때문이다. 1853년 최초의 철도가 운행한 이래 63,000km의 철도망이 건설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철도도 일본의 침략정책과 관련되어 있었다. 우리의 실정에 관계없이 노선이 결정되었고 의도적으로 조선인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려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위 표에서도 보다시피 철도는 일본이 침략적으로 개항시킨 항구를 연결시키는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철도를 값싸고 신속하게 부설하기 위해 한국인의 토지와 노동력을 무상 또는 헐값으로 수탈했다. 철도 선로와 정차장 등의 건설에는 방대한 토지가 필요했는데, 국유지는 무상으로, 민유지는 헐값으로 수용했다. 또 철도와 관련 시설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은 부역이나 징발 등으로 동원했다.

한국인들은 일제의 침략적 철도 부설에 저항하였다. 일부 관료와 지주들이 스스로 철도를 만들려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으며, 철도 주변의 주민들은 토지와 노동력 수탈에 맞서 정차장을 습격하거나 철로를 파괴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 이후 의병들의 주요 투쟁도 철도 파괴였다. 일본은 이러한 한국인의 움직임을 철저히 탄압하였다. 철도는 군사시설로 취급받았으며 철도를 파괴한 한국인 40여명이 사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철도 역사를 건설하는데 있어서도 일본인의 이해가 충분히 반영되었다. 기존 조선의 전통 도시 중 일본인의 필요성이 없던 도시들은 철저히 철도 교통망에서 배제되었다. 기존 조선인 상권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기 위해 기존 도시를 통과하더라도 외곽에 철도역에 배치하여 일본인 상권이 좀 더 쉽게 자리 잡을 수 있게 하였다. 신의주가 의주를 대체하였으며, 철도 교통망에서 배제된 경남의 진주는 도청소재지를 부산에 내 주었다.

1931년 1월13일 저녁 충청도 신흥도시 대전은 경성으로부터 날아온 `급보'에 온 시가가 축제분위기로 달아올랐다. 이날 오후 고다마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은 긴급회견을 열어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옮긴다고 전격 발표했다. “경부·호남 양 간선철도의 분기점으로 장래 경제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전결정의 변이었다.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환호하던 그 시각 당시 도청이 있던 전통도시 공주는 거꾸로 분노와 비탄에 휩싸였다. 공직자들은 동맹사직서를 냈고, 주민들은 횃불시위 등으로 경찰과 정면충돌했다.

최근 과학 벨트 후보지로 선정된 대전은 근대 도시 발달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갈대 무성한 들녘이던 큰밭(대전)은 중부권 중추도시로 떠올랐고, 조선시대 4대 도시 공주는 1930년대부터 인구가 줄면서 퇴락하게 된 것이다. 충청도의 근대화 방향을 가늠지운 도청파동의 배후에는 철도가 있었다. 경부선 통과로 형성된 한밭은 1913년 개통된 호남선 시발점으로 지정되는 행운이 겹치면서 대도시로 성장한다. 일본인들은 용산과 함께 대전을 일본적 특징이 가장 뚜렷한 계획시가지로 키웠다. 지방의 배타적 양반세력이 강한 지역특색을 의식한 일제는 공주 대신에 대전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2. 경성(京城)의 변화

1) 경성 사람들의 발이 되어준 전차

종로 거리를 허둥지둥 걷고 있던 억쇠는 점포마다 문이 닫혀 있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전차가 땡땡 종을 울리며 지나간다. 지난 삼월에는 경전(京電) 조업원이 파업을 하여 전차는 운행이 중지되었고, 그 무렵 서울의 상가는 한 달 넘게 동맹철시를 했었다. (토지 제3부 1권 제1편 1장 <개화지식인의 고독> 11쪽)

'토지’속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인물들(이상현, 임명희, 선혜 등)의 발이 되어준 것은 전차였다. 전차는 대한제국 말기부터 1960년대 까지 경성(서울)을 운행하였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일정한 시간에 맞추어 운행하는 전차는 일상을 세분화하여 살아가는 도시민들의 생활 양식을 가르쳐 주었다. 전차는 기차와 함께 ‘점심 먹고 오후에 만나자’라는 느슨한 시간 관념을 깨고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사는 모습을 점차 사회에 확산시켰다. 또한 남녀 구분 없이 좁은 공간에 뒤섞여 앉는 전차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 규율을 단번에 깨는 역할도 하였다.

전차는 대한제국 황실이 자본을 대고 미국의 기술을 제공하여 만들어 졌다. 그래서 당시 전차 개통식 사진을 보면 성조기와 태극기가 같이 걸려 있다. 전차는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구간에 처음 개설되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노선이 증가하였다. 1909년에는 하루 이용객이 7,000 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차는 경성에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교통사고의 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당시 처음 운행하였던 전차는 개통 1주일 만에 어린아이를 치어 죽이는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비운을 맞았다. 어린아이의 죽음에 성난 군중들이 전차를 쫒아가 불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1929년 4월 소풍을 가던 진명여고보 학생을 태운 전차가 커브를 돌던 도중 전복되어 70여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2) 모던걸, 모던보이가 걷다.

결국 명희는 선혜를 따라나섰다. 오가는 행인들이 모두 쳐다본다. 늙은이들은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엄격한 눈빛 속에 강한 힐난이었다........동경 은좌 거리에서도 손색이 없던 선혜의 차림이고 보면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두 여자는 전차를 타고, 다시 한번 갈아타고 내려서 본정통 입구에 이르렀다. (토지 제3부 2권 제2편 6장 <동경유학 여자동창들> 14쪽, 28쪽)

1982년 임오군란 이후 청과 일본 상인들은 서울에서 치열한 상권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주로 일본 상인들은 경성 진고개 너머 충무로 쪽에 상권을 형성하였고 청 상인들은 명동 쪽에 상권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명동 쪽의 상권도 일본인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당시 경성은 오늘날의 강북과 강남과 비슷한 개념으로 종로 북쪽의 북촌과 남산 주변의 남촌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주로 고관대작 및 부유한 양반들이 북촌에 거주하였고, 남촌에는 몰락한 양반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땅소유 개념이 서툴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쪼들리고 있던 남촌의 주민들로부터 헐값에 땅을 매입하거나 고리대를 통한 수법으로 1910년대까지 진고개와 남산 일대에 일본인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자네 진고개 구경하얏나?”
“하고말고. 서울갓다가 진고개 안보고 구경이 무슨 구경인가”
“그래 엇더튼가. 그래 시계줄 잡고 그네뛰는 아색기 보앗나.”
“보다뿐이겠나. 지구뗑이 안고 쌩쌩 매암도는 아색기까지 보았지.” 

<잡지 「별건곤」 29호, 1929년>

일제시대 내내 불야성을 이루며 근대 문물을 판매하는 상점과 각종 유흥가가 밀집하였던 혼마치(오늘날의 충무로), 메이지마치(오늘날의 명동)등이 ‘작은 도쿄’를 이루며 번성하였다. 오늘날의 종로는 여전히 전통적 조선 상인들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근대 상권의 면모로는 혼마치나 메이지마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종로는 비교적 골목길이 많고 개발이 더딘 반면 명동은 서울 제일의 중심지로 화려함을 띠고 있는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고 하겠다. 일제 강점기 조선 건달 김두한(종로)과 일본 건달 하야시(명동)의 대결 이야기도 이곳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1920년대 이후 본정통(혼마치) 등지에 조지야, 미츠코시, 히라다 등의 백화점이 잇따라 들어서 서울에 온갖 이색 상품을 내놓았다. 쇼윈도우와 판매대 앞에서 조선 사람들은 휘황찬란한 일본 상점가로 이끌려 들어갔다. 이곳을 양복을 빼입고 양복 조끼 호주머니에 회중시계를 끼고 돌아다니던 남성들을 모던보이라 하였고, 서양식 옷과 모자에 양산을 들고 다니던 여성들을 신여성(모던걸)이라 불렀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소설 속의 선혜, 임명희, 이상현 등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도 있었으나 조준구 처럼 지주들이 한껏 멋을 부리고 돌아다닌 경우도 많았다. 모던걸의 일부도 부자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일 없이 본정통을 돌아다닌 경우도 많아 사회의 비난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3. 일제시대 근대 건축물

서울시의회 000의원은 19일 열린 문교위원회에서 "총독부 건물을 일제 잔재로만 의미를 한정, 철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의 `舊조선총독부 건물철거보류 동의안'을 제출했다.0의원은 이 동의안에서 "舊 조선총독부 건물은 지난 45년 日本 항복문서 조인식이 거행된 것을 비롯, 48년 5월30일 제헌국회 개원식, 48년 7월17일 헌법공포식, 48년 7월24일 초대 正.副통령 취임식, 48년 8월15일 정부 수립선포식이 거행된 역사적인 건물"이라며 철거반대를 주장했다.....그는 이어 "일제 청산은 결코 건물의 파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1995년 8월 19일 연합뉴스>

1995년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조선 총독부 건물이 철거 되었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일제 식민 잔재의 대표적 건축물인 조선 총독부를 철거하고 광화문과 경복궁의 본 모습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총독부 철거과정에서 철거냐 보존이냐의 문제를 놓고 많은 견해 차이가 있었다. 진작에 철거되었어야 할 건물이었지만 그것이 그대로 서 있어서 가지는 의미가 또 있기에 나타난 논란이었다. 오늘날 북악산을 뒤로 하고 당당하게 선 경복궁을 볼 때면, 일본이 왜 이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세웠는지를 생각해 보면,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조선 총독부 건물은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철거했던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일제 시대 근대 건축물들은 일본 잔재의 철거, 혹은 오래되고 낡아 보기 싫다는 이유로 대부분 사라지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근대 건축물에 대한 재평가 이루어져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현장’으로 사용되거나,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역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목포의 동양척식회사 건물도 수차례의 논란 끝에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원주에서도 제일은행 건물이나 중앙지구대 건물의 활용을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4. 나오며

세상은 변한다. 개항이후 조선 사람들이 겪었던 수많은 변화는 그들이 원하지 않았지만 받아들여야 했던 외세로부터 강요된 수동적인 변화였다. 그들은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본인 스스로도 변화시켜 갔다.

오늘날 우리도 수많은 변화 앞에 서 있다.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세상이 저 만치 멀리 가 있기도 한다. 그러한 변화 앞에 때로는 당혹해하기도 하고, 그 변화에 동참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변화 역시 우리가 스스로 변화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개항 이후 조선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강요되고 수동적인 변화일 경우가 많다. 우리가 당면하는 수 많은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변화에 대응하여야 할까?

생각해 보기.

오늘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러한 변화를 우리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까요?

<참고문헌>

이사벨라 비숍,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한겨례 신문, 『한국 근대사, 숨은 풍경들』
김진송,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
신명직, 『모던보이 경성을 거닐다』

우희태(대성고 교사)

토지한국사 7강은 오는 23일 '동학농민항쟁지 탐방'으로 대체되며 다음 8강 강의는 8월 14일 오후5시 '일제의 역사왜곡과 우리 역사를 지키려 노력한 사람들'을 주제로 영월고 탁봉욱 교사가 강의합니다.

 

 

 

 

 

 

 

 

 

 

 

 

 

 

우희태 대성고 교사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