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 황재연 연당중 교사

“유랑극단 같은 데서 노래 부르는 것, 그거야?”
길상은 눈이 커다래져서 놀라움을 나타내었다. …(중략)…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무뢰배가 되는 것보담은 낫겠지.’
(토지 제 4부 4권 제 4편, <생명의 지향>, 151쪽, 나남출판)

소설 《토지》에서 김길상이 그의 아들 환국에게 송관수의 아들 영광의 소식을 묻는 장면이다. 영광이 음악을 한다는 환국의 말에 김길상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다.

백정의 자식에 대한 좌절감을 겪으며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불구가 된 송영광은 ‘나일성’이라는 가명으로 ‘반도악극단’의 일원이 되어 대중음악 활동에 참여한다. 소설 《토지》에서는 송영광의 활동을 통해 일제강점기 대중가요에 대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은 모진 고초와 핍박을 당하면서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했고, 광복에의 염원과 세태를 노래에 담아 불렀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에 불려진 대중 가요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본고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대중들이 주로 불렀고 유행했던 대중가요들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대중가요(유행가)의 등장

대중가요란 근대 뒤부터 대중매체가 전달하는 그 나름의 작품 관행을 지닌 서민들의 노래로 작사자와 작곡자가 가수에게 부르게 할 요량으로 새롭게 창작한 노래를 말한다.

대중 가요가 형성된 것은 음반에 녹음된 음을 재생하는 유성기(留聲機, 또는 레코드)가 발명되면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899년에 유성기가 본격적으로 신문에 소개되고 광고되었다.

유성기의 기능은 녹음보다는 음악적 상업성에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대중가요라기보다는 전통노래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3․1 운동이후 유행한 <희망가>의 등장은 대중가요의 가능성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나의 희망이 무엇인가/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서 곰곰히 생각하면/세상 만사가 춘몽중에 다시 꿈 같구나 <희망가>

<희망가>는 3․1 운동이 실패로 끝난 후 우리 민족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전국을 풍미했다. 당시의 민중들은 <희망가>의 염세적인 가사 때문에 <실망가>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희망가>는 연극 막간에서도 불리게 되었고, 조선 대중가요의 출발점으로 널리 민중 속으로 퍼져나갔다.

1926년에는 우리나라 가요사상 최초의 인기곡으로 기록되는 노래가 나타났다.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苦海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사의 찬미>

<사의 찬미>는 이바노비치가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에 우리말 가사만 붙인 노래였다. 이 노래를 부른 윤심덕은 일본 음악학교에서 근대적 성악교육을 받은 첫 여성 성악가로 이름이 높았었다. 그러나 윤심덕은 이 음반 녹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애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은 1926년 여름 조선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으며, 노래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의 찬미>의 대인기에는 유명 성악가의 정사라는 쇼킹한 요소가 크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대중이 그 염세적인 가사를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3․1 운동 이후 1920년대 조선을 뒤덮은 암울한 사회 분위기가 작용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희망가>와 <사의 찬미>를 우리 나라 대중가요의 출발점으로 삼기에는 뭔가 아쉬운 점이 있다. 그것은 외국 곡을 기초로 하여 가사만 붙인 노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우리 나라 최초의 대중가요는 <낙화유수:일명 강남달>로 볼 수 있는데, 이는 1927년에 영화 <낙화유수>의 주제가로 만들어졌고, 인기를 끌자 1929년 음반으로 발매되기에 이른다.

강남달이 밝아서 님의 놀든 곳/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젓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물에 뜬 이 한밤을 홀노 새울까

<낙화유수>(김서정 작사, 작곡)

3. 대중가요에 담긴 사회상

가. 황성옛터와 민족의 한

1920년대 중반 무렵부터 창가를 대신하여 등장한 대중가요(유행가)는 초기에는 연극 무대의 막간에서 불리거나 활동사진(영화)의 반주 음악이나 주제가로 보급되고 있었다. ‘막간 가요’라 할 수 있는 곡 가운데서 <황성옛터>가 생겨났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 지어요

<황성옛터>(왕평 작사, 전수린 작곡)

<황성 옛터>는 1932년 빅타레코드 4월 신보에서 <황성의 적>이라는 제목에 이애리수의 노래로 발매되어 순식간에 5만 장이 판매되었다. 조선총독부는 민중에게 조선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자각시킬 우려가 있다고 하여 <황성 옛터>의 발매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그러면 황성옛터에서 보이는 황성은 어떤 의미였을까? ‘황성’은 ‘황제 나라의 도성’ 이라는 의미와 ‘황폐한 성’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황성’은 황폐해진 조선의 모습을 뜻하면서 사람들에게 ‘망국의 한’을 상기시키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1932년경의 “황성”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할까? 1912년에 임병찬이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아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할 때는 대한제국 때의 왕정 복고를 목표로 삼았고, 전국적인 의병투쟁을 벌이려 하였다. 반면, 1915년 대구에서 박상진이 조직한 대한광복회는 국권 회복과 공화제 실현을 목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해방 이후 건설한 독립된 조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혼재하고 있었다.

1917년 7월 중국 상하이에서는 해외 독립운동자 14인 명의로 해외단체의 통일적 최고기관 조직을 위한 민족대표회의를 개최하자는 '대동단결의 선언'이 발표됐다. 박은식, 신규식, 신채호 등이 포함된 이 선언의 내용은 “국권을 포기한 것은 황제이지 대한제국의 국민이 아니며, 황제가 외세인 일본에 국권을 내주기로 한 것은 무효이므로 이제 대한은 국민의 나라이다.

그리하여 공화제를 지향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황제가 권력을 포기한 것은 국민에 대한 묵시적 양도이므로 이제 대한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이 선언은 1919년 3․1운동을 거치면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민주공화국”을 선언하였고, 이제 황제국의 부활을 논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2년에 만들어진 노래에서 황성이 언급되는 것은 당시 민중들의 정서에는 아직도 ‘대한제국’을 회상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황성옛터의 인기는 당시 대중들의 정서에 맞닿아 있었고, 민족 감정을 자극한다는 구실로 작사자 왕평과 작곡자 전수린은 종로경찰서에서 취조를 받고 유치장의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였고, 총독부는 이 노래를 부르는 조선인을 심문하고 취조했다. 대구의 어떤 보통학교에서는 음악 시간에 이 노래를 가르친 교사가 교직에서 쫓겨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일제강점기에는 노래도 마음대로 부를 수 없는 시대였다.

나. 조국과 고향에 대한 상실을 노래한 타향살이

일제는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으로 우리 민족의 토지를 약탈하더니, 1920년대에는 산미증식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쌀 수탈을 강행했다. 계획에 따라 1920년에 1270만석이던 쌀 생산은 1933년에 1630만석으로, 13년간 360만 석이 늘어났으나, 1920년에 185만 석이던 수탈량은 1933년에는 870만 석이 되어, 같은 기간 동안 685만 석이 늘어났다. 수탈량이 증식량보다 325만 석을 웃돌고 있다. 이는 조선 농촌 경제의 몰락을 의미했으며, 농촌의 몰락은 공장 노동자나 광산 노동자의 증가를 촉진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민족은 고향을 떠나고, 나라를 떠나는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을 대변하듯 유행한 노래가 <타향살이>였다.

1. 타향살이 몇 해런가 손꼽아 헤어 보니/ 고향 떠나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2.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3.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때는 옛날
4. 타향이라 정이 들면 내 고향 되는 것을/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언제나 타향

<타향살이>(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고향과 조국은 타향에 온 사람들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타향살이>에서는 이러한 정든 고향산천을 터나온 사람들의 억제할 수 없는 향수와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구구절절 배어 있다.

용정 공연에서는 또 30대 부인이 무대 뒤로 고복수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고 한다. 고향 부산을 떠난 지 10년이 된다고 하면서, 남편과 사별한 후 가난한 생활에 지쳤으나, 그렇다고 고향으로 돌아갈 돈도 없었기에, 고향이 같은 고복수에게 주소를 넘겨주며 가족에게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망향의 한을 가슴에 간직한 채 며칠 뒤에 자살했다고 한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만주뿐 아니라 시베리아, 중국 본토, 일본 등 동포가 많이 모여 살고 있는 곳에서는 종종 있는 민족의 비극적인 일이었다.

고향을 그리는 주제로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유행가 중에서도 단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타향살이>, 즉 <타향>이었고, <나그네 설움>(고려성 작사, 이재호 작곡)이었다.

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 목포의 눈물

1920년대에는 3․1운동의 실패로 실의에만 잠긴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뿐만 아니라 김원봉의 의열단, 김구의 애국단이 결성되어 활동했고, 만주에서는 항일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6․10 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고, 신간회가 조직되어 독립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조국에 대한 독립을 염원하며 ‘봄’과 ‘님’을 각기 ‘광복․독립’, ‘민족․중생’을 상징하기 시작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이후 대중가요에 ‘봄’과 ‘님’이 소극적으로나마 조국 독립을 염원하는 시어로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는 대중가요에도 나타났는데, <목포의 눈물>에서 보이는 ‘님’의 모습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1935년 <목포의 눈물>이라는 한 편의 유행가가 조선 전국을 휩쓸어, 반도 서남단에 있는 항구 도시 목포를 일약 낭만과 추억의 고장으로 만들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 때
부두의 새악시 아롱져진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三栢淵 願安風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진가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의 맺는 절개 목포의 사랑
<목포의 눈물>(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호남 지방은 조선에서 가장 큰 곡창 지대인 동시에 목화 산지로도 유명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호남의 군산항과 목포항에서 조선에서 수탈한 쌀과 목화가 선적되어 일본으로 보내졌다. 따라서 조선인에게 항구란 일제에게 소중한 양식을 빼앗기는 곳, 또 토지를 빼앗긴 가족이 타향으로 유랑의 길을 떠나는 민족적 비애가 서려있는 이별의 무대를 의미했다.

<목포의 눈물>에 그려진 ‘새악시’의 이별 장면도 실제로 조선 전국에 벌어지고 있었고,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3절에서는 이별의 옛 상처를 되새기면서도, 아주 못 올 님은 또 아니기에 그 님에 대한 마음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하며, ‘님’에 대한 절개와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목포의 눈물>이 말하는 ‘님’은 어떤 성격의 것일까? 제 2절 첫줄 가사는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라고 불리고 있으며, 이 노래의 저항 정신이 나타나 있다.

노적봉은 유달산 중턱에 있는 작은 바위 봉우리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노적가리로 위장해 왜군을 속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그와 연계된 ‘삼백년 원한’이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님’이라는 말은 남편이나 연인을 가리킴과 동시에 이순신, 나아가서는 조국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당시 대중들은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은유적으로 조국애를 표현한 노래를 부르고, 광복을 기리며 “그리운 내님이여, 언제나 오려나<눈물 젖은 두만강>(한명천 작사, 이시우 작곡)”며 절규했다.

라. 만요를 통한 세태풍자 - 오빠는 풍각쟁이야

1920년대부터는 소위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도시화가 진행되는 시기였다. 특히 서울의 변화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백화점이 등장하는 등 각종 근대 시설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종로 거리를 누비며 소비를 조장하고 유행의 첨단을 걷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의식 있는 사람들은 이들을 의식도 없이 유행을 좇고 요란한 차림을 한다며 비아냥거리며 ‘모던보이’와 ‘모덜걸’로 부르며 희화화했다.

1930년대에는 이러한 도시 생활과 세태를 풍자하는 일종의 코믹 송(comic song)인 ‘만요’가 등장했다. 아래 노래를 살펴보자.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몰라 난 몰라 내 반찬 다 뺏아 먹는 건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오빠는 풍각쟁이야>(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

여동생으로 보이는 시적 화자는 노래 전체에 걸쳐 오빠의 부정적인 행태를 묘사하고 이를 비판적인 언술로 평가한다.

이러한 만요를 통해서도 당시의 사회상을 볼 수 있다. 노래 속 주인공이 오빠가 자기 반찬을 빼앗아 먹는 것에 대해 불평하고 있는데, 떡볶이가 오이지나 콩나물과는 대별되는 고급 반찬으로 불고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이채롭다.

또, <오빠는 풍각쟁이>에서 ‘월급쟁이’라는 오빠의 직업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35년 당시, 서울 모여자 고등보통학교 졸업 예정에 있는 3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선호하는 남편의 직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선호 직업	샐러리맨	의사	상인	교사	신문기자	변호사	예술가	관리
선호자수	12	6	4	2	2	2	1	1

위의 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여학생 30명 중에서 12명이 장래 남편의 직업으로 은행이나 회사에 다니는 샐러리맨을 선호하였다. 그 이유는 “50~60원이라도 매달 일정한 수입이 있는 사람이 좋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1930년대에는 ‘월급쟁이’가 상당수의 여성이 선호하는 직업이었다. 그런데 「오빠는 풍각쟁이」에서의 여동생은 월급쟁이 오빠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 당시 월급쟁이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만요는 희화화된 노래라는 특성상 다소 저속하거나 유치한 가사도 포함하곤 했는데, 경쟁적으로 만요가 발표되면서 저속하게 흐르는 유행가를 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중일 전쟁이 발발한 1937년 이후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고 1940년대 들어 전시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만요와 같은 가벼운 유행가도 사라졌다.

당시의 대표적인 만요로는 「유쾌한 시골영감」, 「뚱딴지 서울」, 「왕서방 연서」, 「세상은 요지경」등 약 70여곡이 제작되었다.

마. 암흑기의 군국가요

1936년,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미나미 지로는 역대 총독 중에서도 가장 가혹하게 ‘황국신민화 정책’을 강행하였다.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황국신민서사’를 제정하여 강제로 암송시켰다.

1938년에는 육군특별지원병령을 시행하여 많은 조선인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이와 함께 일제는 갖가지 군국 가요를 발표하였으며, 조선인 지원병으로서 훈련을 받고 출전해 중일 전쟁에서 전사한 이인석을 칭송하는 노래와 영화가 만들어지고,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노래가 만들어졌다. 소설 《토지》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홍이와 영광의 대화를 통해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머지 않아 조선 노래도 부르지 못하게 되겠지요. 벌써부터 학교에서는 조선어 과목이 폐지되었고 창씨개명하라고 성화가 이만저만 아닌데 노래라고 부르게 내버려두겠습니까.”

“그럼 뭘 하고 사나.”

말을 해놓고 보니 맥빠진 것이기도 했지만 우문이었다. 홍이는 멋쩍게 웃었다.

“군가 나부랭이나 부르게 되겠지요. 그리고 전선의 위문단으로 추럭 타고 다녀야 할 겁니다.”

(토지 제 5부 1권 제 1편, <불완전의 비애>, 57쪽, 나남출판)

1941년 12월 8일 이른바 대동아전쟁이 시작되자 한국 가요인들은 군국가요를 불러야 했고, 일본군 위문공연에 동원되어야 했다. 당시의 가수들은 무대 뒷면에 일장기를 게양하고 군국가요를 불러야 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나온 대표적인 노래가 1943년 조선지원병 실시 기념으로 나온 ‘나라님의 병정되기를 소원’하는 <혈서지원>이었다.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고 한글자 쓰는 사연 두글자 쓰는 사연/ 나라님의 병정되기 소원입니다.
<혈서지원>(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이 시기에 일제의 강요로 널리 불려진 군국가요(친일가요)는 <혈서지원>외에도 <아들의 혈서:1942년>(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이천오백만 감격:1943>(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결사대의 아내:1942>(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이 몸이 죽고 죽어:1942년>(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등이 대표적이었다.

4. 나오며

일제 강점기는 암흑의 시대였고, 수 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독립을 외치며 투쟁을 벌인 시기였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독립 투사가 될 수는 없었다. 수 많은 대중들은 독립을 염원하며 자신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부르며 위안을 삼고, 독립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크게 유행한 노래들의 공통점은 민중들의 삶을 위안하며, 그들의 염원을 담았다는 점이었다.

반면에 군국가요처럼 강요되고 대중을 역행하는 노래는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몰던 노래는 일제의 패망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나 군국가요를 만들고, 부르던 작곡자와 가수들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혈서지원>을 작곡하고 노래한 박시춘, 백년설, 남인수를 기념하는 가요제가 열리고, 그들을 기리는 동상이 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독립군을 상징했던 가곡 <선구자>가 친일파들에 의해 조작된 허구였음이 드러나고, <봉선화>가 친일음악가 홍난파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공적이 많다는 이유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는 이유로 그들의 친일을 정당화한다면 앞으로 목숨 걸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이 있을까?

<참고 자료>
박경리, 『토지』, (주)나남, 2007
박찬호, 『한국가요사1』, 미지북스, 2009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22-빼앗긴 들에 부는 근대화 바람』, 한길사, 2004
장유정,『오빠는 풍각쟁이야』, 민음in, 2006
최창호, 『민족수난기의 대중가요사』, 일월서각, 2000
한국사연구회,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1』, 역사비평사, 2002
가요114(http://www.gayo114.com)

황재연(연당중 교사)

 

 

 

 

 

 

황재연 연당중 교사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