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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마을탐구 2부: (24)문막읍 취병2리(진밭마을)

자연마을을 찾아서-산골마을에서 문화산실로 재탄생 임춘희 기자l승인201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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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체험 프로그램 일환으로 천연염색체험장을 만들어 운영한다. 같은 건물에 있는 진밭골 쉼터는 특별한 날 마을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는 곳.

모든 여건과 환경을 다 따지면 원주는 아직 변화시켜야 할 부분이 많은 도시다. 하지만 지리적 여건만 본다면 원주는 참 살기 좋은 도시다. 중부내륙 거점도시니, 안전·건강도시니 이런 수식어를 빼더라도 원주시내에서 30, 40분 정도만 벗어나면 사방에 농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취병2리 진밭마을을 다녀오면서 새삼 그런 맘이 들었다.

지난 여름 그렇게 푸르던 들녘이 황금벌판으로 물들었다가 가을걷이를 마친 요즘은 벼 밑둥이 나란히 줄을 맞춘 채 드러나 있다. 쭉쭉 펴 놓은 고속도로 옆으로 구불구불한 산골길을 조심스레 달리는 일도, 자갈이 나뒹구는 비포장 도로 위를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차들은 또 얼마나 정겨운가.

문화가 살아있는 산골 마을

황토 흙으로 이뤄진 진밭마을은 일당산 계곡을 따라 형성된 산골마을로 옛적엔 물기가 많아 밭이 질다 하여 이전동(泥田洞)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진밭마을이 됐다고 전한다. 왼쪽에 취병저수지를 끼고 있는 이 마을은 문막읍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강을 경계로 동쪽에는 건등리, 서쪽으로는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남쪽으로는 반계리, 북쪽엔 지정면 안창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진밭마을은 그냥 농촌이 아니다. 빠른 시대 변화에 발맞추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안일한 마을이 아니다. 예전부터 모이기를 좋아하고 함께 나누는 것을 즐겨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은 안주 하고 있기 보다는 새로운 농촌을 만드는 일에 그 어떤 마을보다 적극적이다. 이미 20여 년 전에 김봉준 화백이 이곳으로 들어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지난 2008년엔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또 이 마을 가장 위에는 '옛고을책박물관'이 자리잡고 우리나라 책의 역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천연염색, 규방공예 등 전통기술공예품을 산업화해 전시, 판매하는 공간인 '진밭골 향기'는 농가 부가가치 창출에 한 몫을 한다. 20여 가구 마을주민들은 사슴이나 젖소, 한우를 사육하는 축산업을 겸하고 있으며, 사방을 둘러싼 구중 산속에서 드룹, 취나물, 머위와 같은 산나물을 채취해 농가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진밭마을은 마을주민과 예술인이 격을 좁히며 자연, 농사, 문화가 균형을 이뤄가는 과정 중에 있는 보기 드문 산골 문화 마을이다.
 
진밭마을 숲 이야기

   
▲ 진밭마을은 요즘도 3년에 한 번씩 마을 입구에 형성돼 있는 숲과 마을 윗쪽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 아래에서 제를 지낸다.

마을로 드나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마을입구엔 숲이 형성돼 있다. 검문소처럼 당당한 기세로 서 있는 나무들이 이룬 숲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국적으로 몇 안 되는 훌륭한 자연유산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소나무와 벚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등 활엽수가 자연적으로 형성된 이 숲은 제4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길을 닦겠다고 없애 버리지 말고 잘 가꾸고 보존해야 한다고 숲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계곡을 끼고 마을이 시작되는 입구에 이뤄진 이 숲은 마을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가려주고 기운이 마을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아준다고 마을 주민들은 믿고 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김춘선(79) 노인회장은 "6.25전쟁 시에도 다른 지역에서 우리 마을로 피난을 온 사람이 있었고,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인지 전쟁을 피해갈 수 있었다"고 지난날을 돌아봤다.

이 마을 주민들에게 있어 숲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숲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 마을에선 3년 간격으로 가을 추수를 마치면 마을 제일 위쪽 산에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두 그루와 마을 숲 입구 숲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김춘선 노인회장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사람들이 우리겨레의 맥을 끊기 위해 높고 이름 있는 산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하는데, 이 마을에 있는 산에도 꼭대기에 부적처럼 박아 놓은 말뚝이 있다"며 "당시 그 말뚝을 박고 나서 산 짐승(호랑이라고 전함)들이 마을로 내려와 해코지를 하기 시작했고, 두려움에 떨던 주민들은 제를 드리며 정성을 바쳤다"고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그 때부터 산짐승 출연이 멈췄다"며 "그렇게 지내게 된 제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이 하나 더 있다. 힘이 장사인 원모 씨는 어느 날 나무를 해 가지고 마을로 돌아오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우물에서 쌀을 씻고 있는 아낙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그 순간 원 씨는 재빨리 도끼를 호랑이를 향해 내리쳤는데 그 도끼가 호랑이 머리에 명중했다. 그 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숫제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고 부풀리는 바람에 한동안 문막 일대에 이 일은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로 전해졌다고 한다.

'숲과 마을' 미술축전의 아쉬움

   
▲ 동양철학자 고 중천(中天) 김충열 선생은 노모를 끝까지 모시지 못해 늘 마음아파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동인들이 비를 세워 놓았다.(사진 왼쪽은 비석 앞면, 오른쪽 사진은 애절한 사연을 새겨놓은 뒷면)

10년 전인 지난 2000년 여름엔 이곳 진밭마을에서 마을주민들과 작가들이 만들어낸 순수 미술축제가 열려 주목을 받았다. 다른 축제와 달리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 축제는 민간미술과 생태공동체를 접목시킨 국내 최초의 독특한 지역문화행사로 주목 받으며 멀리 타 지역에서도 관람객이 찾아와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이듬해에는 환경, 생태, 지역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도내 외 예술인 30여명이 참여하는 공개미술전을 선보였고 작가와 주민과의 대화시간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주민참여행사로 진행하면서 축제가 확대됐다. 시대를 앞서간 이 축제는 2회째를 맞으며 문화관광부로부터 마을단위 우수축제로 선정돼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대외적으로 축제위상을 인정받게 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숲과 마을 미술축전은 2회를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막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생활문화 축제로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 당초 취지였으나 농업정책 부재로 농민들의 빈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을 축제의 주체자로 참여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축제를 진두지휘했던 김봉준(56) 화백은 "주민들의 의견을 이끌어 내는 데 많은 한계가 있었다"면서 "체계적인 계획과 주민들과의 충분한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임수경 (54) 전 이장은 "어떻게든 여건을 만들어 예전처럼 다시 축제를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천연염색체험장과 경로당 찜질방

천연염색체험장에서 염색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농촌체험 관광 투어도 진행한다.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흰 천에 천연 물을 들이며 재미있게 체험을 한다. 물든 천으로 옷이나 침구류, 소품을 만들어 '진밭골 향기'에 전시해 놓았다. 황토로 벽돌을 구워 멋스럽게 지은 진밭골 향기는 천연염색체험장 건물 바로 위에 있다. 염색체험장 건물에 진밭마을 쉼터가 함께 마련돼 있어 체험이 있는 날과 같이 특별한 날엔 마을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닭볶음탕 등 마을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체험장과 가까운 곳에 마을 어르신들의 쉼터인 경로당이 있다. 경로당 2층을 찜질방으로 꾸몄다. 마을 주민 1천원, 외부인 2천원의 사용료를 내면 뜨끈뜨끈한 황토 찜질방을 이용할 수 있다. 찜질방에 들어서면 솔 향 비슷한 내음이 전해진다. 임 전 이장은 "예전에는 마을에 금광이 있었다"며 "지금은 폐광 됐지만 그곳 돌을 갖다 놓았는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향긋한 향이 난다"고 말했다.

벽 사방에 황토를 두르고 바닥엔 멍석을 깔아 온도를 잡았다. 찜질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안마 의자와 운동기구도 설치해 놓았다. 아래층은 어르신들이 농한기에 모여 짚풀공예도 하고 시간을 보내는 쉼터로 꾸며져 있다.

   
▲ 다양한 설치미술로 표현한 신화 이야기가 오랜미래신화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국내 최초의 신화미술관 '오랜미래신화미술관'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울퉁불퉁 비포장 길이 나온다. 이 길을 조금 더 오르면 왼쪽 언덕 위에 건물이 서 있다.

지난 93년 이 마을에 작업실을 꾸미면서 이젠 이 마을 사람으로 살아가는 김봉준 화백은 자연친화적 생활정서와 인간형에서 미래문화의 화두를 찾는 예술가이다. 김 화백이 건립을 추진한지 1년 만에 준공한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은 이 마을의 한 부분이다. 165.3㎡ 규모의 신화미술관은 신화를 미술로 한 이야기와 상징을 함께 전시해 독자들과 거리를 좁혔다.  30여 년 동안 준비한 150점의 흙조각, 목판화, 목조각, 붓그림, 한지부조, 청동, 설치미술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농촌 사람들이 그림을 보기위해 갤러리를 찾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당장 코앞에 놓인 생존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버겁다. 김 화백은 이런 농촌의 현실을 두고 보지 않는다. 몸담고 있는 마을이 문화와 하나가 되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작년 6월 마을의 신화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사업으로 부론면 손곡리 예술극장 '이달의 꿈'과 손을 잡고 '신화마을 네트워크 사업단'을 구축했다.

이 사업단은 마을과 기업의 이미지를 결합한 문화자원을 개발할 계획이다. 노동부 지원을 받는 이 사업은 일자리를 만들어 실질적 사회복지 혜택을 베풀 수 있다. 더불어 이 사업이 농촌과 문화가 모두 공존할 수 있는 믿을만한 동아줄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 아름다운 자연 속에 옛 책들을 전시해 놓은 '옛책고을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자연과 박물관의 조화…옛 책 고을 박물관

신화미술관을 지나 비포장길을 조금 더 오르면 사슴농장이 나온다. 차를 세우고 왼쪽 소롯길에 접어들면 원형 건물이 송이버섯처럼 서 있다. 발밑에서 가랑잎 바스랑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언덕을 오르면 평소 운동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람은 '헉헉' 숨이 차다. 간신히 숨을 고르고 올려다본 건물 문 앞엔 '옛책고을'이라고 쓴 문패가 길게 붙어있다. 옛날 정지 문처럼 나무 조각을 연결해 만든 출입문을 열자 그야말로 '삐거덕'하는 정지 문 여는 소리가 난다.

   
▲ 근개화기부터 7차 교육과정 교과서를 전시하고 있는 옛책고을박물관 내부.
'오래된 책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이렇게 운치 있을 수 있다니···' 기대 이상이다. 아니 지금에서야 이곳을 찾았다는 것이 조금 민망했다. 어쨌든, 제1전시실에는 조선 정조 즉위 이후부터 헌종 13년까지 별군직을 거친   37명의 직함과 가문을 기록한 어진친막제명첩을 비롯해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발행된 희귀 서적이 전시돼 있다. 제2전시실에는 상록수, 청록집 등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소설과 시 초판본이, 제3전시실은 1908년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 소년, 서울, 문장, 민중조선과 같은 옛 색이 묻어있는 잡지들이 시대를 말해주고 있다. 제4전시실은 신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 6.25전쟁, 근현대사 등 7차 교육과정까지의 교과서를 시대별로 전시해 놓았다.

지난 2007년 문을 연 이곳은 서점을 운영하는 박옥순 씨가 20여 년간 수집해 온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국대표 소설, 시집, 잡지 등의 옛 책 1천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옛날 재봉틀, 부엌살림, 농기구 등 옛 어른들이 사용했던 생활 기구들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다. 박물관 바로아래 터엔 단아한 한옥이 한 채 있다. 이곳은 자연녹원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한옥 펜션이다.

임춘희 기자 hee@wonjutoday.co.kr


임춘희 기자  hee@wonju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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