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별로 매일 각 기관·시설 찾아 자원봉사

"상애원에서 봉사활동 할 때 일인데…옆에 있던 노인이 옷을 입은 채 실례를 했어요. 냄새 때문에 순간적으로 뒷걸음질을 쳤죠. 그때 한 복지사가 여인의 몸으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뒷처리를 하는 겁니다. 난 그들에 비하면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당시의 경험이 봉사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고 전하는 이경행(81) 전 교장. 지난 96년 용암초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교단을 떠난 이 전 교장은 퇴직과 함께 시작한 봉사활동이 지금까지 이어져 주변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전 교장의 봉사활동은 일주일 내내 계속된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노인종합복지관, 수요일은 십시일반, 금요일은 상애원, 주말이면 심향영육아원을 찾는다. 80이 넘은 나이에 어떻게 그 많은 일정을 소화하느냐는 질문에 "나이가 들면 몸이 힘든 건 당연하지만 봉사활동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었다"며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마음이 뿌듯해지고 몸을 움직이다 보니 건강해 지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답한다.

사실 이 전 교장이 봉사활동을 결심한 것은 교직생활 중에 생긴 일 때문이다. 호저초교에 근무하던 90년대 초반 부모 없는 아이들이 다른 학생들과 떨어져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학부모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학급에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같은 자식이라 생각하고 아이들 등굣길에 도시락 하나씩 더 싸서 보내면 어떻겠느냐"는 이 전 교장의 제안을 부모들이 흔쾌히 받아 들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운동회 때면 가족 없이 외로이 지내는 아이들에게 운동화를 사주며 용기를 북돋웠다. 이를 계기로 평생 봉사활동을 결심한 이 전 교장은 퇴직 후부터 꾸준히 심향영육아원을 찾아 한글과 천자문을 가르치고 있다.

다른 사연도 있다. 원주초교 교감으로 근무하던 1980년대 누전으로 인해 학교에 불이 난 일이 있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이 전 교장은 죄책감 때문인지 그 이후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그 기억 때문일까. 계속 피웠다면 담뱃값으로 써버렸을 3천원 정도를 매일 저금통에 넣기 시작했다. 보통 1년이면 100만원 정도의 돈이 모였고 이 돈은 고스란히 심향영육아원에 전달되고 있다. 이 전 교장 스스로도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이 일과로 인해 심향영육아원 원생들에게는 장학금이 생겼다.

이 뿐만이 아니다. 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자신보다 연배가 아래인 노인들을 위해 동화구연을 하고 있고, 십시일반에서는 직접 재료를 준비하고 배식하는 역할을, 상애원에서는 물리치료를 돕고 있다. 주변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봉사활동 외에 남 모르는 선행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지만 스스로 들춰 내보이는 성품이 아니기에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봉사활동에 매진하는 이 전 교장이 최근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다. 시조시인인 부인 최우연(69) 씨의 작업을 지켜보다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 늦게 시작한 글쓰기지만 이 전 교장에겐 이미 글에 대한 소질이 있었나보다. 지난 23일에는 '송홧가루', '상냥한 계곡', '봄' 등 세편의 작품으로 계간 문예춘추 제23회 아동문학분야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요즘에는 시간이 날때마다 치악산을 찾아 글을 쓰고 있단다.

이 전 교장은 "상애원에서 봉사할 때 노인들이 몇 살이냐고 물으면 일부러 '55살'이라고 속여 대답한다"며 "내가 '누님', '형님'이라고 부르면 밝게 웃어주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느 곳에서 일을 하던 늘 보람을 느낀다"는 이 전 교장. 그의 지난 인생이 늘 한결같은 것은 이런 그의 마음가짐과 배려심 때문이 아닐까.　 박동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