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를 돌리는 도예가 박국현(49) 씨는 흙과 하나가 된다.

 40여 년 동안 그의 손을 거친 많은 양의 흙이 갖가지 모양의 도자기나 항아리, 접시, 다기로 잉태되었다가 뜨거운 불가마 속에서 인고를 거쳐 세상에 태어났다. 흙과 함께 살아온 그의 세월을 증명하듯 박 작가가 머무는 곳은 온통 빚어 놓은 도자기들로 둘러싸여 있다.

문막읍에서 10분 정도 자동차로 들어가면 궁촌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그 곳에 박 작가의 삶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정겨운 작업실과 안식처가 있다. 가정을 이룬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수줍은 새댁 같은 아내 김영아 씨는 박 작가와 같은 길을 걷는 인생의 동반자다. 작품세계는 서로 다르지만, 아니 당연히 다르겠지만 흙을 좋아하고 흙으로 빚은 작품에 이름표를 다는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마음 통하는 삶의 친구다.

사람과 더불어 보내는 순간들 또한 작업의 한 부분이라며 동네 사람들과 격 없이 지내고 있는 박 작가가 고향인 경기도 이천을 떠나 원주에 온지는 12년째. 본인이 빚은 다기에 손수 보이차를 내려 대접하며 구수한 입담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와해시키는 모습은 마치 마음씨 좋은 동네 이장님 같다.

이런 그가 물레를 들고 지난 2001년엔 원주역사박물관으로, 2004년엔 문화의 거리로 나와 시민들 앞에서 직접 물레시연을 보이며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도예 저변확대를 위해서는 온 몸을 던지는 열정을 갖고 있다. 그의 물레 솜씨는 세계 도예인들이 반할 정도다. 지난 2002년 캐나다 밴쿠버에 진출하면서부터 미국, 일본, 중국 등 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작업실에서 완성한 작품을 개인전이나 순회전을 통해 세상에 내 놓기도 하지만, 국내외적으로 열리는 워크숍에 참가해 전 세계적인 작가들과 작품세계를 나누고 그 현장에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본인 키 높이 정도의 대형 항아리를 물레에 올려놓고 돌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러다보니 미국 예술 잡지인 '버질 아메리카(VERGIL America)'에서는 박 작가를 '신의 손'이라며 극찬했고 오는 4월 20일부터 일주일동안 LA와 뉴욕으로 초청해 초대전을 열어 준다.

"태중에서부터 흙과 함께 했기 때문에 흙의 정신을 갖고 태어난 것 같다"며 장난기 섞인 웃음을 짓는 그는 부친 고 박기원 씨로부터 도예를 물려받은 장인이다. 경기도 이천 도자마을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형이나 누나들과 달리 흙을 좋아했고 스스로 창작활동을 하는 등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지난 77년 부친의 사사로 본격적인 도예가로 입문해 27세가 되던 87년 경기도 광주에서 '박국현 도예공방'을 열었다. 90년 경주에서 한 동안 작품 활동으로 경험을 쌓았고 지난 98년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을 찾다가 이 곳 궁촌리에 정착했다.

그는 또 '막사발'의 대가이다. 그가 막 만들어 놓은 듯한 투박한 대형 접시위에는 과일을 씻어 담아 놓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어난다. 도예의 여러 분야 중 실생활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예술품인 막사발의 매력에 빠져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고 국제 막사발 페스티벌과 국제장작가마 페스티벌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세계 도예가들에게 최고의 축제인 세계막사발 장작가마축제를 원주로 유치하기위해 그는 지난 2005년 축제조직위에 적극 제안해 원주가 선정되기도 했지만 원주시의 예산부족을 이유로 중국 산동성으로 빼앗기는 아픈 경험도 했다. 막사발 축제는 98년 한국에서 처음 고안돼 막사발이라는 우리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세계 60여 개국의 도예가들이 참가하는 축제이다.

사람들 속에 살아가기를 갈망하는 그는 매년 5월이 되면 본인의 작업실 마당에서 '열린공방 작은음악회'를 열어 자비로 음악인을 초청하고 공방전을 준비해 마을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나눠왔다. 하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은 경비를 혼자 충당하기 버거워 올해는 잠정적으로 연기해 놓은 상태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날은 아침에 까치가 다녀갔는지 손님이 계속 공방 문을 두드렸다. 워크숍을 통해 인맥을 맺은 여주 거주 작가 황예숙 도예가 일행이 방문해 그들의 무한한 작품 이야기를 듣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박 작가가 이천에서 원주로 터전을 옮긴 것은 어쩌면 원주로서는 큰 선물을 얻은 것이다. 그의 작품이 세계인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는데 그가 앞으로 펼칠 가능성의 크기는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일을 평생 하면서 살아가는 이들 부부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임춘희 기자hee@wonjutoday.co.kr

임춘희 기자  hee@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