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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마을탐구 2부: (14)귀래면 운계리(다둔삼태미마을)

자연마을을 찾아서 고민교 객원기자l승인201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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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캐던 마을에서 고로쇠 마을로

19번 국도를 타고 양안치 고개를 넘어가다보면 새로 뚫린 도로가 나온다. 새 길로 들어서 왼쪽으로 가다보면 귀래면 운계3리 다둔삼태미마을이다.

돌로 세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마을입구를 지키고 있다. 지난 정월대보름에 마을제사를 지내면서 북어포를 매달아 놓았던 것이 아직 건재하다. 뒤쪽으로 주민들이 직접 깎은 솟대가 세워져있고, 새끼를 꼬아 만든 줄이 눈길을 붙든다. 마을의 액운을 물리치고 풍년을 기원하는 옛 풍습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전통마을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는 항아리.  
 

삼태미(삼태기의 방언)는 하늘에서 본 마을의 모습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오래 전 부터 다둔마을로 불려왔다. "일제강점기 때는 이 동네가 무척 부자동네였었다고 해요. 그때만 해도 7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30여 가구 정도 살고 있어요. 아마 금광굴이 있어서 그랬겠죠.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면 금을 제련했던 터가 아직 남아 있어요. 마을이름이 그때는 '닷돈'이라고 했었다더군요." 최원하(76) 노인회장의 말이다.

"맞아요. 나도 금광굴에서 금 캐는 것을 구경한 적이 있었어요. 증(노두에서 암석을 채취하거나 암석을 파쇄할 때 지질망치와 더불어 사용되는 공구)으로 구멍을 뚫어서 화약을 넣고 심지를 박아서 불을 붙여요. 그러면 꽝~하고 폭파되거든요. 인부들이 리어카로 돌을 실어내면 그때부터 지게꾼들이 지게에 돌을 지고 방앗간까지 1km정도를 걸어 내려와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항상 금이 '닷돈'어치만 나오는 거예요. 금이 돌보다 말랑말랑하거든요. 지게꾼들이 걸어 내려오면서 몰래 삼키는 바람에 항상 '닷돈'어치 금만 나온다고 해서 '닷돈'이라고 불렸대요. 지게꾼들이 대변을 누면 금이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이강익(75) 옹이 거들었다.

 

 
 
  ▲ 산채나물로 만드는 피자를 굽는 화덕.  
 

금이 나왔던 굴은 세 곳이었다고 하는데, 한 곳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작은골과 치마골은 아직 그 형태가 남아 있다. 작은골에는 박쥐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마을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어 4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굴을 볼 수 있다.

닷돈이 다둔이 됐다. 장작불에 이밥 먹는 마을로 부자동네였던 다둔삼태미마을은 금 광산이 폐쇄되면서 쇄락했다. "내가 시집올 때만 해도 이 동네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몰라. 정말 힘들게 살았어요. 마을로 들어오는 신작로가 없어서 시장에 가고 오는 데만도 하루 종일 걸렸지. 그런데 이 마을은 계곡이 참 좋더라구.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빨래하는 빨래터도 있었고…" 정재준(74) 할머니의 회고다.

외진산골이라 귀래까지 가려면 걷는 수밖에 없었단다. "아이들은 걸어서 한 40분 거리에 있는 귀래초등학교에 다녔지. 지금은 학생이라곤 단 한명도 없지만 그때는 학생들이 꽤 많았어. 아침이면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서 학교에 다녔는데, 한 8명쯤 됐나…심심할 때면 새끼를 꽈서 공을 만들어 차고 다녔는데…" 이 마을 최고령자인 김간란(88) 할머니의 아들인 김주대(64) 씨가 어린시절 추억을 털어놨다. 아이들 교육문제로 외지에 나가 살다가 15년 전에 고향으로 다시 들어왔는데 어릴적 함께 학교에 다녔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고향을 지키고 있다고.
 
근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가옥

이 마을 특징 중 하나는 계곡물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운계리는 백운산의 '운'과 계곡의 '계'자를 따서 운계리라고 한다. 운계리 다둔삼태미마을은 백운산에서 흘러내려오는 큰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세 가닥으로 내려오던 물줄기가 계곡과 합쳐지기 때문에 사시사철 물이 넉넉하다. 계곡을 중간에 두고 마을이 형성되다보니 눈 앞에 보이는 마을인데도 다리를 건너야 한다. 상류 쪽은 깊지 않아서 그냥 건널 수도 있지만, 하류 쪽은 수량이 많아서 다리를 이용해야 한다.

"계곡을 가운데 끼고 있지만, 큰 홍수를 만난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 전에는 나무다리가 놓여 있었어요. 계곡 앞집에 놀러갔다가 큰 비가 와서 다리가 떠내려가면, 비가 그칠 때까지 그 집에서 먹고 자고 했을 만큼 서로 친하게들 지냈지요" 이봉희(70) 씨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리가 다섯개나 된다.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다리도 놓고, 지붕개량도 하고, 자동차 길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귀래5일장을 보러갔다 오려면 19번 국도인 즘고개에서 내려 지게를 지고 30분 이상 걸어야 했단다.

이 마을은 과거와 현재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집들이 많다. 6.25 때 미군들이 후퇴하면서 마을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한두 집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소실됐었다고 한다. 피난 갔다 돌아온 주민들이 지었던 집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고, 양반들이 지은 고대광실 같은 기와집도 있다. 거기에다 계곡에는 초현대식으로 지은 집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다양한 집들을 접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힘 합쳐 산을 만들다

   
 
  ▲ 다둔마을 농촌체험관.  
 

마을 앞산은 조산이라 부른다. '지을 조(造)'자를 쓰는데 마을주민들이 직접 만든 산이다. "옛날 어르신들 얘기를 들어서 안 건데요. 마을에 산이 있으면 풍수지리상 좋다고 해서 주민들이 함께 만들었대요. 그래서 조산이라고 부릅니다." 한재구(59) 이장이 전한다.

조산은 한동안 마을의 앞산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1960년대 마을에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조산을 반반하게 만들어 잠실을 지었는데 이 잠실이 마을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누에농사를 지을 당시 나라에서 잠실을 지으라고 보조금을 좀 줬었어요.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합의를 해서 보조금으로는 정미소를 사고, 잠실은 주민들이 직접 노역을 해서 지었죠.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했던 정미소라 운영이 잘 됐고, 공동기금도 많이 모아졌어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운영이 어려워 팔았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어요. 하지만 그때 만들었던 기금으로 마을이 발전됐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겁니다." 최원하 노인회장이 부연했다.
 
체험장과 박물관 운영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은 체험관과 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작년에 주민회의를 거쳐, 집에 있던 옛 물건들을 모두 모아 박물관을 만들었다. 귀한 것들이 많아 한번쯤 둘러볼만하다.

옛날 이 마을에는 옹기 굽는 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만, 명맥을 유지지하기 위해 도자기 굽는 화덕을 구입해 체험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가스를 이용한 철재화덕이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도자기 파손이 별로 없다고. 이외에도 유럽에서 수입해 온 피자 굽는 화덕이 있다. 산속 마을이다 보니 산채나물이 많아, 산채를 이용한 피자를 개발했다. 재료를 넣고 3분만 기다리면 피자 한판이 완성되는데, 보는 즐거움도 한몫 한다.

원주에서 유일하게 고로쇠 채취하는 마을

지금 이 마을에 가면 고로쇠 채취가 한창이다. 원주에서 고로쇠를 채취하는 유일한 마을로 5년전 부터 채취하기 시작했는데 당도가 높아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뼈에 좋아 '골리수'라고도 불리는 고로쇠 수액은 둘레가 10cm 이상인 나무에 구멍을 뚫은 후 호스로 연결해 수액을 받는데 산림청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해진 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해야 하고, 나무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격년을 원칙으로 한다. "처음에는 나무에 구멍을 뚫고 물통에 수액을 받았었죠. 그런데 지고 내려오는 것이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그 다음해는 고무호스를 이용해 물통에 집약하는 형식으로 했죠. 웬걸 등산객들이 올라 다니면서 수액을 먹고는 호스를 통에 담아 놓질 않아 손해가 많았어요. 지금은 8km나 되는 고무호스를 연결해서 마을 방앗간에 있는 대형물통에서 받고 있지요." 이재언(57) 총무의 말이다.

이곳은 농작물보다는 밭작물인 콩, 고추와 옥수수를 주로 재배하고 있다. 지형 특성상 논보다 밭이 많기 때문이다. "고추농사는 매년 풍년이지 뭐. 그런데 고추는 매년 같은 땅에다 심으면 안돼. 올해 이 밭에 심었으면 내년엔 다른 밭에다 심어야지. 농사짓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야. 남편은 아파서 일도 못하고, 마침 아들이 와서 도와주니까 이렇게라도 나와 일을 하지." 이 마을에서 두번째 고령자인 심준섭(80) 할머니가 밭일을 하면서 말을 건넨다.

   
 
  한재구 이장, 최원하 노인회장, 이강익 옹, 정재준 할머니, 김주대 씨, 이봉희 옹, 이재언 총무, 심준섭 할머니(사진 위부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파란알 낳는 닭

이 마을 이재언 총무는 파란 알을 낳는 닭을 키워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계란을 깨서 보면 다른 계란과 큰 차이가 없는데, 겉 색깔이 푸르스름하다. 삶으면 색이 더 짙어진다.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계란이예요. 키운 지 한 5년 정도 되었는데, 부화시키기가 참 쉽지 않더라고요. 300알 정도를 부화장에 가져가면 50% 정도밖에 부화가 안돼요. 그리고 잘 죽어서 올해는 한 마리도 부화를 못 시켰어요." 무엇보다도 병아리 부화시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통 계란보다 고소하고 노른자 색깔도 진하다. 닭도 보통 닭보다 쫄깃쫄깃하고 맛있어서 한 번 먹어본 사람은 다시 찾는다는 후문이다. "매우 사나워서 알을 품을 때도 치열한 싸움전을 벌이곤 해요. 닭 껍질도 보통 닭보다 두껍더라고요." 한때 100여 마리가 넘던 닭들을 모두 분양하거나 팔고 지금은 30여 마리 정도 기르고 있다. 파란 알을 새벽시장에 가지고 나가면 인기가 아주 많아 금방 팔린다고 한다.

고민교 객원기자


고민교 객원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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