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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마을탐구 2부: (5)부론면 정산1리 솔미마을

자연마을을 찾아서 고민교 시민기자l승인20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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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앞 쪽에서 바라본 마을전경.
"옛날엔 나루터가 있어 시끌벅적 했지"

원주시 서남단에 위치해 충청북도 앙성면과 접하고 있는 부론면 정산1리 솔미마을. 마을 앞에는 남한강이 흐르고 마을입구에는 정갈하게 가꾼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환하다. 솔미마을은 솔미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어서 생긴 이름이고 정산리라는 행정구역 명칭은 주변 산 모양이 가마솥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부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정산1리에 70가구 정도 살지만 옛날에는 훨씬 더 많이 살았어. 6.25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이 시끌시끌했지. 샘개나루터가 저 앞에 있었거든. 옛날에야 다 뱃길로 다녔잖아. 충주에서 짐 싣고 가던 배가 샘개나루터에서 좀 쉬었다가 서울로 올라가고는 했으니까. 충주 장원으로 장보러 많이 다녔지. 거, 뭐냐 쇠전 있잖아. 우전이라고 해야 맞나. 등치 큰 소를 배에 싣고 건너다녔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최영원(84)할아버지의 말이다. 솔미마을이 너무 좋아 한 번도 나가 살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할아버지는 나이보다 십년은 젊게 보인다.

"우리 마을은 항상 사람들이 많았던 곳이야. 6.25때도 인민군이 바글바글했다니까. 후퇴하면서 우리 마을에다 진을 쳤었지. 이곳을 거쳐서 손곡리, 비두리, 흥업 쪽으로 나갔어. 내가 1.4후퇴 때 피난 갔다 오니까 이번에는 미군들이 우리 마을에 진을 치고 있더라고. 나루터가 있어서 이동이 편리하니까 그랬던 것 같아. 그래도 마을 피해는 별로 없었어. 어떤 동네는 온 마을이 전부 불바다가 된 곳도 있다고 하지만 우리 마을은 반 정도만 탔으니까." 역시 마을 토박이 신동윤(77)할아버지의 말이다.

그때 불탄 집들은 움막을 짓거나, 흙벽돌로 손수 지어서 살았다고 한다. 이때 마을을 떠난 사람이 많아 가구 수가 줄었다고. "그때가 72년이었을 거야 아마. 홍수가 대단하게 난 적이 있었어. 지금 우리가 사는 마을이 솔미 윗마을인데, 그때 솔미 아랫마을에 한 70여 가구 정도 살았는데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버렸어. 끔찍한 일이었지. 그 이후로 대부분 윗마을로 이사하면서 지금은 단 두 가구만 살고 있어. 나도 그때 윗마을로 이사를 왔는데 그때 지은 집들이라서 많이 낡았지. 요즘 새로 지은 집들은 보기도 좋고 편리하더구만…" 최영원 할아버지의 말이다.

그 홍수가 있고나서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돼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됐다. 이후에는 댐에서 수위조절을 하기 때문에 가뭄이나 홍수 겪을 염려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강 건너 마을까지 걸어서 갈 수도 있었어. 물이 허리밖에 안되니까 물고기도 많이 잡았고…하지만 지금은 댐 때문에 그냥은 건너갈 수가 없고 배를 타야 건널 수 있어." 신동윤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는 나루터가 없어지면서 배를 타고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대신 부론면에 다리가 생기면서 차로 강을 건너다니게 됐다. 최영원 할아버지는 지금이야 차로 다니니까 거리가 멀어도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옛날에는 충주 80리, 원주 80리, 장원 40리, 문막 40리였다고 회상했다. 남한강을 앞에 두고 있지만, 오지 중에도 오지마을이었던 것. 아주 옛날에도 도로는 있었지만, 리어카 한 대 다닐 만큼 소로였고 유신 때 경운기 다닐 정도로 길을 정비했고  도로 포장이 제대로 된 것은 불과 10년 전이었다고.

"나는 우리 마을이 참 좋아. 우리 동네는 다른 동네에 먹을 것을 빌리러 갈만큼 어렵게 살지는 않았거든. 그렇다고 크게 부자들도 없고, 그냥저냥 사는 마을이야. 농사지어서 먹고 살았는데, 물이 가까이 있어 그런지 농사가 잘 돼 고기 잡아 생계를 유지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거든."

다른 산골마을처럼 이곳도 대다수가 노인들이다. 70세 넘으신 분들이 삼십 명을 웃돌 정도로 고령마을인데다 독거노인들도 많다. 하지만 워낙에 마을사람들이 끈끈한 정으로 뭉쳐있어 마을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 솔미마을엔 초등학생이 단 한 명 있다고 한다. 홀로 사는 할머니의 손주로 부론초등학교를 다닌다.

   
▲ 나란히 서있는 느티나무가 한 폭의 그림이다. 이 마을을 상징하는 나무다.

KBS 아침드라마 '큰언니' 촬영현장

최근 종영된 아침드라마 큰언니 촬영장소가 있어 화제다. 두 달 정도 버스가 열대 스무 대씩 들어와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길을 다 막아서 차가 다니지 못해 불편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워낙에 그 길이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니란다.

남한강이 바로 보이고 뒤로는 솔미산이 감싸고 있는 곳인데  두 그루 나무가 유난히 오똑하게 사이좋게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다. 강과 어우러져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과 그 옆에 쓰러질 듯 낡은 집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곳이다. 몸서리치게 가난한 생활 속에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온 큰언니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을 빌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느티나무.

제사 지내는 느티나무

솔미마을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많다. 옛날부터 마을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세 그루의 느티나무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박 이장에 따르면 매년 보름날 달뜨기 전에 잔을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 대대로 내려오는 풍습인데, 제주는 그 해에 상을 당하는 등 액운이 없고 일 년 내내 별 탈 없이 무고하게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맡았다.

마을회관 뒤에 있는 느티나무도 제사지내는 나무다. 450여 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괴기'라는 중이 지팡이를 꽂아 놓고 간 것이 자라 지금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 두꺼비 서식처 솔미저수지.

천혜의 두꺼비 서식처 '신비의 솔미저수지

아래 솔미낚시터는 물을 빼내려고 두 번이나 시도했다가 포기한 곳으로 마을사람들은 특별한 곳이라 믿는다.

"이 저수지에는 메기, 붕어, 가물치, 잉어 등 물고기가 워낙 많아서 물을 빼내려고 했지요. 물을 반쯤 빼고 마저 다 빼내려고 하니까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거예요. 일하다 말고 모두들 혼쭐나서 저수지에서 나왔는데, 똑같은 일 두 번 겪고 나니까 다시는 이 저수지 물 빼낼 생각 안하게 됐지요."  "봄이면 새까만 두꺼비 알이 어마어마하게 많지요. 올챙이들이 두꺼비가 될 때면 저 도로가 두꺼비로 뒤덮을 정도예요. 정말 대단합니다." 환경오염과 서식처 파괴 등으로 두꺼비가 산란할만한 장소가 많지 않다고 하는데 이곳은 천혜의 두꺼비 서식처다.

   
▲ 고추밭과 건조장.

집집마다 고추농사…태양초 인기
"미리 주문해야 살 수 있어"

솔미산 신선봉과 노적봉이 병풍처럼 둘러 쳐진 솔미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옛날에는 담배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대부분 그만둬 지금은 두 가구정도만 남았다고. 담배농사가 워낙 손이 많이 가는 농사이기 때문이다. 배와 복숭아를 심는 집도 있지만 이 마을에서 자랑할 만한 것은 태양초 고추다.

고추는 건조방식에 따라 일반초(화건)와 태양초(양건)로

구분하는데 일반초는 고추 건조기에서 말리는 것이고, 태양초는 고추 건조장에서 태양 볕으로 건조시키는 것을 말한다. 솔미마을에는 태양초 건조장이 세 군데 있는데 마을주민 모두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집집마다 천 평 이상씩 고추농사를 짓는다. 입소문이 나면서 미리 예약해야 살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조엄밤고구마와 찰옥수수도 많이 심는다.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1만㎡ 정도 고구마를 심었다. 캘 때도 주민 모두가 함께 나선다.

2005년부터 실시해 온 우렁이농법으로 마을전체가 청정지역이다.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솔미개울엔 다슬기가 엄청나게 많다. 우렁이농법은 풀 먹는 우렁이를 논에 풀어서 농사짓는 방법이다. "그런데 올 농사는 손해가 아주 많아요. 찰벼를 심었는데 논 밑에 풀이 별로 없었는지 우렁이가 벼를 타고 올라와서 다 뜯어먹고 있어요. 벼에 붙은 분홍색 보이죠. 저게 우렁이가 알 까놓은 거예요. 우렁이는 물 밑에 있는 풀만 먹는데 저것들도 살기위해 자라는 벼를 다 먹고 있어요." 박한선 이장은 우렁이농법 5년 만에 처음 겪는 상황이라며 안타깝다고 말했다.

"봄마다 제비들이 찾아와요"  광복절 만세 불렀던 마을회관, 제비들의 안식처

   
▲ 주민들이 길조로 생각하는 제비.

솔미마을에 있는 정산1리 마을회관은 주민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장소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래전부터 마을주민들의 힘을 결집해왔던 곳. 마을의 모든 일이 이곳에서 의논되고 결정된다. 8.15 광복절 만세를 불렀던 곳도 바로 마을회관 마당에서다. 

몇 년 전부터 마을회관은 또 하나의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마을회관 처마 밑이 제비들의 안식처가 된 것이다. 이제는 산골에서도 보기 어려운 제비들이 유독 이 마을회관에만 찾아와 집을 짓는다고.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마을 어느 집에서도 제비집을 찾아 볼 수 없는데, 저기보세요. 저렇게 제비집이 많아요. 스무 개는 되는 것 같아요. 매년 봄이면 제비들이 찾아와 집을 짓고 살다가 갑니다."박한선(54)이장의 말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길조로 여기고 있다.

고민교 시민기자
 


고민교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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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선 이장

신동윤 이장

최영원 이장

우렁이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논.

버스 뒤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제비들이 무리지어 둥지를 틀고 있다는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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