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면 한 군데에 근거지를 두고 생활하는 것이 행복한 일이겠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이고 보면, 그저 이게 내가 누릴 수 있는 복의 전부겠거니, 하고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차를 운전할 줄 모르기 때문에, 천상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집에서 직장인 상지대학교까지 가기 위해서, 비행기와 배만 제외하고 모든 교통수단을 활용해야 한다.
집에서 나와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타고, 그 다음에는 기차를 탄다. 때로 강의 시간이 안 맞을 때에는 고속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원주까지 들어와서는 택시를 타고 학교까지 간다.
한번 움직이고 나면, 그렇지 않아도 약한 몸이 비명을 질러댄다.
서울에서 원주로 움직인 날은 거의 열두 시간쯤 자야 한다.
생각해 보면, 이게 무슨 미련한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현대인들은 공간을 정복하기 위해서 빨리 움직이는 탈것을 발명했다.
그것을 믿고, 어지간한 장거리는 겁도 안 낸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거리 이동에 걸리는 시간과 돈이 얼마나 엄청난가.
그리고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덕택에 절약된 시간은 삶을 한가하게 만드는 데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더더욱 바쁘게 만드는 데 이용될 뿐이다.
삶은 더더욱 복잡해지고, 할 일은 더더욱 많아진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이키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근본적으로 변해 버렸다.
나만 해도, 서울에서 원주를 오르내리는 피곤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삶의 터전을 완전히 허물어버릴 각오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다.
그러니, 그럴 용기를 낼 주제도 못되므로, 주어진 여건 안에서 지혜롭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가능한 한, 오르내리는 데 버려야 하는 시간을 의미있게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이 참 지난한 일이어서 내 뜻대로 되지를 않는다.
그 시간 동안에 책을 읽는다든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일들을 머릿속으로나마 정리해보는 시간으로 활용한다든가 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를 않은 것이다.
십중 팔구 기차 안이나 고속버스 안에는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움직이는 시간을 어떻게 보람있게 활용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계획은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만다.
같은 공간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사람들.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들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 오징어 같은 냄새나는 음식물을 거리낌없이 먹어제끼는 사람.
구두를 벗고 냄새나는 발을 앞좌석의 의자 위에 턱하니 올려놓는 사람, 복도를 제 집처럼 뛰어 다니는 아이들.
대개는 나이든 사람들일수록 더 멋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지만, 젊은 사람들이라고 크게 나은 것 같지 않다.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대는 사람들 중에는 젊은이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대개는 놀러가는 차림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일상으로부터 해방된 모처럼의 기회에 들떠서 그렇게 표나는 행동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차 안에는 나처럼 생활 때문에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처럼 들떠있는 사람들의 특별한 행동이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삶은 어떤 기술이다.
조금씩만 그 기술을 획득하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쾌적하게 지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기술이 턱없이 모자란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에 엄청난 에너지와 긴장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은 잠재된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누구든지 한판 싸움을 벌일 태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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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 정 란
■1953년 서울 출생
■성심여자중·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졸업
■프랑스 그르노블 III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전공: 프랑스 현대시)
■현재 원주 상지대 인문사회대 부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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