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에 속수무책 무너진 단계천, 땜질식 복구 논란
당초 계획은 잔디 식재…집중호우 대비 스탬프 포장 복구
원주시 "재발방지 위해 불가피" vs 전문가 "비상식적"

단계천 유역면적은 우산동부터 단계.무실동까지 광범위하다. 호우 시 유입되는 빗물 양이 상당한 반면 하천 폭은 좁아, 유속이 빠르고 쉽게 범람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구조를 지녔다. 복원 시에는 하천 폭을 넓히고 버드나무, 갈대 등 하천 식생을 식재해 유속 감소를 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단계천 설계에 이 부분은 반영되지 않았다.

주민 민원에 따라 상당 면적을 주차와 산책 공간으로 내주는 바람에 하천 폭은 줄어든 채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단계천이 한 번의 장맛비에 속수무책으로 훼손된 뒤 전문가들은 “예상했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이제라도 하천의 구조와 생태를 고려한 재설계 수준의 복구가 요구되지만, 단계천에선 이미 땜질식 복구가 시작됐다. 

▲ 단계천 복구공사 현장.

전 구간 콘크리트로 포장
단계천 생태하천복원사업 시행사인 한국환경공단(이하 공단)은 지난달 중순 단계천 복구공사에 착수했다. 공단 복구계획에 따르면, 단계천 전 구간에서 파손된 시설물 등이 원래대로 정비 보수된다. 

공단은 장맛비에 이탈한 저수호안과 옹벽 판석을 복구하고 오수관로 재매설, 산책로를 재설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당초 단계천 부실 복원에 대한 총체적 진단과 함께 체계적인 복구계획을 수립하겠다던 원주시 입장과 달리 현 복구계획은 단순 보수 조치에 그치고 있다. 

하천 호안(하천 비탈면에 시설하는 공작물)의 복구공사는 기존의 설계를 변경해 진행한다. 공단은 당초 하천 1~3구간에 자연석쌓기 공법으로 호안을 조성했다. 하지만 집중호우 시 유실, 파손 등의 재발 위험이 높다고 판단, 스탬프 포장으로 설계를 변경해 복구한다. 스탬프공법은 타설한 콘크리트에 스탬프로 문양을 찍어내는 방식이다. 이 같은 복구계획에 환경전문가들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이차복 원주녹색연합 대표는 “부실한 복원도 모자라 콘크리트로 하천을 덮어 복구하겠다는 건 더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 발상”이라며 “원주시는 당장 공사를 멈추고 단계천 유속, 유량 등 구조를 고려한 최적의 공법을 찾아 복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단은 스톤네트공법으로 조성된 4~5구간에 대해서도 구간별 상태를 고려해 스탬프 포장을 선택 적용할 예정이다. 

이번 복구는 공단이 제시한 두 가지 복구안 중 원주시가 스탬프공법을 선택하며 확정됐다. 공단은 1안으로 기존 설계와 동일한 잔디 식재 등의 원형 복구를, 2안으로 스탬프 포장공법을 제시했다. 자연 친화적 복구 요구가 계속되는 가운데 공단은 9월 중순 이전 단계천 복구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 원주시가 생태하천으로 복원한 단계천. 잔디가 식재돼있던 공간은 경화흙포장을 입혀 산책로로 조성 중이다.

원인 규명 뒷전…땜질 보수 급급 
단계천은 한 차례 장맛비로 좌.우안 고수부지 잔디가 유실되고 산책로가 파손되는 한편 매립된 오수관로마저 제자리를 이탈했다. 피해가 상당했던 반면 이에 대한 원인 규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언론, 시민단체, 환경전문가 등이 단계천 복원사업 전반의 검증을 위해 설계, 공정 과정 등의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원주시는 공단과의 협약을 이유로, 공단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해당 정보를 비공개하고 있다. 

부실 복원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원주시는 지난달 6일 2천만 원 규모의 ‘단계천 모니터링 및 유지관리‘를 위한 용역을 발주했다. 당초 시는 복원공사 설계.공법상의 미비점을 확인하고 향후 복구방안 수립에 근거 자료로 활용할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확인 결과 이 또한 시설물 파손 전수조사 수준에 그친다. 

이차복 대표는 “지금 필요한 용역은 ‘단계천이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과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 복구방안에 초점을 둔 연구”라며 “당장 제대로 된 복구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2천만 원을 들여가며 전수조사를 하고 있는 원주시의 발상은 여전히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사비를 최대한 줄이려는 시공사, 민원을 줄이려는 지자체가 그런 근시안적인 발상으로 복구공사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생태하천을 콘크리트로 덮겠다는 공단 계획에 원주시도 동의했다면 원주시도 단계천 부실공사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상현 원주시 생태하천과장은 “공사비 등을 이유로 시공사 측은 단계천 비 피해를 ‘공사 하자’가 아닌 ‘자연재해’로 주장하는 상황”이라며 “만에 하나 복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용역을 발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잔디 등 식생을 걷어낸 전면 콘크리트 포장에 대해서도 “단계천은 애초부터 생태하천의 요건이 부족한 상태로 준공됐다”며 “이제는 재발 방지 차원의 복구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단계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은 한국환경공단이 시행을 맡아 지난 2023년 11월 준공했다.한신공영㈜과 신영종합건설㈜이 시공사로 참여, 6대4 비율로 공사를 맡았다. 복원공사에는 국도비 243억5천만 원(50%), 기금 170억4천500만 원(35%), 시비 73억500만 원(15%) 등 487억 원이 투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