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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主民)은 머릿수가 아니다

주민을 대신해 일해야 할 정치인들은 나몰라라 하는데, 쥐꼬리만한 회의수당 받고 부족한 행정력을 대신 메우는 이통장 및 사회단체장과 회원들만 고생을 시키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용정순 사회적협동조합 틔움연구소 대표l승인202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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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휴일 단독주택에 사는 지인의 집에 놀러가 테라스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양산을 쓴 두 분이 종이를 들고 방문하셨다. 그늘진 테라스는 선선했지만 점심 때가 지나 햇살은 뜨거웠다. 국제스케이트장 유치를 위한 시민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중이라며 식구 모두 서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누구냐고 물으니 동네 반장이라고 하셨다. 반장님이라는 말에 집주인 부부는 쓰다달다 말도 못하고 내미는 종잇장에 서명해 주고는 나에게  무슨 스케이트장을 만들겠다는 거냐고 물었다. 이사온 지 10년 넘었는데 반장을 오늘 처음 본다고도 했다. 

 동네마다 이·통장들이 국제스케이트장 유치 서명을 받느라 애쓰고 있다. 그나마 아파트는 엘리베이터에 안내문을 부착해 놓았지만 농촌이나 단독주택은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아 발품을 꽤 팔아야 한다. 사회단체들도 조직적으로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원주에 2천억이 넘는 국제스케이트장이 생기면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열심히 서명을 받는 분들도 있지만 시키는 일이고 너무 실적이 떨어지면 눈치가 보여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분들도 있다. 작년에는 강원오페라하우스 건립 지지운동을 하느라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성명서 발표하고 결의대회 하고 그랬었는데…올해는 바쁜 농사철에 서명 받으라고 한다며 불만은 터트리는 분들도 계신다. 

 국제스케이트장이 지역사회에 가시화 된 것은 지난 1월18일 원강수 원주시장의 기자회견을 통해서이다. 원 시장은 태릉국제스케이트장 대체 시설 건립 부지 선정 공모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지자체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우리는 얼마 전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더아트강원 콤플렉스(강원오페라하우스) 국비사업 추진을 이뤄냈으니 국제 스케이트장 유치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하였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군부대 부지의 활용방안을 찾고 사업비만 2천억 규모의 국제스케이트장을 유치하게 되면 동계스포츠산업 시장이 확대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이런 정책결정은 빠른 정보와 판단력이 필요하기도 한 것이기도 하고 유치해서 문제 될 것은 없는 사업이라면- 건립비도 국비, 운영비도 국비로 지방비 부담이 전혀 없다면- 단체장의 결정만으로도 추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규모의 시설과 예산이 동반되고 부대효과가 높은 사업을 다른 지방자치단체라고 관심이 없을까? 국제스케이트장 유치경쟁이 치열하다. 전국 지자체 7곳 중 도내에서만도 춘천, 원주, 철원이 유치를 신청했다고 한다.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사업일수록 정치권의 협력과 정치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회의원, 시·도의원 그리고 단체장이 앞장서 강력하고 절박하게 원주 유치의 당위성을 공론화하고 중앙부처를 설득해야 한다. 그러라고 뽑아 놓은게 정치인들 아닌가. 얼마 전 있었던 22대 총선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정책공약집을 살펴보았다.

 갑·을지역 국회의원 누구도, 하다못해 시장과 같은 당 국회의원 후보자 공약집에 조차 '국제스케이트장 유치' 공약은 없었다. 원주시 수장으로서 원주를 위해 꼭 필요한 사안이라면 국회의원 후보자들에게, 적어도 같은 당 후보에게 공약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청하는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꼭 해야 할 일이었다면. 그게 정치 아닌가? 
원주시의회에서도 올 1월 30일 문화도시위원회 회의에서 안정민 시의원이 지역구에 있는 군부대 부지의 활용방안에 대한 질의 중 국제스케이트장에 대한 언급이 한 두 마디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3월 11일 본회의에서 황정순 의원이 시장의 기자회견문과 대동소이한 내용의 국제스케이트장 유치 촉구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 국제스케이트장 유치라는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한 정치권 논의의 전부였다. 정말 우리시장님은 국제스케이트장을 유치할 의지가 있는건지 의아심이 든다. 정치인들 두고 왜 엄한 주민들에게만 서명하라 하고 결의대회 하게 하시는 건지 묻고 싶다. 

 주민을 대신해 일해야 할 정치인들은 나 몰라라 하는데, 쥐꼬리만한 회의수당 받고 부족한 행정력을 대신 메우며 동네 크고 작은 일을 챙기시느라 바쁜 이통장과 지역사회 곳곳에서 어려운 곳을 살피고 채우는 사회기관단체장과 회원들만 고생을 시키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정책결정 과정에 주민참여를 이야기하는 지방자치시대에 주민(主民)을 머릿수나 채우는 존재로 만드는 일은 이제 좀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용정순 사회적협동조합 틔움연구소 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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