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카트슨 사람들' 은 장 피에르 쥬네 감독이 만든 1991년 프랑스 영화입니다. 세상이 황폐하고 식량이 부족한 시대 어느 도시에서 일어나는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입니다. 고기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정육점에 사람 고기가 들어오는 날 만을 고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육점은 곧 권력의 중심에 있는 공간이자 정육점 주인은 권력자가 됩니다. 결국 그들은 누군가를 유인해 살해하고 그 고기로 배를 채우며 살아가게 됩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정육점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옵니다. 정육점 주인과 주변 사람들은 그 청년의 고기가 필요해 살해할 기회만 노리고 있지만 전직 서커스 단원이었던 청년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 한 채 아파트 아이들을 위해 노래하고 광대 연기를 보여주며 따뜻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알게 합니다. 청년의 따뜻한 마음에 반한 정육점 딸은 아파트 옥상 위 달빛 아래서 함께 연주하며 가까워지고 청년에게 이곳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청년은 황폐화된 도시에서도 함께 사는 게 어떤 것인지 인생에서 아름다움이 뭔지 알려줍니다.

 스웨덴의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인도 북부의 도시 '라다크'에서 그가 16년간 살았던 경험을 쓴 책입니다. 1975년 그가 처음 라다크를 방문했을 때 느낌으로부터 시작해 16년간 라다크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기록한 책입니다.

 일년 중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간이 5개월에 불과하고 나머지 7개월은 겨울 속에서 살아가는 라다크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살아 있는 낙원과 같은 곳이였습니다. 이웃과 경쟁하지 않고 부를 축적하지 않으며 공동체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중요한 삶의 원칙이였습니다. 모든 것이 제한적인 고산지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한 당연한 조건입니다. 공동체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공동체는 높은 수준의 예술활동을 유지하며 함께 사는 삶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농사를 지을 때 수 없이 많은 노래를 함께 불렀고 축제를 위해 준비하는 공연은 오랜 역사 속에서 정제된 높은 미학성을 보여줍니다. 
서구문명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던 라다크는 80년대 이후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관광객들을 통해 서구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풍요롭게 변했습니다. 청년들은 관광객들의 짐꾼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했고 자본은 축적됐으며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하나, 둘 도시로 떠났습니다. 존경받았던 어른들은 가난과 소외의 이중고를 겪게 됐고 부자가 생기면서 그들은 스스로 가난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불행해졌습니다. 

 처음 그가 라다크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 가난이라고는 없다라고 얘기했던 이들은 90년대 들어서 라다크는 너무 가난하니 당신들이 제발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웃들과는 갈등과 분쟁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수준 높은 예술은 관광객들을 위한 볼거리가 되었습니다. 

 공연을 하기 위해 30여 일간 쿠바에 다녀왔습니다. 현지인으로 사는 쿠바는 생수, 고기, 계란, 전기, 버스, 채소, 비누, 화장지 등 우리가 소소하게 느꼈던 일상의 것들이 모두 아주 귀합니다. 경제제재로 비료를 구할 수 없는 쿠바는 모든 농산물들을 유기농으로만 생산하는 탓에 그 생산량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연료가 부족해 대부분 운행을 중단한 버스 대신 한 시간 거리를 걷는 것이 모두에게 자연스럽습니다. 사람들은 제한된 환경에서 제한된 소비를 하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과하게 소비하고 과하게 먹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유, 버터, 고기, 계란 등도 구하기 어려우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건 수준의 식생활을 유지합니다. 

 그런데도 공연장에는 공연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연극인이 되려는 아이들이 많아 연극학교의 경쟁률은 아주 높습니다. 사람들은 늘 음악과 춤과 그림을 즐깁니다. 제한된 삶 속에서도 밝고 쾌활합니다. 높은 수준의 예술이 그 사회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간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 사회를 지속 시키는 것,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것은 높은 수준의 예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머지않아 모든 것이 부족해질 지구의 미래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