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곡 창고를 재생하여 전라북도 대표 관광자원이 된 삼례 책마을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운명을 결정할 원주시의회 제241회 임시회가 5월 17일 시작됐다. 회의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5월 25일 무렵 개최될 아카데미극장 철거예산이 포함된 추경예산안이 원주시의회 본회의 심의를 통과하면 아카데미극장은 철거되어 사라지게 된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아카데미극장 철거와 보존 문제는 원주시의회에서 극장 철거를 위한 추경 예산안이 결정되더라도 종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집권 여당은 철거를 주장하고, 보존을 주장하는 쪽은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이다.

아테네의 혈통을 이어받은, 우리보다 민주정치에 익숙한 사람들의 정치는 예술적(?)인 타협과 조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 분열을 최소화하는데 기여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합리적인 타협과 조정은 찾아볼 수 없고 분열을 조장하고 증폭하여 정치적인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아카데미극장은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없다. 둘째 아카데미극장은 낡아서 안전하지 못하다. 셋째 수리비·유지비가 많이 소요되어 앞으로 원주시 예산 운영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물론 극장 보존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필자는 아카데미극장이 보존되길 바란다. 앞선 글에서 세 가지 주장이 사실이 아니거나, 논리와 근거가 희박함을 사실에 근거하여 밝힌 바 있다. 필자는 공직생활의 전 기간을 문화재 분야에서 일했기 때문에 어느 공직자보다 아카데미극장에 대하여 깊이 알고 있다. 아카데미극장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은 확고한데, 필자의 판단은 다른 공직자가 업무를 익히다 떠나는 1∼2년 동안의 짧은 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30여 년 동안 문화재 업무를 수행하면서 익힌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건 필자의 판단에는 정치적인 선입견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원주는 도시의 역사와 규모에 비하여 남아 있는 문화유산이 많지 않은 도시이다. 도시 정체성이 희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에서 아카데미극장 같은 근대 문화유산의 존폐가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카데미극장 철거에 결정권을 가진 시의원들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옛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1863년 게티스버그에서 링컨의 연설을 떠올리며 아카데미극장의 운명을 결정할 원주시의회 의원들에게 바란다. 빨간색 또는 파란색 필터가 장착된 안경을 벗고 오직 '원주의, 원주에 의한, 원주를 위한' 원주시의회의 결정이 있길 간절하게 기대해 본다. 

경제적인 이유로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래되고 낡은 D등급의 건축물을 재생하여 도시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를 살펴보기 바란다. 완주군의 양곡창고를 재생하여 문화예술 마을로 변모시킨 삼례문화예술촌, 오래된 철공소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여 카페로 재생한 서울 문래동 철공소 거리, 강화에서는 낡은 정미소를 재생하여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기도 한다. 모두 위험하다고 여겼던 낡은 건물의 변신이다. 특히 삼례 문화예술촌에있는 '삼례 책마을'은 영월군에서 놓친 자원이 완주군에서 명소로 탈바꿈한 사례이다.   

며칠 전 아카데미극장 철거될 거라는 소식을 들은 서울에 있는 몇몇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모두 아카데미극장의 철거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다. 그 중 영화관련 일을 하는 친구는 필자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아카데미극장을 잘 살려서 그곳에서 영화와 드라마관련 시상식을 한다면 아카데미극장이 명소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아카데미극장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톱스타들이 풍물시장이나 아카데미 인근 시장을 방문하면 시쳇말로 지역경제에 대박일 텐데 무슨 이유로 극장을 서둘러 철거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아카데미극장 철거 결정에 앞서 아카데미극장을 등록문화재로 신청할 것을 제안한다. 아카데미극장은 아직까지 제도적인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기한 아카데미극장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주장은 필자가 재직 중에 시도한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공모사업'에서 탈락한 것에 근거한다. 그러나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은 아카데미극장만의 가치를 평가한 것이 아니다. 아카데미극장이 포함된 주변 도시 공간 전체를 평가한 것이다. 

아카데미극장 문화재 등록 신청이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부결된다면 지금까지 보존을 주장했던 사람들도 수용할 것이다. 반대로 아카데미극장이 등록문화재가 된다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국가로부터 인정받게 되는 것이니 철거를 주장한 사람들도 수용할 것이다. 또 등록 문화재가 되면 안전진단부터 보존과 활용을 위한 시급한 수리에 필요한 예산을 국가로부터 지원 받을 수 있으니 원주시의 예산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선량한 시민이 정치의 도구가 되어 편을 갈라 싸우는 험한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주시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