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감영 사적공원조성 기본계획.

지금 원주에서 가장 큰 화제는 아카데미극장 존폐문제이다. 시장직인수위원회에서 촉발된 아카데미극장 철거는 이제 원주를 벗어나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슈가 되었다.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낡은 극장을 보존하는데 시민의 혈세를 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화를 꽃피우고 향유하는 것은 자본의 힘이다. 또한, 문화는 개인과 도시, 국가의 품격이고 관광 자원이다.

정부에서 집행하는 사업 중 경제사정이 좋지 않으면 문화관련 사업들이 타격을 받는다. 예산을 삭감하고 심지어는 폐기되는 사업들도 문화관련 사업들이 제일 많다. 아카데미극장의 존폐를 두고 쟁점이 되는 문제 중 하나도 예산이다. 극장이 낡아서 수리비가 많이 들고, 수리 후 유지비가 많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필자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예산낭비를 이유로 폐기될 뻔한 사업이 떠오른다. 바로 강원감영 복원정비 사업이다.   

강원감영 복원정비 사업은 1995년 처음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처음 사업계획은 '강원감영 정비복원 및 사적공원 조성사업'이었다. 계획의 요지는 일산동과 중앙동 일원에 걸쳐 있던 옛 강원감영 청사 부지 중 원주군청사와 강원체신청사가 위치해 있던 지역에 국한해 옛 강원감영 건물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강원감영은 40여 동이 넘는 관아건물이 군집해 있던 복합 청사였지만 모두 사유지가 되었다. 다만 옛 원주군 청사는 원주시와 원주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통합청사가 필요했고, 강원체신청과 원주우체국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은 체신부에서 소유하고 있는 국유지였기 때문에 부지 확보가 가능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995년 강원정도 600주년을 맞아 도비지원 사업으로 시작한 선화당과 포정루 보수 사업을 마치고, 2천 여 만 원 정도의 예산 잔액이 발생하였다. 강원도와 협의하여 당초에 없던  강원감영 복원정비 사업 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는데, 당시 민선 1기 강원도지사로 출마한  최각규 강원도지사 후보는 강원감영 복원을 공약으로 채택하였다. 강릉 출신 도지사는 당선이 되고 중앙부처를 방문하여 감영복원 예산을 확보하는 등 적극적인 복원의지를 보였다.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으나 예상 밖의 복병을 만나게 된다. 필자가 감지하지 못한 숨어있던 원주시민의 반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강원감영 반대 의견을 전해준 사람은 당시 21세기 정책연구소 한창희 소장이었다. 한창희 소장은 영향력 있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감영복원에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으니 강원감영 복원 사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곧 한창희 소장을 만나 계획의 배경과 사업계획을 설명해주었다. 한창희 소장은 계획에 공감해 주었고 감영복원을 반대하는 이유가 예산 낭비라는 것과 문제를 제기한 진원지도 알려주었다. 감영복원 반대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원주지역의 향토사학자로 널리 알려진 분이었다. 한때 원주 모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하셨고 한문학에 조예가 깊은 분으로 필자도 존경하는 분이어서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한창희 21세기 정책연구소장은 반대를 주창하는 모 향토사학자와 시민들을 모시고 사업설명회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원주시의 강원감영복원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반대의견을 듣고 토론을 하자는 것이었다. 부서장에게 21세기정책연구소장의 말씀을 전하고 공청회를 열기로 하였다. 장소는 가톨릭센터 지하였다. 

필자가 공청회에서 강원감영복원계획을 설명했다. 선화당 전면의 내삼문과 중삼문, 행각과 건물을 복원하고 선화당 북쪽 강원체신청 터에 있었던 연못과 후원을 복원하겠다는 계획과 이를 위하여 옛 원주군청사와 재향군인회 건물 철거가 필요하고 강원체신청 부지와 건물 매입하고 철거가 필요하다는 것과 이를 수행하려면 197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도 말씀드렸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감영복원을 위하여 2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것이었다. 반대를 주장하는 향토사학자는 100억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여 강원체신청을 매입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것이었다. 땅값이 비싼 시내에 복원하지 말고 행구동 근처 치악산 자락을 매입하여 복원할 것을 제안했다. 한발 더 나아가 선화당과 포정루 내아 같은 조선시대 감영 건물을 치악산 자락으로 옮기자는 주장도 함께 했다. 말이 안되는 주장이었지만 당시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인 그의 말은 시민에게 설득력이 있었다.

필자는 전국에 남아 있는 8도 감영 중 원래의 위치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건물은 원주의 강원감영뿐이고, 건물도 중요하지만 터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도 중요하니 치악산 자락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렸다. 공청회가 끝나고 참석하신 시민들은 강원감영 복원의 당위성에 대하여 이해해 주셨고 공청회 이후 향토사학자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지금 아카데미 극장 철거를 주장하는 주요 이유가 예산 낭비라는 언론 보도를 보고 30여 년 전 강원감영 복원 사업을 예산낭비라고 외쳤던 인플루언서의 광기가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