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로 터전을 옮긴 지 20년, 반 정도를 치악산 들머리 소초면 학곡리에 살다. 학곡저수지를 시작으로 하수남천 흐르는 물을 따라 걷노라면 원주 옻의 명맥을 이어가는 옻 칠기 공예관을 만나고 황장목의 어엿하고 멋짐에 반하고 구룡사 부처님께 합장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한다. 구룡소 맑고 고운 소리에 마음을 다듬고 세렴폭포 향하는, 그리고 사다리병창에서 치악산의 모습을 보니 장엄함이 비로봉을 부르는 마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다.

 마을 이야기를 더 하자면 모든 역사는 알 수 없지만, 치악산 들머리로써 영화를 누린 시절이 있었을 터이고 여느 산악관광지처럼 쇠락의 시기도 있었을 것이다. 알기로는 원주시민들의 유원지였던 향토동물원이자 드림랜드의 폐장은 마을의 생활과 환경을 바꾸어 내방객을 상대하는 식당, 민박 등이 같이 쇠락했을 것이다. 이러한 기간이 흘러 지금의 학곡리가 되었고 사람이 떠나고 들어오는 과정에서 잡음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정주한 지 20년이 안 되는 거주민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러나 들어오는 사람 대부분이 장·노년이고 그러므로 젊은 사람의 유입은 점점 어려워지고 특히 자영농과 같은 작은 음식점이 대부분이니 일자리가 없어 젊은 사람의 정주 조건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따라서 마을의 유일한 학교인 초등학교도 학생이 줄어 폐교를 걱정할 형편이다. 우리나라 농산어촌 전체가 직면한 상황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자. 마을의 자연 인프라는 전국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매화산 치악산을 중심으로 하는 둘레길을 안고 있으며 치악산 비로봉 오르는 가장 좋은 풍광을 자랑하는 등산로의 첫머리이기도 하다. 교통인프라 역시 좋은 편이다. 영동고속도로 새말 나들목이 약 2km이며, KTX 횡성역이 약 8km이다.

 또한, 원주 시내버스는 코로나 이전에는 약 30분에 한 번꼴로 다녔으며 지금은 한 시간에 한 번 정도이다. 횡성역에서 횡성군 버스가 수시로 운행하고 있다. 또한, 15~20km 거리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등 의료시설의 접근이 가능하고 풍물시장과 중앙시장 등 시내 중심부로 연결된다. 이러한 인프라를 보면 학곡리는 농촌 마을 중에는 좋은 정주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 무엇으로 사람들이 와서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수 있을까?

 첫째 지금 거주민이나 들어오는 사람이나 연대 의식이 필요하다. 사람은 탯줄을 끊는 순간 독립 개체이며 하나의 우주라 생각한다. 물론 보살핌은 있어야 하지만. 이러한 사람이기에 점점 독점적인 자기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결과는 자기 장벽을 구축하고 동조하는 사람만 받아들여 성을 쌓게 된다.

 한 번 쌓은 성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고가 공동체의 연대를 방해하고 연대 없는 공동체는 지속 가능하게 나갈 수 없다. 독과점공동체를 지양하고 작은 공동체의 느슨한 연대야말로 지금 사회, 특히 농산어촌 마을에서는 필요하다. 그러함으로 공유의 폭이 넓어지고 그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넘나들면 마을공동체는 지속 가능하리라.

 다음으로 문화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마을을 나타낼 수 있는 문화를 거주민과 내방 객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전국이 하는 축제는 단지 그때 그 시간 짧은 놀이일 뿐 문화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축적되면 문화로 자리할 수 있겠지만 문화는 단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며드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을의 자연, 역사, 인적 물적 자원을 발굴하여 연대 의식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나가는 과정이 곧 문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작년 원주시 선정과 올해 강원도 선정 마을공동체 사업 '시와 함께하는 마을 가꾸기'를 실행하는 입장도 그러하다. 문화예술에 기반하는 일자리는 타 산업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앞선 마을 이야기는 현재 농산어촌이 가지는 현실이리라 생각하며, 이 위기를 넘길 방안은 오랜 시간을 보낸 거주민이나 들어오는 거주민이나 같은 공동체라는 연대 의식이 필요하다. 특히 자연은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 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마을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농산어촌이 소멸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남우 마을공동체 '학곡 사람, 우리' 대표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