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청 앞에 나붙은 아카데미극장 보존과 철거를 주장하는 현수막(4월 28일 촬영).

동서양 모두 사람을 교육하는 이유는 다르지 않다. 시대를 떠나 과거 전통사회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개인이나 교육기관에서는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 그런 품격을 지닌 사람을 서양에서는 신사(紳士, gentleman)라 하고 우리는 선비라 불렀다. 신사와 선비는 시대와 인종을 넘어서 교양인, 문화인으로 존중받았고 지금도 미국 의회에서는 남성의원을 지칭하는 말로 gentleman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에서 선비와 신사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선비와 신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교육을 받아야 했고 스스로 인성을 길러야 하며, 선비와 신사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력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바른 생각과 그것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와 신념이 필요하다. 가문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명가로 남은 뿌리 깊은 명문 종가는 오랜 기간 쌓여진 세월의 향기가 있다. 부동산으로 벼락부자가 된 가문에서 가질 수 없는 깊은 품격을 종가에서 찾을 수 있다. 진정한 품격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명품 옷과 시계, 가방은 뿌리 깊은 명가의 품격을 대신하지 못한다.

개인이나 문중이 그렇듯이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신사와 선비, 명가의 품격을 가진 도시를 문화도시라 한다. 도시의 역사는 짧지만 뉴욕처럼 새로운 사조와 창의적인 활동으로 문화도시가 된 도시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문화도시는 수천 년 적어도 수백 년 전부터 형성된 역사도시들이다. 역사가 오래된 문화도시가 지닌 품격의 원천은 공존이다. 과거 조상들이 물려준 낡은 건물과 도로는 그 도시에 사는 현대인에게 불편하지만, 그들은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도시에 깃들어 사는 것이다. 마차가 다녔던 좁고 오래된 도로와 신사의 품격을 가진 도시민의 공존이 명품 문화도시를 만든다. 

개인이나 가문이 품격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개인이나 문중이 전통을 지켜 품격 있는 명가로 남기 위해서는 재원과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해야 하는 이유가 '시민들의 혈세를 함부로 쓰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공공재원을 사용하는 것은 '품격 있는 문화도시'를 위하여 지출해야 하는 국가와 도시의 의무이다. 지방자치단체와 도시민이 문화를 지키고 가꾸는데 인색하다면 그 도시는 야만도시가 될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도 문화의 힘과 선비(교양인, 문화인)의 역할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백범일지 나의 소원'이라는 글을 보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이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이 문화다."

오래되었지만 백범 김구 선생께서 우리나라가 문화민족 문화부국이 되길 원한 주장은 아직도 유효하다. 또 백범 김구 선생은 같은 글에서 문화민족이 되는 길을 짐승과 선비에 비유하며 이렇게 설파하셨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거리에 나붙은 아카데미 극장 철거와 보존을 주장하는 현수막을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지금 원주 시민은 문화도시를 원하는가, 야만도시를 원하는가! 
짐승이 되려는가, 교양인이 되려는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