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민관고등학교 창육관 보수공사 당시 모습. 지붕을 형성하고 있는 목조 트러스는 6.25전쟁 후 한국재건단(UNKRA)의 원조로 받은 나무이다.

사람들은 문화재라고 하면 대부분 고대의 무덤과 건축물, 적어도 조선시대의 목조 건축물을 떠올린다. 어떤 이들은 아름다운 도자기나 그림 같은 예술품과 옛 기록물을 상상한다. 대체로 조선시대 또는 그 이전 전통사회의 산물이라야 문화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비단 일반인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박물관이나 문화재 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유로 조선시대 이후 근대기의 건축물이나 생업 관련 도구들은 소홀하게 취급되었고 대부분 버려지기 일쑤였다. 

필자가 아카데미 극장을 보존하기 위하여 소유자와 협약을 체결하는 등 관련 업무를 수행할 때 공직 내부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던 것은 '아카데미 극장도 문화재인가?'였다. 무엇보다 건축사인 당시 원주시정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아카데미 극장 보존에 대하여 누구보다 부정적이었으니 필자가 받는 부담은 컸다. 

근대기에 생성된 건축물이나 물품 등 근대 문화유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견해에 따라 근대기를 달리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화재 분야에서 근대 문화유산은 1894년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를 설치하여 종전의 문물제도를 버리고 근대적인 서양의 제도를 도입한 갑오경장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후에 생성된 문화유산을 말한다. 

2001년 7월 등록문화재 제도가 도입되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근대 건축물을 보존·활용하기 위해 문화재 등록 제도를 시행한다. 제도가 시행된 초기 5년 동안은 문화재청이 주도적으로 등록 문화재를 발굴하여 2002년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전력 사옥이 제1호 등록문화재가 된다. 등록문화재는 일반 문화재와 달리 원형보존에 엄격하지 않고 문화재 주변지역에 대한 규제도 없다. 더구나 근대기의 등록문화재가 관광자원으로 각광 받기 시작하면서 2010년 이후 여러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등록 신청하고 있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여 등록되기가 쉽지 않다.

원주는 2004년 원동성당, 대안리공소, 원주역 급수탑, 2005년 반곡역, 구 조선식산은행원주지점이 근대문화재로 등록되었는데 모두 문화재청의 주도로 등록되었다. 2017년 필자가 등록 신청한 제1야전군 사령부 구청사, 육민관고등학교 창육관, 원주 기독교 의료 선교 사택 등 3건이 근대문화재로 등록되어 지금 원주는 모두 8건의 국가등록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등록문화재가 되려면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 지난 것이어야 하며, 법이 정한 등록 기준은 ①역사, 문화, 예술, 사회, 경제, 종교, 생활 등 각 분야에서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 ②지역의 역사·문화적 배경이 되고 있으며, 그 가치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 ③기술 발전 또는 예술적 사조 등 그 시대를 반영하거나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등이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국가등록문화재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더구나 사유재산이 아니라 보존을 목적으로 원주시가 매입한 공유재산이니 국가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은 더욱 마땅한 일이다.  

낡고 오래된 건축물이라 해서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철거를 요구하는 사람들 주장처럼 근대 건축물이 '돈 먹는 하마'는 아니다. 외국이나 우리나라 다른 도시에서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고 활용하여 성공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이 있다. '돈 먹는 하마'가 아니라 오히려 독특한 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멀리 다른 지역의 사례를 찾을 것도 없이 원주에 있는 육민관고등학교 창육관도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 활용의 모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물론 창육관은 학교내 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어 관광자원은 아니지만 육민관인의 자부심을 고양하는 상징이 되었다. 

창육관은 1946년 강원도 최초의 사학으로 설립된 육민관고등학교의 본관 건물이다. 1954년 국제연합 한국재건단(UNKRA)의 원조와 초대 제1야전군사령부 사령관 백선엽 장군의 지원으로 지어졌으니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다. 2017년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았다면 육민관고등학교 창육관 자리에는 전혀 새로운 건물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창육관은 아카데미 극장처럼 안전도 D등급의 건물이어서 학교에서도 오랫동안 고심 끝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하여 설계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육민관 고등학교 창육관과 제1야전군 사령부 구청사를 등록문화재로 신청하기 위하여 필자가 학교를 방문하여 등록문화재 신청을 이야기하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은 매우 난감해하였다. 강원도교육청의 지원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었고, 설계를 마무리할 단계였으니 학교측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고민 끝에 필자의 권유를 받아들였고 기존의 설계를 폐기하고 다시 설계를 시작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하였다. 지금 육민관고등학교 창육관은 우리나라 고등학교 도서관 중 가장 멋진 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안전도 D등급의 애물단지 건물이 학교의 자랑이자 원주의 자랑으로 변신한 것이다. 무엇보다 학교의 역사와 설립자의 뜻이 고스란히 남게 되었고 선배들과 학부모, 선생님들의 땀으로 세운 건물에서 공부하는 지금 육민관 학생들에게는 큰 자부심으로 작용할 것이니 그보다 큰 성과는 없을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