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당에 재현한 100년의 기다림, 부론면 식당에 걸린 지광국사탑 사진과 이호신 화백이 그린 현묘탑비 그림.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지광국사탑 수리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문화재청에서는 수리 후 지광국사탑 이전 위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문화재 행정의 최고 자문기관인 문화재위원회 위원들이 법천사지 현장을 둘러보고 부론면사무소에서 문화재위원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법천사지를 방문한 문화재위원 다수의 의견은 수리 후 탑의 안전한 보존을 위하여 박물관 같은 실내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탑 보존처리를 담당하고 있는 보존과학센터의 주장을 반영한 것인데, 법천사에는 실내 보존 장소가 없으니 국립중앙박물관이 유력했다. 

과거 원주에서 문화재 환수 건의문을 보냈을 때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받은 공문과 같은 내용이었다. 충분히 예측했던 일이어서 필자는 2017년부터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건립계획을 세우고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산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원주시의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원주얼 광장 조성사업'에 밀려 착수 시기도 불투명했다. 그러나 필자는 문화재위원들이 법천사 현지에 왔을 때 전시관 건립 장소를 지목하며 수리가 끝날 때쯤이면 법천사 유적전시관이 건립된다고 문화재위원들에게 힘주어 말했다. 지광국사탑 원주 이전에 대한 우려와 반대 명분이 사라지고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귀향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2019년 6월 7일, 해린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처럼 이슬비가 내리는 날 문화재청장이 법천사터를 방문했다. 당시 문화재청장의 원주 방문은 우연한 일이었다. 그해 6월 3일부터 8일까지 횡성에서 열린 전국 장사씨름대회 시상식에 문화재청장 방문이 계획되어 있었고, 시상식에 앞서 잠시 법천사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청장에게 직접 지광국사탑 원주 귀향을 설명할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김광수 부시장과 함께 청장을 맞이하여 교육관으로 쓰고 있는 조립식 건물에서 법천사지 정비상황과 전시관 건립계획 등 몇 가지 현안 사항을 보고하였다. 

보고를 마치고 탑비가 홀로 남아있는 승탑원으로 안내했다. 승탑원 지광국사탑이 있던 터에는 '아름다운 절정, 영혼이 머문 자리'라는 제목의 안내판이 서 있었다. 전국의 문화재 현장을 둘러본 문화재청장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재 안내판이었다. 안내판에는 지광국사탑이 제자리를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과정과 한국전쟁 때 포탄을 맞아 부서진 일 등 탑의 수난이 기록되어 있었고, 탑의 귀향을 바라는 간절함이 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안내판을 본 청장이 말했다. '새로운 문화재 안내판입니다. 신선한데요.' 굳이 지광국사탑 귀향을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법천사터를 돌아보고 점심 식사를 위하여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은 법천사터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매운탕 집이었다. 식당을 결정하는 과정도 흥미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청장의 원주 방문이 결정되고 문화재청에서는 인터넷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부론 단강리의 식당을 오찬 장소로 정하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여성 청장을 모시는 장소이니 '격식 있고 깔끔한 식당'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필자는 그 식당이 내키지 않았다. 

물론 그 식당은 음식도 맛있고 주인도 오랫동안 서울 생활을 했던 분이라 친절하고 세련되어 널리 알려진 명소이다. 다만 그 식당은 법천사터에서 20분 정도 이동해야 하니 왕복 40분이 소요된다. 그 식당을 선택하게 되면 필자가 청장과 이야기할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필자는 청장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매운탕이니 법천사터 근처에 있는 매운탕 잘하는 식당으로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문화재청에서는 식당 화장실 상태 등 몇 가지 사항을 물어보고 필자가 제안한 매운탕 집으로 결정했다. 청장과 함께 오찬을 하는 동안 여직원에게 부탁하여 청장이 화장실을 갈 때 안내하도록 했다. 그 식당 화장실은 한 칸짜리 남녀공용이었기 때문이다. 

법천사에서 2시간 정도 오전 일정을 마치고 청장과 함께 오찬 장소인 식당으로 이동하기 직전 식당 내부 벽에는 전날 밤 급하게 제작한 액자가 걸렸다. 1912년 일본 오사카에서 돌아온 직후 촬영한 지광국사탑 사진과 이호신 화백이 그린 눈을 맞고 있는 지광국사탑비 그림이다. 눈을 맞으며 등에 비석을 지고 있는 거북이 지광국사탑을 처연하게 쳐다보는 그림 여백에는 '100년의 기다림'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그림과 사진을 본 문화재청장이 말했다. '원주 시민의 뜻이 이렇게 간절하니 원주로 와야겠군요.'

2019년 6월 20일 문화재청에서 문화재위원회가 열렸다. 핵심 안건은 지광국사탑 수리 후 안전한 보존관리 문제였다. 이전에 열린 몇 차례 회의에서 원론적인 이야기만 오가고 진전이 없었다. 일제강점기 강탈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석조문화재가 원래 자리로 돌아간 사례가 한 건도 없으니 지광국사탑을 원주로 이전하는 일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날 회의에서도 원론적인 의견이 오가던 중 회의를 주관하는 위원장이 원주시의 의견을 물었다.

필자는 '실내든 원래 위치인 야외에 보존하든 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겠다. 다만 원주 시민들은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니 수리 후 지광국사탑을 원주 법천사로 보내준다는 결정만 먼저 해주면 좋겠다.'고 답변했다. 필자가 발언을 마치고 회의장 밖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5분 뒤 회의장에서 직원이 나와 원주시 의견대로 결정되었다고 전해주었다. 이렇게 지광국사탑은 100년만에 귀향이 결정되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nmpr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