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전화 한통을 받았다. 경찰관에게서 온 전화였는데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장애인이었다. 4차선 건널목에서 1차선을 남겨둔 상태에서 건널목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었고, 차량들이 질주하는 건널목에서 낙오된 70대의 연로한 장애인은 세상과 작별하고 말았다.

 후회의 연속이었다. 원래 다리를 절며 걷다 보니 느리고 더뎠던 아버지를 통원 치료를 다니게 한 것도, 교차로 주변에 수없이 많은 카메라가 있었지만 원인규명을 할 수 없는 일반시민으로서의 한계, 일이 바빠 교통사고에만 매달릴 수 없는 생활 여건들이 야속하고 속상했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낸 가해자만의 문제였지, 이러한 교통 환경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에게는 잘못을 물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미 고착화되었기에 이러한 환경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6년 후 나는 시의원이 되었고 지난해 어느 심포지엄 토론자로 참석한 자리에서 다른 도시에 장애 인지적 정책조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조례를 찾아보면서 무릎을 치게 되었다. 만들고 싶었던 내용과 하고 싶었던 말들이 그 조례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서둘러 원주시 장애 인지적 정책 조례를 발의했고, 지난해 말 제정됐다. 

 장애 인지적 정책 조례는 원주시가 정책을 수립할 때 장애인 당사자, 관련 단체, 전문가를 참여시켜 장애 차별 요인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적용 대상 정책은 장애인 편의시설이나 이동 편의시설 설치, 원주시민이 참여하는 행사장 내 장애인 이동 편의, 체험부스·화장실 비치, 장애인 참여프로그램 구성, 체육시설 구축 등으로 이러한 정책을 추진할 때는 반드시 장애인 담당부서와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 

 이 조례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장애인을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 각종  정책 및 사업에 장애 인지적 정책을 반영하고 필요한 사항을 이행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원주시장은 장애 인지적 정책의 목표, 대상 사업 선정, 결과 평가 등 모든 과정에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하고, 정책의 적용 분야까지 구체화한 만큼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 중 핵심 사항은 국경일이나 기념일 등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15조 제1항에 해당하는 행사 및 원주시가 주관하고 원주시민이 참여하는 모든 행사·교육·공청회 등에는 수어 통역 또는 점자 자료 등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공원을 조성할 경우 장애인 시설로 출입구·보도·화장실·점자블럭·매표소·판매대·음료대 등을 적시했고,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은 통행이 가능한 접근로·전용주차구역·높이차이가 제거된 출입구·복도·계단·화장실·욕실·탈의실·점자블럭·유도안내시설 등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공동주택도 공공건물과 유사한 시설확충을 갖추도록 했다.  결국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8조의 편의시설 모두 설치 대상이다. 그리고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9조의 이동편의시설의 설치대상 시설과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 지침」 중에 있는 장애인 안전시설도 포함되었는데 이는 각종 교통수단과 여객시설, 도로 등이다. 

 이밖에도 원주시의 홈페이지, 시정 안내문에도 장애인을 위한 제공방식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장애인들이 그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대부분을 이 조례에 담아 생활환경이 개선되도록 했다. 

 이 조례의 의도는 장애 인지적 정책 적용의 절차와 의무라고 볼 수 있다. 사업부서의 장은 적용분야에 해당할 경우, 사업계획에 장애 인지적 정책을 반영하고, 장애인 담당부서 장의 협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특히 이 조례는 선택적 예외조항을 최소화해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내용을 구체화하였다는 것이다. 

 모쪼록 이 조례가 장애인들의 시름을 줄이는데 작은 기여라도 하게 된다면 시의원으로 살아 온 지난 5년이 보람있고 만족스러울 것 같다. 

곽문근 원주시의회 의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