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섯 분 다녀왔습니다. 장기요양등급 신청용 의사 소견서 네 분과 진료 두 분. 퇴직하고 아르바이트하는 의사에게 좀 벅찬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다녀보면 왕진이 꼭 필요한 일이고 오기를 잘했다는 뿌듯한 기분에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보행장애가 있어 멀리 떨어져 있는 병원에 의사 소견서나 영양수액제 맞으러 가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더욱이 가족이 아무도 없는 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되죠.

 오늘도 문막에 계신 분은 몇 개월 전에 골수염으로 다리 한쪽을 절단하고 얼마 전에는 부인까지 돌아가셔서 드시던 혈압약을 타 오지 못해 몇 개월 들지 못하고 계셨죠. 오늘 수축기 혈압이 200이 훨씬 넘었어요. 응급 위험한 사태가 된 것이죠. 마침 놀러 온 동네 후배에게 부탁해서 같이 병원에 나가 혈압약을 보내드릴 수 있었어요.

 오늘 다니면서 돌봄 교과서에도 없을 두 가지 굿 아이디어를 보고 반가워서 웃음을 지었답니다. 우산동 일어서지 못하는 할머니 방에서 아주 낮은 조리대를 보았어요.

 옛 앉은뱅이책상이 떠올랐지요. 부엌에 있는 조리대를 거주하는 방 안에 앉아서 조리할 수 있게 낮게 설치했어요. 옆방에 세 들어 사는 아저씨가 할머니를 위해서 쓰던 조리대를 잘라서 만들었더군요. 처음 봤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에 미소가 지어졌어요. 새로운 장애 편의시설. 노인 장애인에게 이동식 변기 의자만큼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이 개월 전에 방문했던 원룸에 사시는 할아버지인데 입맛이 없고 기력이 없어 행정복지센터에서 왕진 의뢰를 했어요. 많이 마르셨더군요. 치아가 없어서 죽 종류만 드신다고 하네요. 얼마 전 새로 만든 틀니가 불편해서 사용하지 않고 계셨어요. 고치는데 300만 원이 든다며. 할아버지는 물 대신 동동주로 약을 드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약이 잘 넘어간다고.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전부터 막걸리 드시는 걸 좋아하셨죠. 

 사실 만성질환으로 쇠약해진 어르신에게 여러 개 약을 먹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할아버지는 두 달 전 이사를 하셨는데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2만 원이래요. 정부에서 기초생활비가 월 55만 원 나온다니 33만 원으로 한 달을 사시는 거죠. 입맛 나는 약을 약값 내겠다며 요청하셨고 문 앞에 행정복지센터에서 갖다 놓은 쌀 한 포대를 보고 우리보고 가져가라고 하십니다. 

 돈이 얼마나 있어야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행복할까 할아버지가 진짜 부자라는 생각을 하며 나왔어요.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하지절단 장애인에게 시력장애가 있어요. 한쪽 눈은 완전 실명이고 다른 쪽은 0.2인데 더 나빠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양팔 크러치를 짚고 이동하는데 다른 쪽 무릎이 아파서 이동을 못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목소리는 밝았어요. 상대적으로 몸이 멀쩡한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무슨 불평불만이 있을 수 있을까 감사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