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가 자체 성장동력을 갖추려면 인구 50만은 되어야 한다." 

 30년 전 고등학생이었을 때 제 은사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선생님은 50만 명은 되어야 기업들이 들어오고 일하는 사람도 많아진다고 했습니다. 인구가 증가하니 음식점, 옷집, 병원, 학교가 늘어나고 또 이들이 사람을 고용하니 일자리가 대폭 늘어날 거라 했습니다. 인구가 증가해야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가 될 수 있다는 인구-경제 순환론은 고등학생이었던 저에게도 꽤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원주시 통계연보를 뒤져보니 1992년 원주 인구는 4만2천281세대, 17만1천647명이었습니다. 소도시라 그랬던지 제 기억에는 삼양식품 원주공장과 문막 유가공공장이 제일 큰 기업이었습니다. 당시 친구 녀석 아버지가 이곳에서 근무하셨는데 "매일 라면·과자 실컷 먹는다"는 자랑질에 미간을 찌푸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삼양식품이 직원 자녀 학비를 대학교까지 지원해준다는 소식도 저에겐 충격적으로 들렸습니다.

 평생 중소기업에 종사하셨던 아버지를 떠올리면 삼양은 정말 좋은 기업이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원주는 인구 36만의 중소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삼양뿐만 아니라 만도같은 대기업도 있고 외국계 큰 기업도 들어와 있습니다. 덕분에 원주는 도내에서 제일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올해 취임하신 원강수 시장께서는 삼성반도체 공장까지 유치한다고 하시니 원주가 지속 성장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저와 제 주변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조그만 아파트에서 두세 식구가 아등바등하며 살아갑니다. 옛날과 비교하면 월급은 서너 배 올랐지만, 물가 또한 가파르게 올라 생활이 여유로워지지 않았습니다.

 식비, 주거비, 의복비는 그렇다 치고 애들 교육비, 병원비, 공공요금은 왜 그리도 치솟는지…. 어떨 땐 조그만 월급으로 이를 감당하기가 버겁기만 합니다. 분명 기업이 많이 들어오면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삶의 질도 나아질 것이라 했는데, 현실은 이론처럼 자연스럽게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니 오히려 불편함은 더 커졌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꽉 막힌 서원대로를 보면 '여기가 원주맞아?'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디 교통뿐이겠습니까? 최근 지인이 암 검진을 받기 위해 대학병원에 들렀는데 대기 기간만 한 달 가까이 걸린다는 통보를 받았다 합니다. 큰 병원이니 사방에서 사람이 몰려 그러려니 했는데, 제가 만약 그 같은 일을 당했다면 초조함에 피가 끓었을 것 같습니다. 원주시가 서울처럼 인구가 많아지니 이런 원치 않는 불편함도 속속 생겨나나 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원주가 지속성장하길 바랍니다. 이 아이들이 커서 원주경제를 이끌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30년 후에도 경제 으뜸 도시로 각인되어 지역은 물론 나라 살림을 견인하는 도시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시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는 도시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개개인의 경제적 여유도 커지고 삶의 질도 증진되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나와 5분이면 공원에 다다르고 문화와 예술로 정신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도시, 교통 체증이나 주차 불편 없이 병원이나 도서관에 갈 수 있고 시민 누구나 부담 없이 평생교육을 누릴 수 있는 그런 도시 말입니다. 

 장일순 선생과 지학순 주교가 그랬던 것처럼 생명·협동운동의 정신으로 이웃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주민 스스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도시라면… 큰 기업이 많지 않아도, 큰 부를 누리지는 못해도 시민 모두가 살맛 나지 않겠습니까? 그런 곳에서 아이들이 성장하고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대기업과 첨단산업 유치로 인구 50만 명을 지향하는 원주시가 이렇게 생각하는 시민들도 있다는 점을 한 번쯤은 헤아려보길 기대해봅니다.
 

최장하(원주투데이 독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