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천리 4호 무덤에서 발견된 민어 뼈.

널리 알려진 것처럼 원주의 옻나무에서 나는 칠(漆)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 법천리 4호분에서 출토된 칠화칠기(漆畵漆器) 컵은 양질의 칠산지 원주와 무관하지 않다. 칠화칠기는 나전칠기처럼 조개껍질 대신 온전하게 칠로 표면을 장식하기 때문에 좋은 칠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때 단절되었던 칠화칠 기능이 원주에서 다시 이어졌으니 원주는 칠화칠기의 도시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필자가 법천리 4호 무덤의 칠화칠기 컵을 주목하는 이유다.

법천리 4호 무덤의 칠화칠기 컵이 원주에서 만든 것이라는 확증이 없어 원주 칠화칠기의 전통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 다만 원주의 옻나무에서 생산되는 칠은 다른 지역보다 옷산(우르시올) 함량이 월등히 많아 기물을 장식하는 도료(塗料)의 기능이 뛰어나다. 칠조각(漆片)을 분석하여 우르시올 함량을 조사하여 원주 옻과 비교해 보면 의미 있는 결과를 얻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발굴조사 보고서에 칠 조각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 법천리 고분 4호 무덤 바다물고기 뼈 발견 상태.

4호 무덤에서는 칠화칠기 만큼 흥미로운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바다에 사는 물고기 뼈이다. 내륙에 위치한 원주의 백제시대 무덤에서 바닷고기가 발견되었으니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무덤의 주인공이 살았던 법천리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다. 강의 중류지역에 해당하니 댐과 보 같은 인공 시설이 없는 고대에는 상류와 하류의 물고기가 오가는 길목으로 법천리 앞을 흐르는 흥원강에는 민물고기가 풍부하다. 더구나 태백산에서 흘러온 남한강이 횡성 봉복산에서 흘러온 섬강과 만나는 두물머리로 법천리 앞 흥원강은 더욱 풍부한 어종이 살고 있다. 

법천리 4호 무덤에서 한 무더기의 생선뼈가 발견되었을 때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은 법천리 앞 흥원강에 살았던 민물고기로 생각했을 것이다. 발견된 뼈의 크기가 컸으니 민물에 사는 쏘가리나 잉어 같은 큰 물고기를 떠올린 만 하다. 지금도 법천리는 지역의 특색있는 음식으로 마을 앞 흥원강에서 잡은 민물고기 매운탕이 유명하다.

법천리 무덤에서 발견된 금으로 만든 귀걸이나 신발, 청동초두 같은 유물은 무덤 주인공의 지위와 권력의 크기를 알 수 있지만, 물고기 뼈는 당시의 음식 문화와 풍속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는 생태계를 파악하는 데도 중요하다. 

발굴조사 때 수습된 유물을 분석한 결과 무덤에서 발견된 물고기 뼈는 상어, 민어, 조기, 돔, 정어리, 준치의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이다. 이 고기들이 많이 잡히는 산지를 보면 상어와 돔은 동해와 남해 바다이고 민어와 조기 준치는 남해와 서해 바다이다. 또 여름에서 가을에 주로 잡히는 물고기들이다. 그러니  바닷고기들이 살아서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왔을 리는 없고 법천리까지 가져 오려면 부패를 막기 위해 소금에 절여 염장(鹽藏) 상태로 운반했을 것이다. 

그러면 바닷고기를 잡은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경로로 원주 법천리로 오게 되었을까? 법천리가 서해까지 연결되는 수상 교통의 요충지라해도 무덤의 주인공이 바다에 나가서 직접 고기를 잡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동해에서 주로 잡히는 상어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법천리 4호 무덤의 바닷고기 역시 청자양과 금동신발, 청동초두처럼 남한강 중류에 위치한 수상교통의 요충지 이자 한반도 중심부의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고 있던 법천리 세력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선물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선물의 품격으로 보아 법천리 세력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백제의 왕이었을 것이다.      

무덤에서 발견된 바닷고기는 정어리와 준치를 제외하면 모두 대형이고 특별하게 맛이 좋은 고급 어종이어서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도 귀하게 여기는 물고기들이다. 동해에서 주로 잡히는 상어는 더욱 귀한 어종이다. 또한, 조기와 민어, 돔은 예로부터 제사상에 올려 제물로 쓰는 물고기이다. 상어 또한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동해안에서는 제사상의 제물로 쓰인다.

멀리 바다에서 온 법천리 4호 무덤의 바닷물고기들은 평소 무덤의 주인공 밥상에 올라 입맛을 돋우었고 그가 죽었을 때는 장례의식에 쓰여 무덤까지 함께했을 것이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