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들녘이 콤바인의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비어간다. 수확의 기쁨에 농심도 들뜰 만도 한데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기름값, 비료값은 두배로 뛰어 농협에 농자재 외상 빚 가릴 일이 난망한데 콤바인 작업 비용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니 추수할 맛이 나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쌀 가격은 지난달 15일 기준 20kg당 4만725원으로 1년 전 5만4천228원보다 24.9% 떨어졌다. 이는 지난 1977년 관련 통계를 조사한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이달 6일 기준 쌀 20kg 기준 도매가는 평균 4만5천400원으로 1년 전 5만6천636원보다 19.8% 낮은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하락해 온 쌀 가격에 대한 농민과 농업인단체들의 항의와 대책 마련 요구가 빗발치자 농식품부는 지난 7일 45만톤 즉 2021년산 쌀 10만 톤과 2022년산 35만 톤에 대한 시장격리 세부 계획을 발표하였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도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하다. '쌀 수급 균형을 이뤄 안정적인 농민 소득을 보장하자'는 데에는 여야간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기는 하나, 정부의 쌀 매입을 의무화할 것이냐 아니냐로 다투고 있다. '쌀이 수요량의 3% 이상 초과 생산되거나 수확기 가격이 지난해보다 5% 이상 하락할 경우' 현행 양곡관리법하에서도 정부는 쌀을 사들이게 되어 있다.  

 하지만 강제 조항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래서 초과 생산된 쌀 강제 매입 조항을 넣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입법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정부 여당은 "과잉 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 시장에서의 조정 기능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한다" "쌀 공급과잉 구조를 심화시킨다"며 의무 매입에 반대한다.

 여당도 쌀 과잉 생산에 따른 농가의 손실을 보전해줘야 한다는 원칙과 방향에 대해선 이의를 달지는 않고 있으나 이들의 말다툼은 농민들에게 뭔가 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핵심을 벗어난 공방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초과생산이 쌀값 하락의 주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쌀값 하락의 원인을 만약 공급과잉에서 찾겠다면 연간소비량의 약 10%에 해당하며 연간 40만9천톤 규모 의무수입 저율관세할당물량(TRQ) 분에도 상당한 책임을 묻고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다.

 오히려 정부는 한술 더 떠 수입관세를 철폐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가입마저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주도한 산업화시대 수출주도 경제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 도시 근로자의 저임금이 필수적이라며 쌀값을 그만큼 억제해온 정치·경제·역사적 과정에 대한 고려와 함께, 경제성장에의 농민기여(희생)분에 대한 정책적 이해와 배려가 충분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임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쌀값 하락의 원인을 초과생산에서만 찾는 것은 여야 정치권의 의도적 책임회피로 보인다. 쌀시장 개방을 희생 삼아 더 많은 기회와 이익을 창출한 기업들의 결과물로 쌀값을 보전하고 쌀의 적정가격을 지지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라는 농민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초과생산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논의 경지면적을 줄이거나 논에 타작물 재배를 권장하는 등의 근시안적인 정책들은 쌀이 지켜온 식량자급률을 급격하게 하락시키고 식량주권과 식량안보를 단시간에 심각하게 훼손시킬 우려가 크다. 

 코로나와 기후위기에 더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의 여파로 식량이 무기화되는 것을 우리가 직접 경험한 바와 같이 쌀은 단순한 산업생산물이 아니라 우리 농업과 농촌지역 공동체와 국가 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중대한 품목임을 인식하자. 

 적정한 쌀값을 보장하는 것은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켜 농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우리 헌법 제123조 4항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이다. 긴 호흡으로 쌀의 자급률을 유지하면서 밀·콩·옥수수 등 자급률이 낮은 곡물들의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 쌀과 쌀농사는 한민족의 원형이다.

이규옥 신림면 용암1리 농민  wonjutoday@hanmail.net